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달까지 가자
내일이면 아이의 초등학교 첫 여름방학이 끝난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개학이 정말 반갑다. 한달 여의 기간 동안 밥을 세끼 차려 먹이며 아이와 지지고 볶는 것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직 기간이 쌓여갈수록 교사보단 학부모 정체성에 가까워 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에나, 개학이 반갑다니.
한달 동안 나 자신 애썼다며 토닥여준다. 동시에 머리도 좀 비우고 싶다. 그래서 이번주는 습관이니 문해력이니 발달이니 이런 말이 없는 책, 다시 말해 교육서가 아닌 내가 좋아서 읽는 책에 대해 써보고 싶다. 가벼워진, 하지만 얼마쯤은 모험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장편소설을 집어들었다.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이다.
장강명, 장류진 작가처럼 직장인이었다가 소설로 성공한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들의 성공 스토리는 나의 열정과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물론 난 소설은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 취미로나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지만. 그러다 그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여지없이 나와의 어마어마한 괴리를 느끼곤 한다. 이런 재능이, 글빨이 나에겐 한참 없지 하는 열패감을 느낌과 동시에 처음부터 문학을 하던 작가들에 비해 현실과 더 맞닿아 있어 어딘지 더 몰입하게 만드는 그들의 소설에 감탄하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감탄하며 읽은 이 소설에서 나는 과연 어떤 교육 얘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다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아는 제과 회사에 다닌다. 마론제과라는 이 회사는 업계 탑으로 꼽히지도 않고 취준생들이 선망하는 기업은 결코 아니지만 또 어느 편의점에서나 볼 수 있는 히트제품을 만든 회사이다. 이곳에 주인공인 다해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3개월을 하고 인턴으로 전환하여 1년을 더 다니다 정규직 전환 프로세스라는 기존에는 없던 과정으로 입사했다. 입사한 후 보이지 않는 공채 사원들과의 선, 짜디짠 월급 인상률로 팍팍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던 다해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비공채생 2명-은상 언니, 지송이-과 단짝처럼 친하게 지낸다.
-M등급 인상률2%.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 그래도 코딱지만큼 주면서, 여기서 2%라고?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야. 그런데 인상률이 2%면?
내가 답장했다. -거의 동결이네.
-동결이지. 언니가 이어서 말했다.
-근데 보통 체감물가는 더 높잖아. 한은발 올해 체감 물가상승률이 2.6%래.
한마디로 사실상,
-깎인 거네.
-깎였다고 봐야지. (P.24~25)
주변 모든게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제자리인 느낌, 나도 매년 경험하는 것이다. 게다가 원천징수로 떼가는 세금은 올라서 실수령액은 전년보다 줄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지출할 일은 왜 이렇게 늘어나는지, 게다가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물가 상승률보다 내가 체감하는 물가는 더 치솟는 듯 느껴지며 결국 근로소득만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현타가 오고야 마는데...
"뭔지 알려주면, 너희도 같이할래?"
'같이하자'는 말에 지송이와 내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만났다가 다시 은상언니에게도 향했다. 지송이가 주저하며 물었다.
"뭘 하는데?"(중략)
"혹시 비트코인이라고, 알아?"(중략)
"사이버머니 같은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가상화폐지."
"그게 그거지. 사이버는 가상, 머니는 화폐. 합쳐서 사이버머니. 맞잖아?(중략)
"언니, 그래서 결론이 뭐야? 지금 우리한테 비트코인을 하자는 거야?"
"다해야." 언니가 자세를 낮춰 테이블 건너 앉은 내 쪽으로 몸을 슬쩍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소리를 할 것 같니?"
언니는 이더리움을 하자고 했다. (P. 42~48)
이 장면의 시간적 배경이 2017년이다. 2017년에 셋 중 가장 이재에 밝은 은상언니는 이더리움 투자를 권한다. 2017년.. 이때 이더리움을 샀었더라면! 하는 진한 후회가 밀려들지만 그때의 내가 과연 블록체인에 대해 이해하고 확신을 갖고 투자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엔 고개를 젓게 된다. 2017년의 나는 아마 지송이나 다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 코로나 때 실물 자산의 가치가 급등하는 시기를 경험하며 나도 그 분위기를 타서 주식과 채권, 코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송이가 4호 칸의 등받이 쿠션에 한쪽 어깨를 비스듬히 기대며 말했다.
"간만에 연애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또 이런 얘기야? 강은상이 그렇지 뭐."
"난 연애 필요 없다. 연애가 밥 먹여주니?"
"그럼 그거, 이베리코인지 이더리움인지 그건 밥 먹여줘?"(중략)
지송이가 진저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언니의 휴대폰을 강하게 밀어냈다.
"그래서 요즘 가상화폐에 투자 중이라는 거야? 이 언니 정말 큰일 날 언니네."
은상 언니가 바로 받아쳤다.
"큰일 날 언니가 아니라 크게 될 언니지." (P.52)
지송이와 마찬가지로 이더리움보다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더 익숙했을 2017년의 나는 5년 후 2022년에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을 사게 되는데 작년에 조금이나마 갖고 있던 이더리움을 전량 매도했다. 당시엔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에 비해 가격이 영 안나가는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내가 판 후부터 지금까지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의 상승폭이 훨씬 크다.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소설 밖의 내가 다해에게 맘속으로 크게 외쳤다. 빨리 은상언니 말 들으라고, 무리가 없는 한 이더리움을 최대로 사라고! 과연 나머지 두 명은 은상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이 이상의 뒷얘기는 여기에 옮기지 않겠다. 대신 우리가 돈을 대하는 이야기와 또 우리 아이가 돈을 어떻게 대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는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며 돈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돈이 있으면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용도에 맞는 신발을 여러 켤레 구비할 수 있어 편하고, 또 내 몸과 마음이 지쳤거나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일을 잠시 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동의 댓가로 받는 월급이, 또 예적금의 이율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월급을 굴릴 것인가의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거치게 되는 수순이다. 그런 고민 끝에 남편과 나는 각자의 주식, 코인 계좌를 각자의 방식대로 운용하고 있다. 그렇게 나름 주식투자 경력이 5년쯤 쌓였고 내내 손실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지금은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보고 있다. 시드가 아주 작고 귀여운 정도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쉽지만 말이다.
주식과 코인 투자를 하며 자연스레 세계 경제 동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제 신문을 구독하게 되었다. 경제 신문을 본 지 벌써 2~3년쯤 되었을까, 얼마전엔 아이와 끝말잇기를 하다 '집'으로 시작하는 차례에 아이가 걸렸다.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는 '집코*미!'라고 외쳤고 나와 남편의 웃음이 터졌다. 그 낱말은 우리가 구독하는 신문의 부동산 코너 이름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곁눈질로 부모인 우리가 보는 것을 익히고 우리가 하는 얘기를 다 듣고 있구나 싶어 놀라웠다. 동시에 말과 행동에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책임감이 들기도 했다.
신문을 읽으며 주식투자를 해 보면 세상이 참으로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내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2020년엔 2차 전지가 대세였고 전문가들은 중국이 주력하는 리튬인산철(LFP)배터리보다 보다 안전한 우리나라의 3원계 배터리(NCM)가 몇년 사이 세계를 점유할 거라 점쳤었다. 그러나 3년 후부터는 전기차의 수요 둔화라는 '캐즘'이 세계를 뒤덮었고 자연스레 2차 전지 관련주는 추락했다. 그러는 사이 폭발 위험이 더 높아서 널리 쓰일 줄 몰랐던 리튬인산철(LFP)배터리가 대세가 되었고 우리나라 2차 전지 회사들은 뒤늦게 3원계 배터리 대신 LFP배터리 양산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내 계좌의 2차전지 회사들은 아직도 원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한번은 어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투자 보고서를 보고 2차 전지 충전기를 만드는 회사의 주식을 산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수익을 얻었다. 그것도 다른 주식들의 손실을 상쇄할 만큼이나 많이. 하지만 이 주식이 치솟은 이유는 내가 산 의도나 그 애널리스트의 예측과는 달랐다. 나는 2차전지 충전기 시장이 확대될 것이며 그것을 개발하는 회사가 유망할거라는 기대로 산 건데 정작 전기차는 판매 부진에 시달린 한편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AI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전기 소비 또한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 추세에 맞추어 미국에 변압기를 수출하고 있던 그 회사의 주식이 급등한 것이다. 뭐, 쉽게 말하면 얻어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주식투자를 계속하며, 또 매일 경제 신문을 읽으면서 나는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덜 소외되어 간다. 어젯밤 미국 주식이 상승 혹은 하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트럼프의 관세 협상에서 어느 나라는 선방하고 어디는 영 불리한 결과를 얻었는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채권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는 나중에 나보다 더 일찍, 또 더 깊이 경제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엄마, A아파트 재건축 투표한다는 말이 붙어 있어요. 저는 반대예요."
-왜?
"지금도 충분히 좋은 것 같고, 재건축 될 동안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 집에서 나가야 하잖아요."
-엄마는 찬성이야. 이 아파트가 재건축이 되면 우리 아파트에도 좋은 기회가 될거야. 네 말대로 여기 사는 사람들이 몇 년간 집을 비워줘야 할 때, 근처에 있는 우리집의 인기가 높아질지도 몰라. 또 나중에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재건축을 추진할지 모르지. 그때 앞서 성공한 사례가 있으면 확실히 도움이 될거야.
"근데 엄마, 새 아파트를 지으면 되지 왜 허물고 재건축을 해요?"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위치는 한정되어 있거든.
"한정이 뭐예요?"
-많지 않고 어느 정도로 정해져 있다는 말이야.
이런 대화가 오가며 재건축에 대해 희미하게 이해한 아들과 요즘은 서울 유명 재건축 아파트의 수주전에 대한 기사를 함께 읽기도 한다.
"넌 어느 건설사로 정해졌으면 좋겠어?"
-전 B건설사요. 모든 세대에서 강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다음주 금요일에 조합원 투표를 한대. 그 날 우리 어느 건설사로 정해졌는지 찾아보자!"
1학년에게 너무 빠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난 아이의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줬으며 그걸 조금만 더 확장시켰을 뿐이다.
"예전에 언니가 그랬잖아. 돈의 속성을 알아내고 말 거라고. 돈이 어디로 가는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그런 것들을 밝혀낼 거라고."
"그랬었지."
"그거, 알아냈어?"
내게서 시선을 거두며 잠시 먼 곳을 응시하던 언니가 다시 입을 뗐다.
"응, 이제 알 것 같아."
"어느 쪽으로 가는데?"
여전히 시선을 바다에 둔 채, 언니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 (P. 332)
우리 아이도 돈을 무서워하거나 터부시하지 않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작품 속 은상언니처럼 너무 돈만 쫓는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돈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람 말고 돈을 통해 더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또 돈을 좋아하면서도 돈에게 압도되기 보단 돈으로부터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남편이 돈을 향하는 태도의 모범을 보여 주고 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아이도 돈을 친숙하게 여기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엔 한참 멀었으면서 아들이 그렇게 크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에휴,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지만 또 못 갈 건 아니지.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지 않나. 하던대로 오늘자 경제신문을 다시 한번 읽고 주식 계좌도 점검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주니어 경제신문 구독도 신청하기로. 이렇게 인풋이 쌓이다 보면 몇 년 후엔 아이 계좌에 어느 회사 주식이 들어있는지를 보여주고 아이의 의사도 반영할 날이 올 수 있겠지. 그럴 날들이 기대된다. 정말이지 세상은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