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전국이 똑같은 문제의 수능을 치지 않는다.
고등2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내신과 수업참여도, 그리고 졸업시점에(우리나라의 수능과 비슷한) 친 시험을 모두 포함시켜 수능 점수를 낸다.
그 시험은 살고 있는 각 주에서 출제된 문제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난이도에 조금 차이가 날 수 있다.
심지어 수업 참여도라는 건 매우 주관적이어서 형평성이 어긋나기가 쉽다.
우리나라는 전국단위로 시험을 치면서도 물수능, 불수능하면서 난이도에 따라 불리한 수험생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독일의 수능과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긴 시간의 공부가 단시간에서 판가름이 나는 수능이 조마조마하여 독일의 수능이 마음이 조금 더 놓인다.
이건 단지 교육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연방정부가 자리 잡혀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각주마다 그에 맞게 정치 경제가 움직이고 있는데 교육도 거기에 맞춰 주마다 적합한 교육 시스템을 가진 거다.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의 차이
우리나라에서는 경영과 경제는 둘 다 상경계열로 비슷하게 여겨지곤 한다.
우리가 살았던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럽 중앙은행이 있고 유럽 내 크고 작은 금융회사의 지점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도시에 하나밖에 없는 종합대학인 괴테대학에 경영학과의 정원수가 12명이라고 한다.
도시 내 경영인들이 많이 필요 없어서라는 간단명료한 이유에서다.
반면에 경제학과의 정원은 수 백 명을 초과한다.
경영과 달리 경제를 아는 사람은 회사, 은행 등 도시에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필요한 직업군별 인원수를 파악해 관련 전공의 입학 정원을 제한한다
수능 만점자가 심리학과에 불합격하다.
상위권 아이들이 심리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학교에서 단 한 명도 진학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독일의 수능은 2년간의 내신과 수능점수를 합산해 등급을 매긴다.
등급은 소수점 한자리까지 있으며 최고 점수가 1.0이고 최하 점수는 5.0이다.
그런데 심리학과의 커트라인은 만점보다 높은 0.8이다.
1.0등급이 되기 위한 최저조건보다 훨씬 고득점을 얻어야 가능한 점수다.
나는 독일에 오래 살면서 이런 점수를 받은 학생을 본 적이 없다.
그 말은 대학에서 심리학과의 진학을 아예 막는 것이다.
역시 그 이유는 사회 내에서 심리학 전공자가 많이 필요 없어서라고 받아들여진다.
입학정원이 무한한 공대
어느 나라든 상위권을 결정되는 주요 과목이 있는데 다들 짐작하듯 독어 수학 과학분야가 절대적인 주요 과목이다.
사회에 필요한 고 인력도 아무래도 주요 과목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대 쪽은 정원이 아예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지원하고 대다수 합격한다.
많이 필요하니 일단 인원수를 확보해 놓고 졸업요건을 매우 어렵게 해 놔서 능력이 없는 학생들을 학교에서 거르는 것이다.
강의가 워낙 어려워서 개강을 하면 일주일 내에 반정도가 적성이 아니라면서 자퇴를 한다는 말이 전설처럼 들려온다.
그래서 우리 아이도 개강하기 전부터 수학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았다.
합격메일을 확인하고 바로 졸업을 걱정하는 셈이다.
여러 대학을 옮겨 다니는 일이 흔한 독일일지라도 성적미달일 경우는 독일 내에서 같은 계열의 공부를 못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 다니는 공대에서 퇴학을 당하면 독일 내 어느 지역의 공대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다.
우리 아이가 진학한 아헨공대는 매년 1200명 정도의 학생들이 기계공학과에 입학한다.
특히 아헨 공대는 독일 내에서도 제일 큰 규모의 공대인데 특히 기계 공학과가 유명하고 인원수가 많다.
그 외에도 전기과, 컴공과도 수백 명의 신입생을 매년 받는다.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입학한 학생 중 몇 퍼센트가 졸업을 하는지 공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졸업 후 수개월 이내 100프로 취업이라고만 적혀있다
현재 2년 3개월을 다닌 아이의 말에 의하면 강의실의 인원수로 추측해 볼 때 입학했을 때의 절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에서 필요한 인원과 졸업하는 인원을 파악해서 신입생을 받는 것이 졸업 후 취업 걱정은 덜게 되어 좋지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다니고 싶은 것이 정말 꿈이 되어 버리는 단점도 있다.
흔히 해외대학은 입학이 쉽고 졸업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독일의 주요 전공에서는 실감 나게 맞는 말이다.
어느 주에 살아도 그곳의 수능을 쳐서 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키는 제도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사회적으로는 도시별 인구 분산이 자연스럽게 되고 교욱열도 과잉되지 않는다.
단시간이 아닌 긴 시간에서 평가되는 제도로 불리한 사람이 덜 생기고 워밍업을 충분히 한 학생들은 대학에서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할 에너지가 생긴다.
대학생이 고3 때보다 더 많이 공부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기에 대학 강의의 수준도 굉장히 높다.
아이가 입학하고 첫 신입생 모임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저녁 8시에 번화가에서 만난다고 해서 술을 못하는 아이에게 와인이라도 천천히 마시라고 당부를 했는데 다들 커피 한 잔씩만 하고 헤어졌다는 거다.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잡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독일의 상위권 학생들은 어느 과로 갈까?
주연방에서 출제된 문제로 수능을 치기 때문에 각주마다 만점이 나오고 대학에 가면 꽤나 여러 명의 만점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 학생들의 행보를 말하자면...
독일은 일반적으로 국립대학이라 우리처럼 스카이 대학의 개념이 없다.
성적이 좋다면 전공에 따라 더 알려진 대학 내지 특화된 대학으로 지원한다.
대도시에 사는 학생은 웬만하면 자기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기를 원하고 소도시의 학생들은 좀 더 큰 도시로 나간다.
인원수로 보면 전공은 공대가 절대적으로 많고 그다음이 경제, 법대, 의대등 일 텐데 의대가 최우선이 되지 않는 건 직업에 관한 정보를 고등학교에서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힘들고 긴 공부기간이 선뜻 내키지가 않는 것이다.
또 전체 직업군에서 보면 의사가 연봉이 1위이긴 하지만 종합병원이나 응급 의료 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연봉과 합친 것이라 개업의가 됐을 때의 연봉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고려한다.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연봉이 높다)
물론 높은 성적으로 의대로 가는 학생도 상당히 있지만 한국만큼 무조건 의대를 지망하지 않는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우리 아이는 음대에 진학한 후 2년을 다니면서 진로 고민을 했었다.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과(유럽에서도 영어를 잘한다는 건 자신이 가진 능력 중 하나로 본다) 수학과 물리를 잘한다는 장점에는 의대보다 공대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전체적인 직업군에서 엔지니어 연봉이 2위와 3위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독일 공대를 다니는 것에 메리트를 파악하고 있었던 아빠의 권유도 한몫을 했다.
대부분의 독일 학생들은 우리 아이처럼 자신의 장점을 생각해서 전공을 선택한다.
의대를 갈 성적이지만 공대, 경제 등에 간 학생들이 많을 수 있는 이유다.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높은 대학이 아니라 내 적성과 장점을 보고 전공을 고른다.
독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우리 아이에게 뜻밖의 결정을 한 친구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이 의사가 된다면 집안이 3대째 의사 집안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친구가 있었다.
수능 기간 내내 고민하고 친구들도 수긍하면서 서로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지만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 학생은 고교 졸업 후 바로 가나로 봉사 활동을 갔고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진로를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자기가 사는 소도시의 의대를 가지 않고 큰 도시의 일반 학과를 가는 경우였다.
큰 도시의 의대에 가기에는 약간 성적이 부족해서 의대를 포기하고 대도시에서 공부하는 걸 선택한 거다.
독일의 젊은이들도 역시 대도시에서 살기를 원한다.
한 곳에 정착하는 의사보다 살고 싶은 나라에서 직업을 구해서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은 글로벌 시대가 된 것도 이유일 것이다.
세 번째는 상위권은 아니었는데, 부모님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분이지만 사업으로 성공하신 가정의 아이로 자신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하면서 틈틈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일을 하면서 김나지움의 일반적인 학생들과 다른 준비를 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졸업 후 자신이 만든 브랜드의 사장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몇 개의 체인점이 들어와 있다.
수능 만점자라고 무조건 의대를 가지 않는 나라.
개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만드는 사회
어쩌면 그것이 한창 혈기왕성한 대학생들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이어진 교육의 방식이 지금의 독일이라는 선진국을 만들어 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