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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수업 참관 후기

천국과 지옥 사이

by 흰돌

이번 주부터 아이 학교의 방과 후 참관 수업이 시작된다.

워낙 힘든 일들이 많았고 아이의 적응과 안정된 학교 생활이 간절했기에 모든 수업을 다 참관하기로 했다.




월. 로봇과학


가장 아슬아슬했던 수업이다.

이유는 경쟁게임이 있었기 때문.

아이도 이전부터 걱정을 해왔다.

각자 만든 배틀 로봇으로 팀을 나누어 대결을 하는 방식이었기에 만약 지면 또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시작 시간에 맞춰 갔는데 이미 자리는 만원이었다.

긴장감을 애써 누르며 맨 뒤에 서서 수업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아이는 연습 게임에서 이겼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본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기도를 하며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루어진다.


바로, 개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부품들을 추가하기 바빴다.

단 한 아이만 여유롭게 구경하며 앉아 있었는데 바로 우리 아이였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자기는 개조하지 않겠다며 뚝심을 지켰고 나는 애만 탔다.


결국 시작된 본선.

상대 아이는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길이와 비주얼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아뿔싸! 예감이 좋지 않다.

이미 결과를 예상한듯 부모들 사이에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 아이는 결국 완패를 당했고, 당황한 아이는 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선생님이 능숙히 아이를 달랬고, 귀여운 에피소드로 포장이 되었다.


경험으로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이는 다른 경기는 보지도 않은 채 자기 로봇을 개조하기 바빴다. 이제 와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여기에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쉴 새 없이 쉬며 아이를 계속 지켜봤다.


그러다 아이가 속한 팀에 상대할 선수가 한 명 부족했다.

탁월하신 강사님은 우리 아이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셨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만 웃을 수 없었다.

여기서 또 진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첫 판에서는 그 기다란 머리에도 불구하고 발라당 뒤집히고 말았다.

아이는 또 당황했고 사람들은 웃었다.

하지만 다행히 신의 은총으로 나머지 두 판을 우리 아이가 이겼고,

아이가 속한 팀이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1주일 후 놀이치료 상담에서 이 이야길 전했더니 선생님은 스스로 겪어야지 수용하는 아이라고 정의 내리셨다. 불합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이라고도.)


그리고 그날, 잠들기 전 아이와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것 말하기를 시도해 보았다.

교육 유튜브에서 교사 출신의 작가님의 말이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내가 울었지만 엄마가 맛있는 걸 사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과 자존감을 위해 매일매일 그리 말해주리라.




화. 실험과학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저번 주처럼 아이가 교문밖이라는 안심 알리미.

또 무슨 일일까.

교문 근처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디폼 블록 때문에 속상하고 손톱이 다쳐 방과 후에 못 가겠단다.

속이 끓어올랐지만 보건실에도 보내고, 겨우 설득해 가까스로 수업에 참여하였다.


다행히 아이는 질문에 답도 잘하고 발표도 잘했다.

하지만 앉은 자세가 불량해서 조마조마했다(계속 무릎 꿇고 앉음).

엉덩이도 들썩들썩하고,

재료 정리가 안되어서 계속 잃어버려 혼자 분주했다.

친구 물건을 덥석 가져가거나 하는 경우도 보였다. 당장 가서 해결해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ADHD라는 것이 여실히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친구들하고도 잘 소통하고 필기할 때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당탕하긴 했지만 선생님께 질문도 잘하고 큰 문제없이 끝난 수업이었다.




수. 컴퓨터


워낙 좋아하는 수업이라 퀴즈도 자신 있게 맞추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어려워 보이는 ppt 만들기 과제도 질문해 가면서 잘 따라갔다.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고 부산스럽긴 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집중을 잘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특히 선생님이 차분하시고 아이를 잘 배려해 주시는 모습이 안심이 되었다.

마지막에 인사를 드렸더니 잘하고 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저번에 바지에 소변을 실수한 적도 있었는데 잘 처리해 주셨었다.


다시 한번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든 시간들이었고 무사히 공개수업이 끝나 다행이었다.




그러다 파도처럼 목요일이 왔다.

그날 아침.

유난히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 보이던 아이.

줄넘기 수업이 있는 날이라 정문 쪽으로 나가야 하지만 늘 후문에서 나랑 만나서 정문으로 향했다.

그날 아침에도 후문에서 기다리겠노라 단속을 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후문에서 기다릴 때였다.

연락도 없이 정문으로 나갔다는 알림이 뜬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급히 가보니 이미 횡단보도를 건너 학원차 근처에 가있다.


나는 왜 후문으로 오지 않았는지, 친구랑 같이 가기로 했으면 연락을 미리 했어야 한다는

짧은 잔소리를 남긴 채, 급히 아이를 학원차에 태워 보냈다.


한 시간 후, 아이는 피곤했는지 자다 일어나 학원차에서 내린다.

함께 계단을 오르다 눈물 자국이 있길래 오늘 울었냐 하니,

학교에서 탈 만들기가 힘들어서 혼자 안 만들고 있었다 말한다.


결국, 울었다는 말이다.

그 울음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선생님은 아이를 내버려 둔 것이었다.


공감을 위해 타이르다가, 그래도 수업을 안 듣는 건 안된다고 강하게 얘기하자

갑자기 울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가슴속의 분노가 건드려졌는지 작은 책상을 발로 차고 폭력적인 모습이 나왔다.

나는 아이의 몸을 꽉 잡고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계속 소리를 지르고 벗어나려고 격렬하게 움직여서 혼자 버티기가 힘들었다.

나는 또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계속 잔소리로 아이를 자극시키며 더 꽉 눌러 잡았다.


또다시 시작이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순간,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지옥에서 언제쯤 구원이 될까.


한 시간쯤 후에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때, 마침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은 후, 아이에게 수업을 안 한 이유를 다시 물으니 가면 쓰기가 무섭고 그걸로 무용을 해야 해서 싫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마음을, 하기 싫은 이유를 선생님께 얘기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또다시 말한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께 연락드려 이유를 말씀드리고 탈은 주말에 만들어 가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그 사이, 우리가 아는 예쁜 아이로 돌아왔다.

아이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오늘은 스티커도 없고 보고 싶은 영상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착한 천사로 다시 돌아온 아이는 모든 걸 수용하고 지옥은 다시 천국이 된다.


자기 전에 서로의 대화.


"오늘 고마운 점 얘기 해볼래?"

"아까 그리기 도와줘서 고마워요, 엄마."

"태어나줘서 고마워."


학교에서도 감정조절이 안되어 힘들었을 텐데 감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다그치고 자극하는 말을 계속했던 나.

아이를 지옥 끝까지 가도록 만든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감정조절을 못한 나 자신에게 또 화가 난 하루였다.




다음 날은 또 어김없이 왔다.


나는 아이에게 계속 약속을 상기시켰다.


주말에 만들 탈, 악보, 컴퓨터책 챙겨 오기

정문에서 만나기

마치면 무조건 전화하기


오늘은 학교에서 따로 연락이 없었다.

너무나 평화로웠다.

그리고 아이는 전화하기만 빼고 약속을 잘 지켰다.

그래서 아이에게 잘했다고 폭풍 칭찬을 하고 줄넘기를 보냈다.


하원 후, 아이는 선생님이 걱정하셨던 자기 꿈 그리기 과제도 잘해와서 자랑을 한다.

탈도 로봇으로 예쁘게 꾸미고 직접 머리에 써보며 즐거워했다.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 주어 이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내 안이 가득 찬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다, 마음만 먹으면. 잊지 말자. 믿어주자.


아이가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극을 크게 느껴 감정이 요동치는
아이라면 배움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지언정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아이를 대한다면 아이는 규칙과 기준을 배우고 따릅니다.

예민함으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하되 한계와 기준을 배우고 좌절을 조금씩 견딜 수 있는 아이로 자라도록 도와주세요.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 최치현'-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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