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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Oct 02. 2023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

유럽을 여행할 때 슈퍼가 닫혀있어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열려있는 곳을 찾으려도 쉽지 않은 경험을 하곤 하는데 대다수 지역에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모든 상점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백화점이나 큰 마트조차 다 영업을 하지 않고 동네 약국도 문을 닫는다.


특히 봄에는 종교적인 날이 많은데 주말을 포함해서 며칠 동안 지속되면 네 식구가 간단하게 먹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동네를 돌아다녀도 문이 열린 식당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우리 가족이 독일로 갔었던 2010년에 이웃 주민들이 마트 오픈 시간이 길어져서 편리하다는 말들을 전해 주었는데 저녁 10시가 폐점 시간이었다.


그 이후의 시간에는 온 동네의 마트가 다 닫혀있다.


현재는 온 가족이 귀국을 하고 혼자 남아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애랑 통화할 때 "휴지 사놨어? 물은 있어?" 등의 말을 여전히 자주 하게 된다.


독일은 수돗물에 석회질이 많이 포함되어 정수기 설치조차 하지 못한다.

하얗게 석회가 묻어 있다

집집마다 간이 정수기인 브리타를 사용하는데 조리용이 아닌 마시는 용도로는 청량함이 부족하여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양손에 생수를 한 꾸러미씩 사서  들고 다니는 게 일상이다.


우리 딸애의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인데 생수에 빵. 과일까지 낑낑대고 들고 다니는 게 힘들어서 배달을 시키라고 했다.


배달은 일반적인 마트가 아닌 트럭으로 배달하는 업체가 따로 있다.


음료만 파는 전문상점인데 편리하지만 세일도 하지 않고 대중적인 브랜드의 물이 아닌 좀 더 가격대가 있는 물을 배달해 준다.


더구나 유리병에 든 물이라 1.5리터가 아니라 1리터의 물이다.


독일 사람들은 특별하게 누리는 생활에 대해서 주저하는 경향이 많은데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딸아이에게는 병에 든 생수를 배달시켜 먹는다는 건 꽤나 사치스러운 일이라 일 년 동안이나 주저했었다.


2학년이 되고 학교에서 튜터로 일을 하게 되어 월세의 절반이상을 벌게 되자 아이가 맨 처음 한 게 배달을 정기적으로 주문하는 것이었다.


엄마에게는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었다.


밤늦게 주문해도 새벽이면 문 앞에 배달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라는 건 편리한 걸 넘어서 시간까지 절약하게 하는데 독일에서 사는 동안의 12년은 시간이 거꾸로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같았다.


그곳은 이런 생각을 하는 곳이었다.


휴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쉬어야 한다

저녁시간의 여유를 다 같이 누려야 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자 유럽은 아예 봉쇄를 하였다.


생활필수품을 파는 마트와 약국을 빼곤 모든 상점이 전부 몇 달씩 아니, 일 년 넘게 문을 닫았다.


그 긴 시간 동안 외식은 커녕 카페도 한번 가지 못하고 옷 가게에 구경도 가지를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를 쓰기 외엔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한국과 비교하면 유럽은 완전 봉쇄였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프랑크푸르트의 다운타운이 텅 비웠다



근데 놀랍게도 그런 상황에서도 택배량이 그다지 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택배가 늘어나면 누군가는 배달을 더 많이 해야 하고 그러면 사회가 더욱더 위험해지는 걸 염려하여 사람들은 그냥 참고 살았던 것이다.



도시 전체가 암울하다고 느껴지는 나날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어린아이가 있는 집의 창문에 무지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집 창문에도 있는 무지개를 보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가 봉쇄를 연장할 때마다 국민들은 탄식과 함께 온 동네 곳곳에는 아이들이 그린 무지개 그림이 늘어갔다.


위기속에 또 위기인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겨울에 독일 내 마트 영업시간을 단축한다고 발표가 되었다.


대다수의 독일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는 그만큼의 희생해야 하는 것이 늘 있다.


개인의 편리함보다 공동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독일.


사람들은 다소 불만이 있어도 수긍하며 공휴일 이전에는 미리 장을 봐두는 걸 잊지 않는다.


이렇게 직업은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일 뿐, 누리는 정도의 차이에 높낮이를 최소한으로 하려는 그곳에서 살았지만 서울에서 운전할 때는 바쁘게 달리는 오토바이 배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이 시간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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