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복용의 딜레마(에필로그)
토요일.
고민 끝에 상담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 ㄷ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이 되지 않았기에 한 시간을 기다려 상담이 시작되었다.
안경을 쓰고 무언가 차분하면서도 친근해 보이는 인상의 선생님.
작년에 받은 검사 결과와 내가 적어간 종이를 건넸다.
그 종이엔 아이의 증상과 고민, 궁금점이 가득 적혀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결과지와 종이들을 한참 들여다보시고, 중간중간 질문을 하셨다.
보통 ADHD약으로 많이 알려진 콘서타나 메디키넷을 먼저 사용하지 않고 아토목만을
복용해 온 것을 의아해하셨다.
작년에 콘서타의 수급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선생님은 지금 먹는 약에서 아토목은 유지하고
콘서타와 아빌을 가장 적은 용량으로 시작해 보자고 하셨다.
우리는 순간 당황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이 병원에 온 것은 맞지만, 우리의 결단이 백 프로 선 것은 아니었다.
목요일부터 잘했기에 갑자기 약을 추가하고 바꾸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또한 새롭게 약에 적응해야 하고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몰랐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망설임의 이유였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다.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우리는 일주일 동안 복용을 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에 복용 후, 각성이 너무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말을 너무 빨리 하고 더듬기도 했다.
마치 약 복용 전의 원래 우리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의력도 오히려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작용들도 나타났다.
식욕이 떨어져 잘 먹지를 않았다.
이건 성장과도 연관된 것이라 가장 안타까웠다.
저녁쯤이 되자 감정이 널뛰는 모습도 보였다.
각성이 올라 업이 되어 있다가 갑자기 또 우울해져 우는 모습.
무엇보다도 수면이 가장 걱정이었다.
아이는 새벽 시간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계속 뒤척이다가 1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그다음 날,
우선 먹던 대로 약을 먹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냈다.
아침에 담임 선생님께 약이 바뀌었고 잠을 잘 못 잤으니 양해를 부탁드리는 전화도 드렸다.
그리고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약의 효과가 너무 오래가는 것 같다며
아이가 힘들어하면 콘서타는 빼고 복용을 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각성된 모습, 입 쪽에 틱 같은 모습은 보였지만
감정이 안정되어 보였고,
무엇보다 어제보다 밥을 잘 먹고
잠도 10시쯤에 들었다.
그래서 일주일간은 약을 유지해 보기로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한 번 정도 눈물을 흘린 적은 있었다고 아이는 말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그 병원으로 향했고,
틱 증세가 보이고 각성이 높다는 말에
아빌만 좀 더 증량이 되었다.
분명,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증량이 되지 않길 바랐다.
별 효과도 보이지 않았던 아토목도 용량을 줄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2주 정도 더 지켜보았다.
증량된 약 때문인지 아이는 좀 더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잔짜증도 늘고 많이 피곤해했다.
방과 후를 가기 힘들어하거나 줄넘기도 가기 힘들어했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반으로 나누어 먹이라고 하셨다.
저번주와 같은 용량의 약을 먹은 아이는 좀 더 안정되어 보였다.
각성도 조금 낮아지고 틱 증세도 전보다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저녁에, 남은 약을 먹이다 잠을 더 못 자고
배도 계속 아프다고 해서 지금은 아침에만 반을 먹이고 있다.
2주가 되어 가는 지금,
아이는 많이 안정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아이도 좀 더 밝아진 느낌이고,
다시 학교가 좋다고, 선생님이 좋다고 말한다.
방학이 싫단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꿈꾸고 있다.
3월의 우리처럼.
하지만 마음속에 딜레마는 여전하다.
약을 콘서타로 바꾼 후,
많은 검색을 하고 책들을 찾아보았다.
콘서타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약으로 아토목과는 달랐다.
향정신성의 약품, 마약류의 일종이다.
의료용 약품이며,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죄책감은 피할 수 없다.
어느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이런 약을 먹이고 싶을까.
각성제의 일종이며, 아이의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
수많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약.
아이에게 정확하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는 약.
20킬로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에게
이 알약들을 먹이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마치 아이가 실험 대상이 된 양,
이 약 저 약을 먹이며 다양한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내 아이를 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ADHD는 병이 아니다'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10년도 전에 나온 책이었지만 그 당시 미국도 지금의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주의 산만한 아이들은 문제아로 치부되고,
병원으로 보내지고 알 수 없는 약들을 먹였다.
학교에서 말 잘 듣는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 저자는 심리학과 교수로 여러 아이들을 만났고,
이런 부조리함을 꼬집었다.
이 아이들은 병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저 개구쟁이들일 뿐이라고.
알 수도 없는 그 독약들을 그만 먹이라고.
ADHD의 정확한 원인도, 그 약들의 효과와 안전성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사회가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늘어나는 일상의 스트레스, 의도치 않은 사실상의 방치, 긴장이 도는 가정환경, 가정교육과 집안일을 지원하던 대가족의 해체 등이 이런 아이들을 더 양산해 내고 있다고 한다.
약 대신,
보호자가 올바른 자녀 양육법을 배우고,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여 정서적 안정을 주어야 아이의 자존감도 오르고 문제 행동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의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서 아등바등 아이를 길렀던 육아,
그로 인한 많은 스트레스들.
복직으로 인한 맞벌이로 방치 아닌 방치의 시간들.
일관성 없었던 훈육.
이런 것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당장 약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수많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온 아이이기에
약을 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또다시 그 시간들을 건너와야 한다.
저자도 스스로에 대한 낮은 자존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이 10살이 되기 전에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막,
아이는 다시 학교와 선생님이 좋아지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자아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스스로도 감정의 폭발 없이 학교 생활을 잘해나가고
그로 인한 자신감과 자존감이 조금씩 붙고 있다.
물론,
부모도 마음에 평화가 깃들었고 가정도 더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다.
매주 아이에게 쏟아붓던 잔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 대신,
웃음소리와 행복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우리의 목표는 아이의 정서적 독립이다.
약 없이도 스스로를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아이.
그래서 부모로서 더 노력하고자 한다.
아이의 정서 안정을 위해 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훈육 방법을 계속 배우고,
조금씩
조금씩
약의 용량도 줄여보려 한다.
아이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계속 이어지길 꿈꾸며.
방학 동안에 아이와 즐거운 추억을 쌓고,
더 노력하는 부모가 되어
2학기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 :
그동안,
많은 응원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이곳을 통해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많은 치유가 되었고
아이로 인해 더 나은 인간,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