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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퍼먹는악어 Mar 04. 2023

등가교환을 넘어

- 급식 지도

학부모 상담 : 선생님, 우리 아이가 김치를 안 먹어서 걱정이에요. 급식실 김치가 너무 맵대요. 물에 씻어 먹으라면 귀찮다고 하고...



- 교사의 이야기


샘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뭐지요? 

(품위요)

급식 시 품위가 뭘까요?

(...)

샘도 군인이었어요.

(우리 아빠는 해병대예요) 

군대에서 작전할 때 가장 중요한 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에요. 적진에 들어가서 활동하는데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똥 싼 거, 과자 먹은 봉지, 구멍 난 양말. 이런 거 버리고 다니면 어떻겠어요? 적군이 '아~ 여기에 우리 적들이 머물렀구나' 하면서 추적할 거 아니야. 들키면 포로 되는 거야. 어디서든 난 자리가 티가 나서는 안됩니다. '여기 누가 왔다 갔구나?'가 아니라 '누가 왔다 갔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해야 해. 구름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거야. 그런데 급식실에서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흔적일까요? 

(음식물 쓰레기요) 

그건 괜찮아. 입맛에 영 안 맞고 배부르면 못 먹는 거지 뭐. 한 입 도전해 보고 어쩔 수 없이 남기는 거야 어쩌겠어. 물론 식탁이나 바닥에 흘리는 건 젓가락이나 손으로 주워서 흔적을 지워. 물증을 없애란 말이야. 언제 어떤 샘이 여러분들 등 뒤에서 감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잖아. 샘들은 어디에나 있어. 샘들을 조심해야 해. 숟가락, 젓가락 떨어뜨리면 벌써 들킨 거야. 떨어지면서 소리가 나잖아. 샘들이 못 본척하지만 다 알아요. 귀를 세우고 듣고 있거든. '옳지, 저기 4반이구나. 4반 학생이 줍나, 안 줍나? 저 담임샘이 지도를 잘했나, 못했나?' 하고 말이에요. 샘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돼요. 아, 그리고 소리! 특히 중요한 게 식기 놓는 소리입니다. 다 먹고 잔반 버리고 식기를 소리 없이 놓느냐, 그렇지 않으냐. 그게 여러분의 품위를 가릅니다. 최대한 끝까지 가시는 길을 배웅해 주세요. 식판님과 수저님과 젓가락님이 안전하고 곱게 가셨다 내일 또 오시라고 바닥까지 배웅해 주세요. 그래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배웅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또 있는데 쓰레기입니다. 보세요. 이 색종이님을 끝까지 배웅 안 한 누군가가 있잖아요. 

(영미가 버렸어요) 

(나, 아니야) 

(너잖아, 아까) 

괜찮아요. 괜찮아. 샘은 관대하잖아. 샘이 이렇게 배웅해 주지 뭐. 

(샘, 다음에도 부탁해요)

감사함을 표현하면 또 여러분의 품위를 1만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배식받으면서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세요. 그래야 나한테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주실 거 아니에요. 닭다리 같은 거 나오잖아? 샘한테는 꼭 하나 더 주신답니다. 왜 그런 줄 알아? 샘이 꼭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하거든. 

( 에이~ 샘이니까 더 주는 거지 뭐) 

그러냐? 나는 내가 인사 잘해서라고 믿는다, 에헴. 저번에 샘이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샘 학생 중에 하나가 이러는 거야. "샘 배식하는 게 저 사람들 일이잖아요. 월급도 받고. 감사 인사를 왜 해요?" "너는 그럼 마트나 미용실에서도 인사 안 해?" "당연하지요. 다 돈 받고 하는데."

(와 인성 쓰레기) 

(헐 개막장) 

아따, 좀 봐주자. 몰라서 그런 거잖아. 그래서 샘이 물었어요. "그럼 마트 사장님은 왜 너한테 안녕히 가세요.라고 할까?" "그래야 물건을 사러 오잖아요. 내가 손님이니까, 돈 벌려고" "사장님이 인사 안 해도 가게 갈 거잖아." "안 갈 건데요. 다른 가게 갈 거예요" "다른 가게도 불친절하면?" "안 그래요. 돈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샘이 어떻게 했을까? 샘은 계속 인사 잘해서 닭다리 3개씩 먹었고, 어느 날 보니까 걔한테는 못난 닭다리 주시더라고. 샘이 어떻게 했게? 

(모른 척?)

(와. 인성...)



-교사의 속내

모든 것은 급식 지도와 같습니다. 


급식 시간의 기본 원칙은 식사 예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보조적으로 편식을 교정해 골고루 먹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편식을 교정한다고 식탁에서 아무렇게나 행동하도록 두는 것은 가정에서도 잘못된 양육 방식일 겁니다. 더구나 단체 급식을 실시하는 학교에서 각 학생의 편식 지도가 식사 예절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교우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한테 예의를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드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타인을 배려하는 것,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지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더 많은 친구를 사귈지, 어떻게 인기를 얻을지는 그다음입니다. 학습지도는 어떻습니까? 선생님에게 배우는 자세가 공손해야 하고 익히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창의적인 발상을 표현하는 것은 그다음이 돼야 합니다.       


돈을 냈으니 감사 인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사고와 표현을 하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등가교환 원리를 터득한 것이죠. 등가교환은 같은 가치들끼리 교환하는 것입니다. 저 학생에게 감사 표시는 논리적으로 등가교환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과잣값을 지불했으니 과자를 가져오면 되는 것이지, 인사를 하는 것은 등가를 해치는 것이다’, ‘내 부모가 세금을 냈으니 내가 어떻게 하든 샘은 나를 사랑으로 교육해야 한다.’, ‘내 부모가 돈을 냈으니 급식 샘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거래 질서에 맞지 않다’라고 인식하는 겁니다. 


이처럼 학생들은 불균형하게 성장합니다. 돈을 내고 과자를 사는 행위 등을 통해 등가교환의 원리를 터득했지만 동시에 도덕, 예의 같은 정신적 가치는 내면화하지 못한 겁니다. 물건의 매매 원리에만 집착하는 것이죠. 아이다운 고지식함이고 이해하자고 하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해당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위 어른이나 환경에 학교가 변화를 주는 것은 요원하고, 어른이면서 교사인 입장에서도 이런 학생들의 내면을 상대하는 순간들이 녹록지 않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고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사고방식과 습성을 지닌 존재들. 그럼에도 어떻게든 애정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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