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책로 - 『내 이름은 욤비』

by 르노르망


첫 산책로 - 『내 이름은 욤비』



이 책은 내가 발견한 문제의 중고 서점에서 제일 처음 구입한 책이다. 표지 속 욤비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달린다. ‘욤비’라는 이름이 주는 왠지 모를 친근함과, 표지 속 소년의 사연이 궁금해져 책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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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나는 프랑스어권 만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때마침 관심을 두고 있던 콩고의 역사 문화와 연관되는 실화이기도 했다. ‘프랑스어권’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통칭하는 말로 흔히 ‘프랑코포니’라 부른다. 여기에 속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과거에 프랑스의 식민지였거나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이다. 프랑스어권 국가들 중 특히 만화 강국으로 유명한 벨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땡땡의 모험’, ‘아스테릭스’, ‘스머프’ 등의 유명 만화 캐릭터들을 배출한 나라이다. 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만화를 제9의 예술로 인정하고 거대한 규모의 만화 박물관을 설립한 문화 콘텐츠 강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벨기에의 역사 속에 잔혹한 식민주의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누가 알았으랴. 강대국들의 영토 분쟁이 한창이던 1884년, 독일 비스마르크의 주재로 베를린에 모인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시 이 모임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였다. 1884년 베를린 회의는 벨기에가 자국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콩고 대륙을 소유한 성과로 인해 ‘콩고 콘퍼런스’라 불리기도 한다.


콩고는 한동안 레오폴드 왕의 개인 영지였다가 머지않아 벨기에령 콩고가 되었다. 그때부터 벨기에의 잔인한 식민주의 정책이 펼쳐진다. 콩고 원주민들에게 고무를 채취하게 하는 과정에서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을 때 손을 자르는 가혹 행위를 비롯해 국가적 내분을 조장했으며, 콩고 문화가 지닌 정통성 대신 가톨릭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을 문화적으로 단절시켰다.


벨기에에 이처럼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주의적 사고가 팽배했던 시절인 1930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는 『콩고에 간 땡땡』을 선보인다. 만화에 등장하는 흑인들은 서툰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어린아이처럼 말하며,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우매하고 게으르며 무지한 자들로 묘사된다. 문제는 에르제가 단 한 번도 콩고에 가 본 적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오로지 박물관에서 수집한 자료와 당시 벨기에 인들이 지니고 있던 콩고에 대한 식민주의적 상상력만으로 만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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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에 대한 편견과 막연한 상상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에 투영되어,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콩고에 대한 편견을 심을 우려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의식해서인지 에르제는 이후 출간한 컬러판에서 몇몇 부분을 수정하였다. 그럼에도 『콩고에 간 땡땡』에 드러난 벨기에의 식민주의적 사고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2007년 콩고 출신의 정치학부 박사 과정 학생 비엥브뉘 음부투 몽동도는 『콩고에 간 땡땡』에 드러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이 책의 발매 금지를 소송에 부쳤다. 이상이 내가 그 당시 연구하고 있던 주제였다.


이 책을 유심히 보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고 서점이란 공간은 이렇게 나의 호기심과 욤비를 만나게 했다. 이 공간을 그냥 지나쳤다면, 먼 길을 산책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만나지 못했으리라. 이 책은 콩고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욤비가 콩고 내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대한민국으로 와 난민이 된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내분의 배후에는 앞서 언급한 벨기에의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벨기에로부터의 독립 이후 부패한 정권으로 인해 분열하는 가슴 아픈 콩고의 현대사가 담겨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개인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콩고라는 낯선 나라에 다가간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이들의 사투와, 강대국의 입김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 나라의 애환과 마주한다.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이들의 현대사와,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를 거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중첩시켜 본다. 파트리스 루뭄바와 김 구 선생을 떠올려본다. 독립 후 민주주의를 쟁취하기까지 대한민국이 거쳤던 수많은 고초를 상기해 본다. 부패 정권인 모부투 세세 세코를 거쳐 로랑 카빌라 정권으로, 다시 조제프 카빌라로 이어지는 현대사 속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는 콩고 인들의 열망에 공감한다.


또한 욤비가 대한민국에 난민으로 입성하기까지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간 난민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타파해야 하는 이유를 배운다. 우리 역시 난민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만일 우리가 난민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다면, 정작 우리가 난민이 되었을 때 과연 누가 타인의 편견을 타도해 줄 것인가?


대한민국 내 난민에 대한 제도적 개선과 합리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 숙고할 필요성을 느낀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시민이 될 자격이 과연 국적의 유무로만 판단될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욤비 씨 가족들은 이제 완전히 한국 사회에 편입되어 한국인들의 문화를 함께한다.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조나단과 파트리시아가 바로 욤비 씨의 자녀들이다.


물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지구만 사과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다. 사과 역시 지구를 잡아당긴다. 한국인들이 욤비에게 끼친 영향력만큼이나, 욤비가 한국인들에게 끼친 영향력도 상당하다. 욤비가 난민 신청자의 신분일 때 그를 도왔던 변호사는 이제 난민 관련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욤비와 함께 이 책을 쓴 변호사의 아내는 난민 여성들을 위한 단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간 욤비의 강연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난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내 이름은 욤비』를 읽은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 된다.


욤비 씨는 “한국과 콩고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중고서점으로의 첫 산책을 통해,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에서 산 책 『내 이름은 욤비』를 통해, 그 다리를 무사히 건넜다. 가볍게 산책할 만한 노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쓰는 첫 번째 에세이의 첫 번째 글을 이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벨기에의 식민주의 하에 있었던 콩고. 마찬가지로 식민주의의 병폐를 겪은 대한민국. 국가의 내분으로 궁지에 몰린 콩고의 정보국 요원이 선택한 대한민국. 자국에서의 지위와 능력과는 무관하게 취급받는 난민의 삶. 콩고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어느 한국인. 한 사람의 역사가 한 사람의 관심사와 만난다. 한 사람의 역사가 다른 이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사고의 변화는 연구가 되고 행위가 되며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글이 된다. 때때로 그것은 식민주의의 영향력을 능가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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