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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Oct 11. 2023

꿈속에 나올 것 같았던 조슈아 벨

나의 십 대때에는 주변에 열심히 사시는 어른들이 많이 계셔서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첼로까지 전공하면서도 유튜브로 보고 싶은 연주자의 연주 실황을 마음껏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을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듣고 싶은 곡을 골라 들을 수 도 없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친구들이 입시곡으로 연습하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5번은 많이 들었으나 어느 날 연습실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하게 들은 협주곡 4번이 내 가슴을 요동쳤었다.


다시 듣고 싶어서 레코드 가게를 갔지만 당시에 인기 있었던 안네 소피 무터의 앨범조차도 3번과 5번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레코드 가게에서 봤던 안네 소피 무터의 앨범

예고에 가도 전공생들은 부분적으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전체곡을 듣는 데에 시간이 걸렸고, 곡 앞부분의 테마만 마음속으로 꽤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대구 토박이였던 내가 기억하는 겨울이 있다.


 대구는 예전에도 무진장 더운 곳이라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데 한 사람을 알게 된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친구들이랑 눈 맞으며 시내를 거닐다 헤어지고 혼자서 대구 백화점에 있는 레코드 가게를 기웃거리다 한 앨범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눈에 띄게 잘생긴 내 또래의 미국 바이올리스트 조슈아 벨!

내가 구입했던 앨범


유태인들이 미국 연주 시장을 장악하던 즈음에 순수하게 미국인인 그는 미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연주자였다.


나는 앨범을 사서 집에 와서 듣고 또 들었다. 이것이 내가 바이올린 곡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우연하게 꼬마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선물 받은 딸이 전공을 꿈꾸게 되었다.


딸의 사춘기 즈음, 악기를 절실하게 잘하고 싶어 했던 시절에 내가 차 안에서 들려준 오래된 앨범들 중에는 조슈아 벨도 있었다.


어느 날 딸이 그 조슈아 벨이 우리가 사는 도시에 온다는 걸 말해주었다.


너무 잘생긴 연주자여서 엄마가 오랫동안 아이돌에게 열광하듯 빠졌던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딸이 웃었다.


그 연주회의 티켓을 예매하고 그렇게 딸과 함께 맨 앞자리에서 연주를 보았다.


십 대 때에 느꼈던 바이올린 음악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빠졌던 시절을 떠올리며 연주를 들었다.


그리고 처음 그 연주자를 알게 된 1989년도에 구입한 cd에 지금 2016년에 싸인을 받았다.

물론 죠슈아 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이렇게 오래된 음반을 가지고 있었냐고...


딸도 죠슈아 벨의 연주를 마음에 들어 한 나머지 몇 달 뒤 학교까지 빼먹고 함께 그의 유럽 투어 연주 일정 중 한 연주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연주 당일 우리가 살던 곳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프라이부르크라는 도시로 햇볕 쨍쨍하던 고속도로를 달려서 갔다.


그 시기 우리 딸이 한창 연습하고 있던 곡을 연주했는데, 그날 밤 딸은 한 소절만 듣고도 눈물을 흘렸다.

조슈아 벨의 비교적 최근 모습


독일에서 자란 탓에 우리나라의 예중이나 예고가 아닌 일반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음악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서로에게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 있음을 우리 모녀는 알고 있다.


나의 십 대에서 오십 대 중반까지 함께 했었던 음악과 딸의 사춘기를 함께 한 여러 음악들은 삶을 견고하게 지탱해 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학교까지 빼먹고 갔던 프라이부르크에서 조슈아 벨의 연주를 협연하던 오케스트라, 그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은 곧 은퇴를 앞둔 노장이었다.


그가 첼로솔로 부분을 연주하면 저 건너편 젊은 바이올린 주자가 흐뭇하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솔리스트 조슈아 벨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감동적이었던 연주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바로 그 노장의 첼리스트가 길거리에서 우리를 보고 불러 세웠다!


"I saw you.

Yes, I am the principle cello.

After he played, you were moved and started crying.

I was moved by that.

You know what music is.

There is something else other than the techniques.

You play the violin right?

Then I wish you the best for your future.

Practice well, and see you again."


딸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딸의 목에 나 있는 상처를 보고 바이올린 전공생임을 알아보고는 연습 열심히 하고 잘 되기를 바란다며 격려도 해 주셨다.


반짝거리던 무대 위에 너무나 멀리 보이던 연주자가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주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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