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좁은 집 안에 점점 책의 탑이 쌓여가는 것을 보며, 어느 날 정리에 지친 나는 푸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동안 산책하다 산 책이 도대체 몇 권이람!” 우연히 던진 이 한 마디가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그런데 왜 산책을 하며 책을 사느냐고? 그게 바로 문제다. 내가 산책로로 삼은 곳들 대부분에 서점이 위치해 있다는 것. 그리고 산책로의 선정은 다분히 의도된 경향을 띤다는 것. 거기에 머지않아 더 큰 문제가 가세한 것은 매번 집 근처의 똑같은 산책로가 슬슬 지겨워지고 있던 참이었다. 조금씩 반경을 넓혀가며 새로운 산책로를 물색하던 중, 집에서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생긴 <예스24 중고 서점>을 발견한 것이다. 산책을 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거리에 위치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만났으니 세상에 이보다 반가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간 주로 들르던 산책로 내의 서점은 대형 서점이 전부였으므로, 그곳에선 절판되거나 품절이 된 책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심코 방문했던 이 중고 서점은 그때부터 내 산책의 목적이 되고 말았다.
이곳 덕택에 시대를 불문한 다양한 책들과의 조우가 시작되었고, 결국 나는 산책을 하며 산 책의 분량에 대해 푸념을 할 정도로 많은 책들을 거느리기에 이른 것이다. 어느 해에는 일 년 동안 산 책의 분량이 365권을 넘어선 적도 있었으니,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권보다 더 많은 책을 오로지 이 중고 서점에서만 산 셈이다. 당사자인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다른 한 편 그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공간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한계가 궤적을 같이하며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나는 내가 봉착한 이 문제가 비관적이라기보다는 낙관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와 엇비슷한 고충 혹은 행복을 지닌 이들에게, 아니면 이런 고충이나 행복을 향해 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몇 마디라도 건네 보고 싶었다.
그렇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글들은 그간 내가 산책을 하면서 사게 된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목적 없는 한가로움과 여유를 전제로 하는 ‘산책’이란 용어는, 활자 사이에 한 칸의 여백을 더하는 즉시 그 의미를 달리한다. ‘산 책’이란 단어는 더 이상 행위를 나타내는 명사가 아닌 사물을 나타내는 명사가 된다. 금전적인 것과 무관한 순전히 육체적 행위로부터, 금전적 소비가 전제된 독서(정신적 행위)로 우리를 인도하는 새로운 명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만의 개인적인 푸념의 차원을 떠나, 보다 보편적인 측면에서도 ‘산책’과 ‘산 책’ 간의 공통점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전자가 물리적인 산책을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정신적 산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책은 우리의 정신에 새로운 산책로를 열어준다. 내가 산책을 통해 우연히 마주했던 아름다운 풍경들만큼이나, 내가 산책을 하다 만난 아름다운 책들 또한 무수하다.
책과의 우연한 만남은 직접 만져보고, 들춰보고, 냄새를 맡고, 손에 잡아보며 책을 고를 수 있는 진짜 서점에서 이루어진다. 한 권의 책에 갑작스레 마음을 빼앗기고, 그 책을 집어 들어 읽어나가기까지, 더구나 그럼에도 그 책을 진열대에 도로 내려주지 않고 구매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보자. 그 과정은 내가 산책을 하는 행위 못지않게 활발한 정신적, 심리적 에너지를 일으킨다. 거기서가 끝이 아니다. 우연히 한 번 읽어나 보자 했던 그 책이 나의 인생 내내 등불이 되고 자양이 되어 준다면, 그만한 행운이 또 어디 있으랴. 우연이 필연으로 변신하는 그 경이로운 과정이라니.
그러므로 이 글들은 결국, 어디로 보나 산책에 대한 이야기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해 본다면 물리적 산책이 도발한 정신적 산책의 이야기랄까. 따라서 ‘산책’의 의미는 곧 내가 ‘산 책’의 의미와도 멀리 있지 않다. 책에 대한 글들은 그 자체로 언제나 매력적이다. 책의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글, 혹은 리뷰나 서평처럼 책의 내용과 본인의 판단이 적당히 어우러진 글, 책의 줄거리 노출은 가급적 자제하며 그저 읽고 싶도록 동기부여만 해 주는 글, 아예 책의 내용을 발췌하여 조목조목 친절히 해설해 주는 글, 아니면 독자들이 그 책을 이미 읽었다는 전제 하에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대담한 글들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글들 모두가 나름의 향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지금부터 쓰게 될 글들은 내가 산책을 하다 사 모은 책의 줄거리나 내용을 요약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얻게 된 경위와 사건, 책과 만나는 순간과 그 과정, 그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 그로 인해 새로이 알게 된 작가나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책하다 산 책>은 내가 한 권 한 권의 책을 ‘어떻게’ 만났는가의 이야기다. 그것은 동시에 우연의 현장을 기술한다. 즉 내 ‘산책’과 내가 ‘산 책’의 만남이 성사되는 과정이 주된 관심사다.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을 부르고, 새로운 정신과 영혼을 부르고, 전혀 모르던 곳을 산책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책과의 만남이 만들어 낸 일상의 변화와 작은 기적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야말로 별다르게 계획하거나 의도된 바 없이 구매하게 된 책들, 그중에서도 예기치 못했던 감동으로 인생의 지표가 되어준 책들을 다루었다. 산책자가 우연히 접어든 길에서 의외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혼자만 알고 싶은 비밀 장소를 발견하듯, 고적하지만 평화롭고,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번 접해 본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다시 오고 싶다는 확신이 들 만한 그런 길. 드러나기만 한다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산책자가 발견한 미지의 명소와 같은 책들을 선별해 보고자 했다. 혹여 독자들에게 낯선 책들이 섞여있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책과의 만남에 뒤이어 그 만남의 여파에 관해서도 나는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 책의 내용을 언급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나의 산책과 산 책, 둘 모두가 내게 다정한 위로를 선사한다. 내가 산 책들은 나의 산책이란 행위처럼, 바쁜 삶과 여유로운 삶 간의, 왼발과 오른발 간의, 정적인 삶과 동적인 삶 간의, 정신과 육체 간의 균형을 잡아준다. 설령 책의 탑이 무너져 내려 나의 발등을 찍어 누르더라도, 나는 책을 원망하지 않고 다시 쌓아 올릴 것이다. 그 책들이 내 마음속에 터 준 깊이 또한 그만큼의 높이이기에. 산책을 하며 나는 어제 읽은 책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고 싶은 책들에 관해서도.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