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행위의 사회학, 자연과학과 인문학


아나키즘은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 1809~1865)에 의해 제창되었다. 그것은 종교, 독재와 같은 모든 유형의 절대적 힘에 대항하여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려는 의도이다. 아나키스트인 크로포트킨(Pyotr A. Kropotkin)은 자신의 저서『만물은 서로 돕는다』(2015년 번역출간)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the struggle against all men)’을 벌인다는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식의 견해에 대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하고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과 착취를 합리화하는 이론으로서의 다윈주의를 공박하기 위해서 쓴 것으로 이해된다. 인간에게도 생존경쟁이 있었지만 공동체를 통해 상호부조를 구현하였음을 밝혀낸다.


우리사회는 극한 생존경쟁의 사회로 비약되었고 상호부조의 가치관과 철학은 학교, 가정, 공동체 내에서 외면되었다. 아이를 학원으로 ‘뺑뺑이’ 돌려 극한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교육 열풍, 중고등학교와 대학은 성공과 취업경쟁의 장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우리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가 처절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자연선택과 생존경쟁은 적자생존과 상호투쟁을 통해 나타나기도 했지만 상호부조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프루동은 생존경쟁은 존재하지만 생존경쟁뿐만 아니라 상호부조도 있음을 강조한다. “모두에 맞선 각자의 전쟁은 자연의 유일한 법칙이 아니다. 상호투쟁만큼이나 상호부조 역시 자연의 법칙이다.” “진화의 한 요인인 상호부조는 어떤 개체가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종이 유지되고 더 발전하도록 보증해 주면서 그런 습성과 성격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어쩌면 상호투쟁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나가야 방향이 보인다.


이러한 사회학적 분석과는 달리 과학은 유전과 뇌로 설명한다. 다윈은 동물의 이타적 행동을 집단의 관점, 즉 집단을 위한 희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의 후예들은 유전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풀었다. 진화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William D. Hamilton, 1936~2000)은 이타주의를 유전자에 기초하여 설명하였다.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는 1964년 윌리엄 해밀턴이 정의한 진화 성공의 두 가지 지표 중 하나이다. 개체 적합도는 개체 자신이 낳은 자손의 수이다. 포괄 적합도는 개체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양육 또는 지원하는 자손과 친족의 수이다. 포괄 적합도 이론을 기초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이기적 유전자』에서, 이타적으로 보이는 동물의 협력이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이기적’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인간도 결국 ‘유전자의 운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전자에 의한 설명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반감이 나타날 수 있다.


유전자만 이타성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뇌도 관련이 있다. 뇌 앞쪽 부위인 전전두엽 피질의 일부 영역(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vmPFC)이 다른 사람을 돕거나 친사회적 행동을 하는 결정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위는 보상과 그 보상을 얻기 위한 노력 사이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었다. 이곳이 손상되면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의지가 작았고, 돕기로 결정한 후에도 힘을 덜 쓴다. 이 영역 근처에는 손상되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의지가 더 커지게 하는 하위 영역도 있다. 이 영역은 10대 후반에 발달하고 나이가 들면서 변화한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2-024-01899-4


인문학적 또는 인간적인 접근은 또 다르다. 가시적 또는 비가시적 도움이 그 예이다. ‘가시적’ 지지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지금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도움이다. 반면 비가시적 지지란 도움을 받는 사람이 모르게 은연중에 돕는 것이다. 상대방이 처음 가보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에게 “이 음식은 뭔가요? 주문 방법은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라고 넌지시 물으며 상대에게 힌트를 주는 것이나, 조언을 할 때 “내가 아는 사람은 이렇게 했더니 잘 됐다더라!” 같이 참고할 만한 정보를 넌지시 흘리는 것이 비가시적 지지이다. 비가시적 지지를 받는 사람이 스트레스가 줄고 만족도 더 좋다. 대놓고 조언을 하거나 도와주면 사람의 약점을 부각시키고 자존심을 건드린다. 따듯한 말이나 위로 같은 ‘정서적’ 지지의 경우 가시적이어도 괜찮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주는 경우 비가시적 지지가 더 효과적이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비가시적 지지가 좋다. 내 생각보다는 상대방의 생각과 필요에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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