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산책로 - 『빌리 밀리건』

by 르노르망


세 번째 산책로 - 『빌리 밀리건』



『빌리 밀리건』을 만나게 된 계기는 어디까지나 앞서 언급한 『앨저넌에게 꽃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앨저넌에게 꽃을』의 번역본인 『빵가게 찰리의 행복한 나날들』은 이미 오래되고 낡은 책이어서인지 오랫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빌리 밀리건』 역시 그러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부푼 마음으로 해당 서가로 돌진했다.


그 결과 : 그 책은 거기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된 나는, 왜 『앨저넌에게 꽃을』을 산 그날 이 책 또한 집어 들지 않았는지를 –게다가 세일하는 날이기까지 했잖은가!- 자책하기 시작했다. 대니얼 키스의 『빵가게 찰리의 행복한 나날들』이 내가 찾던 『앨저넌에게 꽃을』과 같은 책이란 것도 모른 채, 일단 한번 읽어 보고 다른 책을 읽을지 결정해 보자 했던 안일한 생각이 결국 『빌리 밀리건』의 선택을 보류하게 만든 것이다.


절판된 책도 아닌데 새로 한 권 사면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오랜 기간 중고 서점을 드나들며 책을 골라 온 사람이라면, 지금 나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항상 서가에 꽂혀있어 구매를 미루어 둔 책이 갑자기 『앨저넌에게 꽃을』처럼 특별한 계기를 통해 그 중요성을 드러낸 까닭에, 뒤늦게 기대에 차 그 책과의 만남을 열망하며 달려왔건만,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린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실망감이란. 아니, 여기에는 실망이라 단정하기에는 부족한 묘한 패배감마저 작동한다.


그건 하필 그 책이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겐가 미리 선점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그 책의 가치나 진가를 알아본 비슷한 취향의 사람에게, 그 책의 소유권을 빼앗겨버린 박탈감과도 비견될 만하다.


특히 중고 서점의 세일 날 이런 승부욕들은 극에 달한다. 승부욕을 ‘승부욕들’이라 복수로 표현한 것은 비단 나 하나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으리란 추측에서다. 다른 모든 사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아가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 책을 구입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들은 유독 이런 날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즉, 나의 지적 산책로들을 가급적 많이 확보해 두기 위해서, 물리적 산책로를 향한 몸동작을 빨리 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날이면 아예 작정을 하고 중고서점을 방문하는 책 애호가들(혹은 중고 서적 상인들도 섞여 있을까?)의 비슷비슷한 움직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날은 소설이나 에세이뿐만 아니라, 상당한 가격 때문에 구매를 미루어왔던 두꺼운 인문학 서적들 혹은 컬러 도판이 가득한 고화질의 미술 서적이나 그래픽 노블들 역시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그렇게 한두 번 놓친 책이 몇 권 된다. 또한 그럼에도 줄곧 인내 어린 기다림 끝에 결국 손에 넣게 된 책들도 있다.


그때는 무엇보다 나의 산책 시간을 언제로 잡느냐가, 즉 서점에 언제쯤 당도하느냐가 중요하다. 세일 날 퇴근 시간 즈음에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모든 서가의 책들이 설겅설겅해진다. 이미 오전 오후반 경쟁자들이 한 풀 쓸고 간 다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달 해당 일자의 산책 일정을 확인하는 것 역시 내겐 중요한 습관이 되었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내가 서점에 들어가 가장 먼저 방문하는 코너에서, 이미 그날 사기로 점찍어둔 책을 누군가의 쇼핑 바구니에서 발견할 때. 언젠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그 책을 고른 분께 정중히 다가가, “죄송하지만(혹은 말도 안 되는 부탁이지만) 그 책을 제게 양보할 의향은 없으신지요?”하고 물어볼 뻔한 적도 있다. 그러니 상황이 이쯤 되면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산책의 여유나 의미 따위는 간데없고 오로지 특정 책을 향한 원초적 욕망과 쓸데없는 승부욕만이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으나, 『빌리 밀리건』을 놓친 날의 분위기가 바로 그랬으니, 내가 한 발 늦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잠시의 주저로 인해 과감한 배팅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거듭하며, 나는 더 이상 매달 24일의 혜택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에 결심을 거듭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 결심은 또다시 주저하는 걸 반복함으로써 깨지고, 그 결심은 다시금 반복된다.


그러던 중 며칠이 지나, 나는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빌리 밀리건』이 다시 서고에 재등장한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낙점한 책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은 무조건 그 책을 집어 들고 이동하는 것이다. 내가 나중을 기약하며 잠시 그 책을 놓아둔 채 다른 편의 서가로 이동한 바로 그 순간, 그 책을 원하던 누군가가 곧바로 그 책을 집어 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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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기술하고 있는 내용은 가히 중고 서적에 대한 과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승부욕이 이상한 쪽으로 발달한 누군가의 이야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나만의 취향이나 성향에 기인한 기벽이라 치부하기에는, 의외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걸 나는 가끔씩 확인하곤 한다. 스스로의 기벽에 대한 변명과 자기 합리화는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무튼 나는 계획대로, 소망대로 『빌리 밀리건』을 손에 넣었다. 아마 이런 행운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이 조금 낡아 보인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게 다 좋다. 앨저넌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며 작가의 능력에 환호하게 되리라. 너무도 벅찬 기쁨 때문인지 아니면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날은 『빌리 밀리건』이란 산책로로 바로 접어들지 않았다.


이튿날 또다시 나는 서점으로 산책로를 잡았다. 『빌리 밀리건』으로 인한 그간의 번민과 안타까움은 어제 부로 모두 사라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동네를 가로질러 서점으로 향한다. 항상 먼저 둘러보는 서가들을 순서대로 살핀다. 인문학 서적, 철학서, 소설, 만화 코너를 거쳐 과학 코너를 차례로 둘러볼 생각이다. 그러다 소설 코너에서 나는 그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마치 나를 위해서인 양 다소곳이 꽂혀있던 『빌리 밀리건』을 당당히 뽑아 들었던 그곳, 바로 그곳이다.


무려 세 권의 『빌리 밀리건』이, 그것도 갓 출간된 매꼬롬하고 뽀샤시한 모습으로, 완전히 새 책의 모습으로, 그것도 어제와 동일한 가격으로(간혹 중고 서점에서는 깨끗한 책을 더 비싼 가격으로 책정하기도 한다), 세 쌍둥이의 우애를 과시하듯, 내 눈앞에 정렬되어 있었다. 며칠 전의 자책과는 전혀 반대 방향의 자책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조금만 더 기다릴 걸 그랬나.’


『빌리 밀리건』에서 대니얼 키스가 다루고 있는, 24개 인격의 소유자인 주인공만큼이나, 나 역시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이어진 나의 행위에 대해서는, 어쩌면, 아주 어쩌면 공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나는 그 책을 아직까지도 읽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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