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책로
- 『앨저넌에게 꽃을』

by 르노르망


두 번째 산책로 - 『앨저넌에게 꽃을』



어느 날, 역시 산책하다 산 책 『여왕마저도』를 흥미롭게 읽어나가던 중, 작가인 코니 윌리스가 쓴 머리말에 시선이 꽂혔다. 그 책은 여러 단편들을 모아 둔 SF 소설집으로, 작가는 머리말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서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구상했으며 어떤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참고한 서적의 출처뿐만 아니라 ‘영감의 출처’를 밝혀주는 소설가들을 좋아한다. 그러한 소개가 독서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반추하는 작업은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머리말에서는 제법 많은 작가들이 언급되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로 인해 SF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노라 고백한다. “이런 식으로 일어난 거다.”라는 하인라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코니 윌리스가 우연히 하인라인을 만난 순간처럼, 나는 우연히 그녀가 열거한 SF 소설들 중 “가슴 아리게 슬픈 『앨저넌에게 꽃을』”이라는 대목에서 눈길을 멈췄다. 그저 한 문구로 이루어진 짧은 평에 불과했지만 SF 소설이 “가슴 아리게 슬픈” 경우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므로, 이 책을 쓴 대니얼 키스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라도 그 책을 보면 지나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로부터 머지않아 중고 서점에서 매달 열리는 할인 행사 날이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없어져 버린 행사이지만, 내가 한창 이 서점을 이용하던 시기에 이 중고 서점에서는 매달 24일마다, 이미 저렴한 중고 도서에 24퍼센트의 할인율을 더해주는 행사를 진행했었다. 바로 그날, 나는 드디어 그 작가의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사실 그 책은 꽤 오래전부터 서가에 마냥 꽂혀만 있었던 책이다. 오갈 때마다 매번 눈을 마주쳤지만 전혀 관심을 주지 않다가, 막상 대니얼 키스라는 이름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관심이 생긴 것이다.


책의 제목은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이었다. 키스 해링의 그림으로 꾸민 표지 상으로는 마냥 행복해 보이는 책이다. 혹시 영화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빵집 버전인 것일까. 『앨저넌에게 꽃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니얼 키스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화급히 그 책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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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책을 살펴보던 중, 갑자기 책 제목 근처에 적힌 영문 원어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Flowers For Algernon(앨저넌에게 꽃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자 뜻밖의 행운인가. 코니 윌리스가 말했던 대니얼 키스의 바로 그 작품이 아닌가! 나는 어리석게도 뒤늦게서야 영어 원어 제목을 확인한 것이다. 흥분상태로 집에 돌아온 나는 오자마자 책 안에 펼쳐진 산책로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산책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그 마음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가끔씩은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봐야 할 풍경들이 있었다. 몹시 독특한 장르의 소설이었다. 코니 윌리스는 이 책을 SF로 분류하고 있었으나, 그렇게만 단정 짓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일종의 뇌 과학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공상과학 소설의 여지가 있으나, 어떻게 보면 심리학적이고, 어찌 보면 철학적인, 또 어찌 보면 인간의 윤리에 관한 책이기도 했다. 산책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다가 산책로의 막바지에 도달해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죄수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서 손발이 묶여있다. 그들은 촛불이 만들어준 그림자 쪽만을 바라볼 수 있게 묶여있었기에 자신들이 바라보는 그림자가 현실이라 여기다가, 밖으로 나와 햇빛 찬란한 진짜 현실을 직면하고서야 비로소 참된 이데아에 다가선다. 이데아란 만물의 보편적 정의 내지는 진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동굴에서 뛰쳐나온 죄수들이 과연 모두 행복하기만 했을까? 갑자기 들이닥친 밝은 빛에 눈이 멀거나, 익숙했던 동굴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주인공 찰리는 그런 생각을 한 죄수들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보편이라는 이데아에 다가갔다고 해서, 지식과 지력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그는 과연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그제서야 『앨저넌에게 꽃을』이라는 제목이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로 번역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주인공 찰리가 앨저넌에게 꽃을 바친 시절보다, 그가 빵가게에서 일했던 과거가 훨씬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도의 지력이 과연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추구해야 할 바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코니 윌리스의 말이 맞았다. 더없이 “가슴 아리게 슬픈” 소설이었다.


책이 안겨준 슬픔으로부터 금방 헤어 나올 수 없었기에, 나는 현실 속으로의 산책을 결심하고 겨우 『앨저넌에게 꽃을』이란 산책로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앨저넌에게 꽃을” 바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이 책을 만나자마자 책 속에 펼쳐진 산책로를 따라 내달렸던 독서의 속도에 버금가게, 이번에는 이 책을 구했던 중고 서점으로, 내 현실 속의 산책로를 따라 두 다리로 내달렸다. 대니얼 키스의 또 다른 책이 지난번 서점에 꽂혀 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제목은 『빌리 밀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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