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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Aug 08. 2023

고등학생이 등교 대신 출근을 하다


독일 고교생들은 의무적으로 프락티쿰(인턴십)을 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앞서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의 직업을 체험하는 것이다.


방학이 아닌데도 이 기간 동안은 놀랍게도 등교를 하지 않고 본인이 선택한 직업군의 인턴으로서 출근을 한다.


인턴기간 중간쯤에는 교사가 직접 모든 학생들의 일터에 가서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해당기관에서는 학생을 받는 것부터 일을 시키는 거며 마무리까지 협조를 잘해준다.


프락티쿰이 끝나면 학교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발표도 해야 하기에 학생들은 성실히 일을 한다.


한창 바쁜 고교시기에 우리가 아는 많은 학생들이 자기 진로에 관련된 일을 경험하였다.


다양한 선택지

나는 등교를 하지 않으니 이때 더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는 기간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는 몇 달 전부터 어디에 넣을지 고심했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학교 친구들도 틈틈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직업군을 고른다고 했다.


많은 학생들이 아직 무얼 하고 싶은지 정확히 몰라 일반 사무직에 지원한다.


스스로 여러 군데의 회사에 지원해서 결정하는 게 원칙이고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자리가 없을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부모님이나 아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회사에 지원하지는 않는다.


또 의대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학생들은 대형병원 혹은 개원의 밑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이나 동물원, 소방서, 경찰서에 지원한 친구도 있었다.


우리 아이 학교에서는 유독 유치원 교사로 지원했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유치원처럼 인턴을 쉽게 받아 주는 곳이 없기도 하고 훗날 초등학교 교사, 심리상담사등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직업을 희망하면 좋은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진로는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는 친구들 이야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한창 스트레스를 받던 고등학생 시기에 아이들과 놀면 힐링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국제학교 유치원에서 인턴 하기


우리 아이는 전학오기 전에 다녔던 국제학교의 유치원에 지원했고 다행히 바로 수락이 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녔던 학교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거 같다.


우리나라 꼬마들도 제법 많았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았던 꼬마들이 우리 아이가 출근하면 난리가 날 만큼 인기가 있었고 덩달아서 다른 나라 꼬마들도 졸졸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림도 그리고 색종이 접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같이 뛰어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치원이지만 뭐든 잘 따라 하는 꼬마가 있는가 하면 조금 더딘 경우도 있고 아예 수업에 관심 없이 장난만 치는 꼬마도 있었다고 한다.


교사의 입장이 되어보니 서툰 독어로 선생님의 눈치를 보던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들도 자신을 이해하고 계셨으며 더 발전되기를 기다리고 계실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6주의 기간 동안 꼬마들과 너무나 좋은 관계가 되어서 마지막 날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꼬마들이 집에 가면 우리 아이 이야기만 했었다는 말이 여기저기 학부모님들이 전해 주면서 함께 아쉬워했고 어린 고등학생의 인턴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프라티쿰 이후 보고서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로 한동안 재미있었는데 평소 변호사를 꿈꾸던 아이가 난 변호사가 맞지 않다는 결론을 써서 제출하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일이 더 생겨서 곤란해졌다는 친구도 있었다.


동물원에서 일했던 친구는 생각보다 일이 너무 힘들고  월급이 적다는 현실적인 보고를 했다.


경찰서에서 일한 아이는 프락티쿰을 계기로 경찰이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들을 더 자세히 알게 돼 도움이 됐다고 하였다.


이처럼 하고 싶은 전공을 미리 경험을 하게 하는 이 제도를 학생들은 잘 활용하고 있었다.



독일은 한국처럼 담임 선생님이 진로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고등학생부터 우리 반이라는 개념이 없어져 담임도 없다.


학교 선생님은 오로지 학업에 대한 지도만 하고 대학이나 진로에 관해서는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외부에서 진로 상담사가 학교로 온다.


학생들은 다양한 직업군에 대해 질문을 하면 어떤 전공 또는 경로를 택해야 하는지 상세히 알려준다.


해당전공의 성적 커트라인은 물론이고 그 직업의 연봉도 말해준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정사에 대해 질문한 학생에게는 

-파일럿 시험 불합격률 (우리와 달리 합격률이 아닌 불합격률을)

-주간 근무시간

-연봉

-언제까지 돈을 벌 수 있는지까지 알려 주었다.


매일 학교에서 성적관리에만 힘쓰던 아이들이 직업체험을 해보고 전문적인 진로 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진로를 구체화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진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바꾸기가 더 어렵기 마련인데 이른 나이에 적어도 한 분야를 배제하거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제도에 만족스럽다.

또 

우리 아이가 음대를 2년이나 다니다가 진로를 바꾼 것도 독일의 이런 교육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아이가 음대를 졸업을 한 후의 직업군과 예상 연봉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오케스트라의 실제적인 연주와 전망도 생각하고 있었다.


 음대에 진학한 후에도 외부의 진로상담교사의 이런 수업이 몇 차례가 더 있었다.


대학생들을 상대로는 더욱 노골적인 진로 상담이 진행되었고 주변 독일인 학생들의 선택에 고민을 하였다.


음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솔직하게 공대로 가고 싶다고 말하였고 실제로 공대를 졸업하고 현직에 종사하는 분이 또 상담을 해주었다.


학생들의 진로에 온 사회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시스템에 나는 한없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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