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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Aug 21. 2023

국공립 유치원에서 얻은 힌트

 우리 엄마는 병설유치원 교사로 30년을 넘게 근무하셨다. 명예퇴직하신지 어언 10년이 되어가던 차,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손자 돌볼일도 없어 무료함을 느끼셨는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된김에 활동욕구를 느끼셨는지 집에서 멀지 않은 국공립 유치원 시간강사 자리에 지원하셨고 요즘 출근하고 계시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맡은 아이들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6세, 당신의 손자와 동갑인 아이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천재인줄 아셨던 엄마의 기대는 첫 출근 후 와장창 깨졌으니, 통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도시 애들은 원래 이렇게 똑똑하니? 어쩜 여섯살짜리가 어려운 종이접기를 그렇게 잘한다니? 두꺼운 종이접기책을 보고 스스로 접더라."

 엄마의 말씀에 따르면, 그 유치원 아이들은 매일 아침에 긴 자유놀이 시간을 갖는단다. 그때 스스로 종이접기책을 보고 색종이를 접기도 하고 블럭방에 들어가 한참 블럭을 만들기도 한단다.

종.이.접.기

그것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책읽기,영어, 수학 등 인지적 교육에만 치중하던 나는 유아시기의 소근육 발달에는 관심을 한참 덜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말씀에서 놀란 포인트는 또 있었다. 아침에 등원하면 아이들은 가방을 비롯한 소지품을 교사의 도움없이도 착착 정리한다고 한다. 우유급식 후에는 라벨과 우유통을 분리하고, 우유통을 물로 헹구어 배출한다고 한다. 동갑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도, 아홉살 아이들의 담임으로서도 입이 떡 벌어지는 대목이었다. 영유아 검진에서 '자조'라고 명시된 항목, 쉬운 말로 하면 '스스로 하기' 분야에서 우리 아이는 그 아이들에 비하면 천둥벌거숭이 수준인 것이 분명했다.


 1학년 담임을 할 때, 그 학교는 병설유치원이 없었는데도 학교 인근의 공립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이 빨랐던 것이 떠올랐다. 학부모 상담때 아이에 대한 칭찬만 하는 내게 한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 저희 애는 공립 나와서 유치원때부터 솔직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저 괜찮으니 저희 아이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라던.

물론 공립을 나온 아이들이 적응이 빠르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아니고 단지 빠르다는 것에 불과해, 몇개월이 지나면 어느 유치원을 나온 아이든 모두 대체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그래도 그때 공립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교에 빨리 적응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학교 생활은 스스로 하기가 무척 중요하고 유치원 선생님보다는 덜 친절한 학교 선생님에게도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1학년의 교육과정에는 그리기, 가위질하기 등 소근육 발달을 요구하는 활동이 많다. 국공립 유치원에서는 이 모든 활동을 일상처럼 하는구나, 참 가까운 듯 하면서도 몰랐던 세계였다.


 겸손해지는 깨달음 또한 얻었다. 내가 아무리 초등교육을 전공했다 한들 유아교육 전공자는 아니라는 것. 유아교육은 유치원 선생님들의 전문분야라는 것 말이다. 물론 대학에서 여러 교육 심리학자들의 유아기 발달이론을 배웠긴 하지만 그건 추상적인 이론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유아교수법은 내가 모르는 분야라는것을 깨달았다.


 영어를 학습 대신 언어로 접하길 원했기에 영유를 보냈고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아교육의 전문 현장에서 어떻게 하는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조금 엿볼 수 있었기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 아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주고 기다려 주는 것, 자유롭게 놀이할 시간을 확보해 주고 소근육이 발달될 수 있는 활동 기회를 많이 주는 것 등이다. 60 넘은 엄마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이래서 평생 배워야 한다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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