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퍼먹는악어 Mar 02. 2023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

- 입학 첫 날

3월 2일은 개학일이자 1학년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1학년 학생들이 각 교실에서 자리를 찾아 앉고 뒤편에 학부모들이 섭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양해를 구한 후 학부모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날이 초등학교 6년 동안 거의 유일하게 담임교사가 반 학부모 전체를 대면하여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시간입니다. 학부모들이 학교관을 잘 세울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 교사의 이야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주신 학부모님들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지가 가장 궁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교육활동들은 차차 안내해 드리겠지만 먼저 저의 교육 중점사항들을 들으시면 아이들이 1년 동안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가늠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를 중점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겠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하기입니다. 유치원까지는 학생과 관련된 많은 일을 학부모님들이나 교사가 해 주었습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주성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물론 아이 스스로 하다 보면 실수가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은 실수를 하면서 배웁니다. 배울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익힐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면 어느새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아이들은 이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낼 수 있습니다. 일상의 일을 스스로 하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고하고 주장하는 방법을 아이들은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아이들과 많은 것을 의논하고 공유하여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교실을 만들겠습니다.

두 번째는 더불어 사는 법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1-4반이라는 작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행복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배려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아이들이 잘 이해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실제 상황에서 구체적인 지침으로 끊임없이 가르치겠습니다.


학부모님들께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다른 반과 우리 반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교사들마다 각자 다른 강점들이 있습니다. 아이는 6년의 학교생활을 거치면서 많은 교사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배웁니다. 조바심 내지 않으셔도 아이들은 각각의 교사들에게 그들의 장점들을 배웁니다. 학부모님들이 우리 반과 다른 반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교사들은 위축되어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색깔 없는 교육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러면 교육은 하향평준화 됩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손해입니다. 그러니 올해의 교사를 믿고 다른 반과 비교하지 마세요. 혹시 옆 반 학부모님께서 우리 반에 대해 물으시면 “어, 똑같네.”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냥 넘기세요. 우리 반 자랑을 많이 하지도 마시고 옆 반 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둘째, 아이가 교사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이들의 주 양육자는 학부모님이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담임교사입니다. 학교엄마인 셈이지요. 하지만 무조건 품어주고 챙겨주고 수용하는 엄마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치며 바른 길로 지도하는 엄마입니다. 따뜻하게 가르치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그러다가 혹시 아이 말을 전해 듣고 불만스러운 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불평하는 아이 앞에서 교사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세요. “엄마가 선생님을 아는데 아마 다른 뜻이 있으실 거야. 네가 선생님께 한번 여쭤보렴.”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이것은 교사인 제가 아니고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은 사랑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저는 학생들과의 시간을 통해 신뢰를 쌓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학부모님들이 아이의 마음에 교사에 대한 신뢰를 심어 주셔야 합니다. 자신이 가장 의지하는 부모가 교사에 대한 신뢰를 보여 주면 아이는 교사에게 더 많은 것을 더 편안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교사의 속내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

 

‘학생은 훌륭한 사람에게 잘 배운다.'라고 합니다. 그럴듯합니다. 그럼 학생의 보호자와 교사는 꼭 모두 훌륭한 사람이어야만 할까요? 잘 자란 아이들의 보호자와 교사는 모두 훌륭한 사람인가요? 같은 교사에게 배워도 학생은 천차만별입니다. 같은 부모에게 나서 자란 형제 중에도 잘 자란 아이와 그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교사들은 다 훌륭한 사람인가요? 교육과정을 공부하고 교직을 이수한 후 임용시험을 통과했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들은 어떻습니까? 부모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훌륭함이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더 좋은 사람이 부모가 된다거나, 부모가 된다고 갑자기 더 훌륭해진다고 말할 수 없다면 부모들이 우리 사회 평균 이상으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우리 사회 수준이 부모들 수준입니다.


제 주장은 이렇습니다. 학생은 훌륭한 사람에게 잘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에게만 잘 배운다라고 한다면 교육에 대한 오해입니다.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신뢰는 대단합니다. 문제 행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 행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자율성이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인 편이어서 작은 사안도 부모의 힘을 이용하려 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그런데 말한 대로 부모라고 특별히 훌륭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훌륭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의지한다거나,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특히 부모들의 훌륭함을 잘 간파해서 크게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부모는 최대 한 쌍이고 더 이상의 대안이 없습니다. 대안이 없으니 여타 존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모에 대한 신뢰가 높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방하고 닮아가는 데는 이 신뢰가 한몫합니다.     

즉, 학생은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잘 배운다기보다는 자기가 신뢰하는 사람에게 잘 배웁니다. 마찬가지로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닌 존경하는 사람, 좋은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사람, 훌륭한 사람보다는 훌륭하다고 학생이 인정하는 사람에게 잘 배웁니다.  

     

그럼, 교사에 대한 학생의 신뢰와 인정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학생이 어릴수록 그런 판단력은 떨어집니다. 보호자가 대신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죠.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 이 말에 생략된 부분까지 한다면 ‘선생님의 훌륭함을 내가 보증하니까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돼.’가 됩니다. 실제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음 문제입니다.      


학생은 훌륭한 사람에게 잘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하다고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에게 잘 배웁니다. 그 인정은 학생이 어릴수록 부모가 보증해줘야 합니다. 부모가 훌륭해서 보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고 기름으로써 획득한 것입니다. 보호자의 보증으로 학생이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교사의 좋은 점을 골라 배워서 성장하는 곳이 교실입니다. 결국, 교사에 대한 학생의 신뢰는 교실에서 쌓이기 전에 학부모가 학생의 마음에 미리 채워 놓아야 합니다.



이전 02화 왜 교실 속 스토리텔링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