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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퍼먹는악어 Sep 22. 2023

왜 교실 속 스토리텔링인가?

그래도 선생님

학생은 교사의 개인사를 좋아합니다. 학교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대표적인 클리셰가 뭘까요? 학교 소재에 교생까지 등장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대사가 있습니다.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첫 키스는 언제 했어요?" 특별할 것 없고 주목받지 못하는 교사가 사는 일상이 학생들에겐 꽤 흥미로운 관심사가 됩니다. 심지어 저 대사는 중고등학생용이고 초등학생들은 더 시시하고 별 것 없는 교사가 겪는 일상에 관심을 보입니다. 샘이 타는 오래된 고물차 번호를 외우고 샘이 키우는 아이들이 쓰는 이름과 학년을 알고 싶어 합니다. 샘이 사는 집은 어디에 있는지, 몇 층인지가 궁금하고 일상을 들을 때에 아이들은 눈이 초롱초롱합니다. 샘이 일상을 얘기하면 수업을 안 한다는 마음에 좋아하다가 어느새 빠져듭니다. 담임교사가 하는 이야기는 탄탄한 구조나 매력적인 주인공, 반전 등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수준 높은 장치들이 저학년 학생들에겐 이해하고 몰입하는 데 방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아직 살아보지 못한, 그야말로 교사가 먼저 살아서 알고 있고 현재 겪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학생들은 높은 집중도를 보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개인사를 늘어놓을 때 학생들이 보내는 경외와 관심, 사랑을 느낍니다. 교사의 개인사와 일상에 누가 이리 큰 관심을 보일까요?


스토리텔링의 힘 – 권위, 지루함

건축학자 유현준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를 공간이 가지는 첫 번째 원칙으로 뽑습니다. 교실 앞, 학생들의 시선이 모이는 위치에서 홀로 말하는 교사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권위를 상실하여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들에게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감정만 코칭하다 아이를 망가뜨리는 시대'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요즈음 학교에서 스토리텔링은 학생의 행동과 생각에 권위 있게 개입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누군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질 거라고 걱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지루함이 스토리텔링의 힘입니다. 현재 우리 초등학교는 학급담임제입니다. (일부 시간을 교과담임(교과전담교사)이 맡고 있습니다만 학급담임의 영향력과 비할 바는 아닙니다.) 반에서 시간은 교사의 편입니다. 9시 아침인사와 시작한 스토리텔링이 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흥미를 보였던 학생들이 몸을 베베 꼬면서 '이제, 제발' 그만하라는 표정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갈 데가 없습니다. 어찌 됐든 교실 안에서 자기 책상을 두고 의자에 앉아 샘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재미없고 지루할수록 그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 않아 행동수정을 하기도 합니다. 미소를 띤 채 사랑한다고 정색하는 표정의 교사에게 지루하다고 맞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샘, 제발 그만해요" 하면 "이렇게 샘이 목 아프게 말해도 안 듣잖아요. 샘 말을 잘 들어보세요" 하면 그만입니다. 시간은 교사의 편입니다. 부모의 말에는 "아, 왜요?"가 되지만, 교사가 미소 뛴 얼굴로 전체 앞에서 하는 반복되는 스토리텔링에 "아 왜요?"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겨워서 하고 만다.' 그러다 보면 즐기게 됩니다. 우리는 교사답게 아름다운 말을 나열하면 그만입니다. 




-참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유현준, 공간의 미래, 을유문화사, 2021)

 '감정만 코칭하다 아이를 망가뜨리는 시대'(베른하르트 부엡, 왜 엄하게 가르치치 않는가, 유영미, 뜨인돌, 2014, 책의 부제 -  감정만 코칭하다 아이를 망가뜨리는 시대를 향한 진심 어린 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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