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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반모임의 기록

지더라도 인정하는 것이 진짜 강한 것이다

by 흰돌

그날이 왔다.

반아이들 모임.

아이들을 체육관에 넣어 서로 운동경기를 하기로 했다. 담당 선생님도 계셨다.


워낙 지는 걸 싫어하고 운동도 잘 못하는 아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반 아이들 대부분이 참여하는 자리라 안 보낼 수도 없었다.


체육관 앞에 도착하고 아이를 들여보내려고 하자 아이가 갑자기 거부한다.

아침에 방과 후도 다녀오고 오는 길에 잠깐 잠들어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확히 어떻게 노는지 몰랐던 아이는 체육관을 보자,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갈 순 없다. 피하기만 할 수도 없다.

아이를 억지로 밀어 넣고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페로 향한다.

사실 언제 터질지 몰라 그 체육관 안에서 지켜보고 싶었지만 모두가 다 가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었다.


같은 동 엄마들과 어색한 기류 속에 드문 드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들 반모임 이후로 다신 오고 싶지 않았지만 나도 피할 수 없었다.




역시나 불편한 상황이 벌어졌다.


반대표 엄마에게 체육관 선생님이 연락을 한 것이다.

아이가 계속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고.


역시나 우리 아이였다.


불편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두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가뭄처럼 바짝 메말랐다.

또 연락이 오면 어쩌나.


애써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엄마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이 갑자기 우리 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 그래도 자기 애가 집에서 얘기하더라면서.


"아이가 너무 울어서 상담 선생님도 왔었다는데 맞아요?"


역시 이미 우리 아이의 실체가 다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입을 타고 엄마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만천하에 폭로가 된 기분.


그리고 큰 아이가 있는 엄마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당장 아이의 기질을 알아봐라. 검사를 받아보면 다 나온다. 우리 큰아이도 다 받아보고 가봤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어려움이며 그간 해온 노력들을 나를 위해 알려주었다.


사실,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진심 어린 조언들이 고맙고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그들이 말한 그 방법들을 다 해왔고 지금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걸 솔직히 다 말해버리는 순간, 우리 아이가 adhd라는 걸 모두에게 알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애가 그렇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은 과거의 것이었고 아이의 친구들은 문제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만약, 내 아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엄마였다면 그 엄마에겐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내 아이가 그 반에선 금쪽이었기에 나는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아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폄범한 아이들의 엄마일 뿐.


그 누구도 우리 아이를, 부모인 우리를 진심으로 이해할 순 없다.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약을 먹어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이미 세워져 있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엄마는 나에겐 말 한마디 걸지 않았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엄마에겐 그 아이에 대해 궁금해하고 잘 지내고 싶어 했다.

우리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엄마들은 없었다.




체육관에 돌아왔을 때, 아이는 다행히 친구들과 피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마무리되고

줄을 서다 나를 발견하곤 울먹이면서 나에게 달려온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가라 손짓했고, 무사히 마쳤지만 이내 울면서 나에게 안긴다.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장난을 치고 다음 스케줄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다.

편의점에 가자거나 다른 놀이터에서 놀기로 한다.


하지만 나와 아이는 우리 둘뿐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다가와 같이 하자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곳에서 유일한 섬이 되고 우주에서 부유하는 하나의 점이 된다.


하지만 울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겠다. 우리만은 너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아 줄 것이다.


네가 당당히 다양한 섬들 중에 하나가 되고 부유하는 여러 점들 중에 하나가 될 때까지 너의 곁에서 언제까지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다음엔 지더라도 울지 않겠다고.


1000번도 넘게 이야기한 것들.

하지만 이번에는 최민준 님의 조언대로 마무리해본다(승부욕이 너무 강한 아이에게).


"이겨서 기뻐하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어. 하지만 져도 그것을 인정하는 건 어려워.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야."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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