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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영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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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Mar 04. 2023

아프지 말자. 수영 가야 하니까.

선생님 저 수영해도 되나요?

"요즘 왜 안 나왔어?"

"언니 나 아팠잖아. 병원 다니느라 못 왔어."

"어디가?"

"무릎 수술했어."

"아이고."

“수술하고 눈 뜨자마자 나 언제 수영 갈 수 있냐고 물어봤잖아~”

“맞아요. 저도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한테 수영하는데 내일 가도 되는지 물어봐요.”


수영 끝나고 샤워를 하거나 사우나, 파우더룸 있으면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들린다. 가끔 공감 가는 내용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병원 갔을 때 수영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평소에 잘 아프지 않고 건강하지만 가끔 귀가 말썽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다이빙을 하는 데 어느 날 다이빙을 하다 귀에 압력이 가해져 통증을 느낀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계속되어 병원에 갔더니 고막이 빨갛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 혹시 고막 터진 건가요?"

"고막이 그렇게 쉽게 터지진 않아요."


고막 터지지 않은 것에 감사했지만 그 후로 다이빙은 무섭기도 하고 귀가 아플까 봐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지금도 다이빙하는 금요일이 오면 수영 가기가 망설여진다. 다이빙하는 날은 자유수영 레인에서 돌거나 물속에서 출발한다. 다이빙을 잘하고 싶은 욕심도 없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오래오래 하고 싶을 뿐이다.


또 한 번은 귀가 답답해서 귀지가 가득 찬 줄 알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저 수영 다니고 있는데 당분간 수영하면 안 되나요?"

"물 들어가지 않게 수영하지 마시고 병원부터 가세요."


대학병원을 예약하고 진료를 봤더니 귓속에 상처가 났는데 거기에 곰팡이가 생겼다고 했다. 그땐 수영 끝나고 매일 면봉으로 귀를 닦고 집에서도 하루에 한 번은 꼭 귀를 팠다. (검정 면봉에 귀지가 나올 때마다 시원한 쾌감이 느껴졌다.)

면봉으로 귀를 파면서 상처가 생겼고 매일 수영을 가는 틈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긴 것이다. 나는 이비인후과가 제일 무섭다. 귓속에 얇은 쇠젓가락을 넣으면 들리는 큰 소리와 통증이 무섭다. 너무 무섭다! 그런 내가 곰팡이를 치료한다고 매주 병원에 가서 쇠막대기를 넣고 상처를 치료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다.


"상처 다 나을 때 까진 수영하지 마세요."


그 몇 주가 내 인생 가장 우울했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지막 상처를 치료한 날 의사 선생님께 기쁜 마음으로 물었다.


"선생님 이제 수영가도 되나요?"


그 후로 나는 면봉을 들고 다니며 귀를 닦지 않는다. 수건으로 귀를 닦고 드라이 찬바람으로 말리는 것만 하고 있다. 면봉으로 닦아내는 쾌감은 없지만 수영 금지령을 받으면서까지 느끼고 싶은 쾌감은 아니다. 병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마지막에 꼭 묻는 말이 있다.


"저 수영 다니는데 수영 해도 되나요?"




수영을 하면서 나의 우선순위에 밀려난 것들이 있다. 지독한 잔머리 곱슬로 일 년에 한 번은 매직을 했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 매직하고 1-2일은 머리를 감으면 안 되니까 수영을 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차분한 생머리를 포기하고 수영을 택했다.


얼굴에 있는 점을 제거하고 싶은데 빼면 2주 정도(피부가 아물때까지) 물에 닿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째 왼쪽 점과 함께하고 있다.


가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법의 날에는 아주 바쁘다. 그동안 가지 못했던 서점에 가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거나 머리를 자르거나 눈여겨 본 카페를 가거나 친구를 만난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같은 것을 덕질하는 사람들이 모인 수영장에서의 대화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엄마와 동생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선택과 우선순위도 그들이라면 이해해 준다.


건강하기 위해 수영을 하지만

수영하기 위해 건강해야 한다.


아프지 말자! 수영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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