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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노력들

어제 잘했다고 오늘을 기대하지 말고 과도할 정도의 인내심을 가져라

by 흰돌

드디어 미술 학원을 갔다.

남자아이들만을 위한 학원.

미술 수업을 통해 코칭까지 해준다는 그곳.


토요일이었다.

원래 평일이었지만 운이 좋게 주말에 비워진 날이

있어 광클로 시간을 옮겼다.


여름 같은 날씨였다.

나 혼자 운전을 해서 한 시간을 넘게 가야 했다.


대구의 학군지답게 복잡했고 주차도

쉽지 않았다.

아이와 급하게 도시락집에 가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시간에 맞추어 갔다.


찾아본 대로 다른 미술학원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만든 로봇이며 멋진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는 미술용 앞치마를 하고 남자 선생님의 손을 잡고 수업에 들어갔다.


한 시간쯤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밝은 얼굴로

자기가 만든 로봇을 자랑스럽게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과의 상담.


선생님은 다정하고 친절하게 아이를 관찰하신 부분과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알려주셨다.


이상이 높은 아이라서 불균형으로 오는 격차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지나친 승부욕을 낮추기 위해서는 잘하는 것보다 잘 못하는 걸 했을 때 칭찬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이외에도 많은 내용들은 문자로 정리해주시기도 했다.

가까웠다면 그룹수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 하루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당장 시작할 순 없었다.



다시 월요일이 왔다.


놀이치료를 갔다. 저번 주의 여파인지 아이는 아주 잘했다고 하셨다. 저항은 있었지만 처음으로 솔루션을 수용했다고 하셨다.


화가 나거나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을 종이에 적어 찢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화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고 종이에 적어 가져왔다.


산책하기

좋아하는 것 하기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화요일.

과학실험 방과 후가 있는 날이었다.

갑자기 방과 후 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아이가 아직 안 왔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나는 당장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받았다.

너무 슬퍼서 방과 후를 못 가겠단다.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그래도 방과 후는 가야 한다고 말하고 선생님께 아이가 오면

연락을 달라 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방과 후를 가지 않았고

연락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옷을 급하게 갈아입고 학교로 달려갔다.

안심 알리미가 아이가 교문 밖으로 나갔다고 알려준다.


심장이 떨린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 마당에 있었고 미술 수업 시간에 찰흙 작품이 잘 되지 않아 울었다고 했다.


아이는 힘들어서 오늘 수업을 못 가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게 둘 순 없었다.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해주겠다고 겨우 설득해 수업에 들여보냈다. 그렇게 또 한고비를 넘겼다.



수요일.

점심시간쯤 아이 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또 시작인 건가.


밥 먹기 위해 줄 서라고 했는데 갑자기 운단다. 나중에 들어보니 남자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급식소에서 모두 기다렸다 오기로 해서 그랬단다.


자기는 잘했는데 그게 억울했나 보다.


결국 선생님은 내 아이를 남겨두고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소로 간다는 걸 알려주신 거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 아이는 혼자 교실에서 울고 있다. 밥도 먹지 못하고.


밥이야 집에 와서 먹여도 되지만 혹시나 마음대로 어디 나갈까 가 걱정이다.


그래서 또 상담실에 연락을 드렸다. 믿을 곳은 상담선생님뿐이다.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다른 선생님을 교실로 보내주신단다.


"아이의 안전은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이 놓이면서도 죄송하고 서러워진다.


애써 담담한 척 급히 점심을 챙겨 먹는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 아이를 지켜야 하니까.


곧 교실에서 다시 전화가 온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다시 돌아오셔서 아이의 눈물, 콧물을 닦이고 밥까지 먹이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나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은 대화 말미에 농담인 듯 진담을 담아 얘기하셨다.


"갑작스럽게 이러니, 너무 힘들어요. 엄마가 와있으면 좋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우리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아이는 엄마가 곁에 있으면 오히려 더 좋아할 수 있고 그런 행동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말한다.


"엄마, 전화로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어제 잘했다고 오늘도 잘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기대를 내려놓자. 대신 과도할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자.


우리 아이의 편안한 하루하루가 더 쌓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자.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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