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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 중 8%는 바이러스 유전자

2010년 인간의 유전물질 가운데 약 8%가 바이러스에서 나왔다는 연구가 나왔다. 사람 유전자의 약 8%는 인류 조상에게 감염된 바이러스의 잔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DNA에 바이러스가 삽입했던 유전 정보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DNA에 남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인간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endogenous retrovirus, HERV)’라고 한다. 레트로바이러스는 대부분 휴면 상태로 남아있어 ‘화석 바이러스’로도 불린다. 인간이 순수하게 ‘인간용’으로 만들어진 유전자가 아니라 다양한 유전자가 혼합되어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순수한 호모 사피엔스 유전자는 얼마 되지 않고 진화과정에서 대부분 물려받은 것이다.


유전자 속에 남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는 스스로 복제하여 바이러스를 만들 능력은 없지만, 주변 유전자의 발현 스위치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그중에는 태반 발달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 등 인류에게 중요한 기능에 관여하는 것도 있다.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독성이 있는 화합물을 방출하거나 유전자 변이에 관여하고, 바이러스가 백혈병이나 전립선암의 세포 경로를 활성화시킨다는 연구도 있었다.


일부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의 발현 정도가 정신 질환과 연관성을 보인다. 2017년 바이러스 유전자가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신경학적 질환과 관련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바이러스 유전자가 정신 질환의 지표일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2024년에는 레트로바이러스가 우울증이나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 질환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한 연구가 나왔다. 분석 결과 레트로바이러스 1238개 중 26개가 정신 질환, 4개는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우울증과 관련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 질환이 있었는지 확인하지 않아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 변이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 연관 정도도 몇 퍼센트 범위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정신질환이 진화과정에서 외부의 바이러스 유전자로부터 왔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이렇게 진화적으로 유전적으로 복잡한 존재이다.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가 암 발생과 악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약 3000만 년 전 일부 영장류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남긴 유전자(LTR10)가 다양한 암에서 높은 활성을 보이는 것이 밝혀졌다. 실험쥐에서 이 유전자를 제거하면 암세포 생존과 관련된 유전자도 같이 꺼졌다. 이 유전자를 제거하여 암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다. 연관성을 밝힌 연구로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직접적으로 암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낸 것은 아니다. 암세포가 바이러스를 활성화시켜 생존력을 높였을 수도 있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o1218


수십억 년 진화과정이 모두 밝혀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연구로 인간존재의 복잡성이 더 많이 밝혀질 것이다. 생명다양성이 강조되듯이 인간은 정말 복잡하고 다양성을 가진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종교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근거 없는 ‘영혼’이나 ‘자아’로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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