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의 글 ‘사람이 온다는 것’



모든 일상과 책임을 벗어던지고 단지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는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다.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상하이의 은행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프리카 마약 밀매 상,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 암 환자, 가슴에 묻어둔 첫사랑까지. 진부하지만 마침내 여행을 끝내고 달려가는 곳은 다름 아닌 가족이나 연인의 곁이다. 바로 자기 곁에 있던 행복조차 깨닫지 못하던 인간이 비로소 깨닫고, 주변 사람과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다(독서신문, 2014.11.19. 영화「꾸뻬씨의 행복여행」해설).


인간의 만남이란 이 광막한 우주에서 떠돌이별이 만난 것과 같다. 별과 별 사이의 평균거리는 33조 km로, 그 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다. 그만큼 인간이 한 인간을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미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미처 생각지 못한다. ‘그’도 ‘나’와 똑같이 한 인간으로 사는 존재이다. 고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듯이 ‘그’를 대하고 사랑해야하는 당위성이다.『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책을 아내에게 바치며 이렇게 썼다. “광대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한 행성 위의 한 생애를 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쁠 따름이다.” 아내와 자녀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였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있는 것은 아름답다』의 저자 앤드루 조지(Andrew George)는 호스피스 병원에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연락이 오면 달려가 대화를 나눴다. 그 질문 중에는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무엇인가요?”가 있었다.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일요.” “어렸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형제들과 야구를 할 때면 어머니도 함께하곤 하셨죠.” 답변은 소박했다. 그들은 그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좀 더 사랑을 느끼고 싶어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공통점은 고통과 싸우면서도 주위 사람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나누려고 했다는 점이다.


“세상을 하직할 때 무엇이 남겠나. 집, 재산, 자동차, 명예. 다 헛것이다. 한때 걸쳤던 옷에 지나지 않는다. 이웃과의 나눔, 알게 모르게 쌓은 음덕. 이것만이 내 생애의 잔고로 남는다.” 2006년 법정스님이 부처님오신날 법회에서 한 말이다.


그 사랑은 지금 여기서 해야 한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어느 호텔에 묵고 있을 때, 호텔 주인의 어린 딸이 톨스토이의 가방을 갖고 싶어 했다. 그는 나중에 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왔다. 가방을 들고 다시 찾아갔지만 소녀는 병으로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 무덤에 가방을 걸어 주었다. 훗날 누군가가 ‘사랑을 다음으로 미루지 마라.’는 글과 함께 돌로 가방을 만들어 무덤 앞에 걸어 주었다. 톨스토이의『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남을 위해 사는 사랑을 주제로 삼았다.


인간만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 가도 생명이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지구의 생명이 나를 둘러싼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며, 융성하고, 싸우고,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니나 버튼(Nina Burton)의『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다』의 머리말에는 나오는 글이다. 세상에는 나무와 풀, 꽃과 열매, 벌과 개미, 다람쥐와 여우, 물고기와 물벌레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같은 조상에서 진화한 인간의 친구이다. 생명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독립된 개체이다. 인간도 생명계의 일원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일은 곧 우리 스스로 살아있음을 아는 일이며 우리가 생명계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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