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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세 Oct 01. 2024

Drowning man

Chap. 16 : 작가는 왜 가난한가? (feat. 왜 작가들은 교수가

  우선 내 할아버지 이정섭 옹께서 생전에 해주신, 금과옥조의 말씀을 떠올려보도록 하자.

  “어떤 직업이든 상위 5% 안에 들면, 넌 캐딜락을 타고 다닐 거다.”

  캐딜락보다야 벤츠지만.


  상위 5%에 드는 게 쉽나? No.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직업군이 전반적으로 가난하고 열악하면, 5%와 95%와의 차이도 크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빈부격차가 큰 것과 궤가 같다. 나는 95%의 얘기를 하려 한다. 5%라는,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를 난 잘 모르니까.


  작가는 왜 가난한가.


  한국의 책 시장에 작가로 유입되는 경로는, 문학에 있어서는 등단이다. 이전 쳅터에서 논했듯, 문학 부문에서는 등단자 외엔 책 내기가 어렵다. 문학 시장에는 기존 작가가 많고, 매년 유입되는 양도 꾸준한데, 책 소비는 줄어든다. 등단과 문예지에 작품 게재라는 과정이 아니라면 투고를 통해 책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투고를 해소해 줄 유능한 편집자군은 태부족이다.


  영미권에서는 이런 역할을 출판 에이전트가 하고 있다. 출판계에 작가를 소개해 출판을 성사시키고, 작가를 대리하며, 작가의 작품을 다른 나라나 영상 제작사에 알리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출판 에이전트 활동은 미비한 편인데, 책 시장의 파이가 작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출판 에이전트들의 활동도 책의 영상화판권 판매에 집중된 편이다.


  들어가긴 어려운데, 그 안에서 활동하긴 더 지랄스럽다. 격조 높은 단어를 써야 옳겠지만, 플로베르가 말했듯 작가란 모름지기 그에 딱 맞는 하나의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지랄만큼이나 잘 맞는 단어는 없다.


  이제 가난에 대한 산수적 접근을 해보도록 하자. 가격표는 2010년도 기준으로, 직접 겪거나 업계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10여 년 전이지만, 올라봤자 10만 원 정도 차이일 게 분명하다.


  간단한 산수다.


  단편소설 한 편을 문예지에 발표하면 문학동네에선 80만 원을 지급한다. 문장 웹진은 100만 원을 주는데, 그게 국내 최고가인 걸로 안다. 소설문학에 「쇼와 12년, 실화」를 게재하고 40만 원을 받았고, 문학나무인가에서는 원고료 없이 내 「황금 궁전」이 실린 잡지 다섯 권을 보냈다.


  원고료를 제대로 지불하는 문예잡지사가 얼마나 될까. 나도 경험한 일인데, 많은 작가들이 원고료를 지불받는 대신 1년 구독 혹은 잡지 구매를 제안받거나 원고료를 책으로 주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눈물 나는 얘기지만, 지금은 좀 더 숫자에 집중하도록 하자.


  단편소설집 한 권에 단편소설이 몇 편이 들어갈까. 보통 여섯에서 일곱 편 정도다. 작업실에 있는 단편집 몇 권을 가져와 뒤를 봤다. 손보미 작가의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에서는 아홉 편 전부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에서는 일곱 편 모두가,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에서는 일곱 편 다 국내 유수의 문예지에 수록되었다. 역시나, 이 정도가 아니면 단편집으로 묶어낼 수 없구나 싶기까지 하다.

  세 작가 모두가 발표를 하고 원고료를 받았을 거다. 신인 작가의 경우엔 모든 단편을 수록하지 못한 채 단행본을 내는 편도 꽤 되는 걸로 안다. 한유주 작가의 『달로』에는 수록 지면이 없는데, 그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엔 수록 지면을 싣지 않는 작가들도 꽤 있는 듯하다. 최제훈 작가의 『위험한 비유』에는 수록 지면이 실려 있지 않았다. 수록 지면 자체가 사실 문학적 위업이다. 이 정도로 공인받은 단편들을 한데 묶어낸 겁니다라는 뜻이니까. 좋은 일이고, 박수받을 공로다.


  다시, 숫자로 돌아가자.


  손보미 작가는 아홉 편을 실었고, 문예지로부터 원고료를 90만 원 가까이 받았을 것이다. 단편소설집을 묶어내는 데 계약금 또한 받았겠지. 500만 원가량일 것이다. 내가 지닌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은 2쇄이고, 손보미 작가는 이름값이 있으니, 2쇄까지 4천 부는 찍었을 것이다. 인세를 낮게 10%로 잡고 13,000원인 이 책을 2쇄까지 팔면, 손보미 작가는 2쇄 인세와 계약금을 합해 천이십만 원을 벌고, 이후 1쇄 당 이백육십만 원씩을 추가로 받게 된다.


  손보미 작가의 세금내역서를 참고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업계의 일정한 숫자들을, 손 작가의 책을 통해 역산할 뿐이다. 손보미 작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손 작가로 대표되는 순문학 작가의 내역서들을 추산해 보자는 얘기다.


  저리 보면, 꽤 번다 싶다. 맞나? 그럴 리가.


  우리는 여기에 시간 개념을 추가해야 한다.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내 경험으론 가장 짧은 건 12일이 걸렸고, 애를 먹인 건 2년가량이었다. 평균을 잡긴 어렵지만, 그냥 매달 단편소설 한 편을 쓴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매달 한 편씩 써도 그걸 그냥 보낼 순 없다. 문예지에 올리는데, 써놨던 걸 어찌 그냥 보내나. 여덟 달에 여덟 편을 썼으면, 그 여덟 편을 손 보고 고치는데 한두 달은 필요하다. 단행본도 그냥 나올 수 없다. 단행본의 편집자와 원고가 몇 차례 오가고, 몇 차례나 고치고 다시 본 글인데도, 또 묘하게 손이 가고 만지게 된다. 아무리 빨리 많이 써도, 한 권 분량의 단편소설을 쓰고 발표하고 책으로 내는 데에 1년은 걸린다.


  그리고 이 시간 계산은 정말 주먹구구다. 이렇게 쓰는 작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적이 있다 해도 어쩌다 한 번에 불과하다. 어떤 작가도 저런 속도로 단편소설을 매년 발표하고 묶어낼 순 없다.


  그리고 내가 가리키는 대상은 이제 막 등단한 작가들이다. 손보미 작가로 대표되는, 문단 내에 단단한 성채를 구축한 작가들이 아니고.


  막 등단한 제갈맹철 작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엄청난 문운이 가득한 제갈맹철은 등단작에 이어 매달 신작 단편소설을 문예지에 수록하는 괴력을 떨친다. 그리고 신인에 해당하는 계약금과 함께 단행본 계약을 맺게 된다. 지금까지는 잘 풀렸다. 좋은 문예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이어 수록한 단편소설들도 반응이 좋았으며, 단숨에 단행본까지 냈다.


  그다음은?


  등단 이전에 써놓으며 쌓아둔 원고들은 이미 단행본으로 묶였다. 이젠 새로 원고를 써야 할 때다. 계속 단편을 써서 두 번째 단편소설집을 묶어내는 작업을 올해와 내년에 할까? 아니면 써둔 것이나 구상했던 장편소설을 써볼까. 시간이 없다. 제갈맹철 작가가 작품을 쓰냐와 관계없이 제갈맹철 작가는 밥을 먹고, 전기요금을 내고, 교통비를 지불하며, 집세도 내야 할 테니까. 책 1쇄가 보름이나 한 달 만에 다 나가진 않는다. 책의 판매에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잘 나가는 제갈맹철이 한 해에 글로 번 비용은 잘 쳐줘도 천사백이십만 원이다. 문예지 원고료 칠백만 원에, 계약금 이백만 원을 더하고, 2쇄 인세 오백이십만 원까지.


  책을 일 년에 두세 권씩 내는 건 어떨까? 『강철로 된 무지개』를 2023년 11월에 발표하고, 『밤의 색깔들』이라는 원고를 검토한 마이디어북스의 이호빈 팀장과 계약 얘기를 할 때의 일이었다. 출간 시기를 묻자, 대답이 곧장 나왔다.

  “전작과 신작 간격을, 아무리 빨라도 육 개월은 줘야 합니다.”

  책은 휘발되지 않고, 재빨리 소비되지도 않는다. 신드롬을 일으키는 책이 존재하지만, 더 많이 사갈뿐, 독자들이 두 권씩 읽는 건 아니다. 구작과 신작 사이에는 일정한 냉각기간을 두는 게 업계의 방식이다.


  신경숙 작가나 박범신 작가처럼 인지도 높은 작가들은 인세나 계약금을 더 받을 거다. 13% 혹은 15%까지도 책정되는 걸로 안다.


  하지만 책 시장에는 우리 같은 작가만 있는 게 아니다. 출판사는 검증된 해외 소설을 판권 주고 들여오는 걸 선호한다.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로열티가 싼 작가를 들여와 흥행이 된다면 그 폭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 시장에서 작가가 이름 알리기가 어렵기에, 유명세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기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 번 명성을 떨치면, 잘 내려오지 않는 게 책 시장의 특징이기도 하다. 히라시노 게이고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될 것이다. 독자가 계속 사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가져간 로열티를 떠올려 보라. 한국 독자들은 그 값을 상회하는 구매를 해줄 것이기에, 출판사는 그 돈을 외국 작가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오오, 하루키의 높은 이름값이여.


  신인 작가는 그 사이에서 경쟁해야 한다. 캐딜락, 5%.


  책을 판매해서는 작가가 살아남을 수 없다. 최저시급에 가깝게 월 이백만 원 소득의 연봉 천사백만 원을 가정해 보자. 서울에서 이천사백만 원을 벌어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천사백만 원이 아니라, 오천팔백만 원도 찍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매년 그럴 순 없다.


  영화 시나리오는 편당 일억 원이고, 얼마 전 개봉한 <하이 재킹>은 삼억 원 원 짜리 시나리오로 입길에 올랐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연 수입이 일억 원일까? 매년 영화를 하는 시나리오 작가는 없고, 감독도 3년에 한 편 찍는 정도다. 게다가 지불도 3회에 걸쳐 나눠 받는 게 업계 상례다. 30%는 계약금으로, 40%는 촬영을 끝나면, 나머지는 개봉도 끝나고 OTT나 DVD 발매까지 끝나 이뤄지는 최종 정산에. 촬영 직전에 영화가 무산되면? 계약금이나마 건지면 다행이다. 영화는 상영에 이르기까지 무수하게 엎어진다. 내 경험에 20편이 론칭되면, 1~2편 상영되는 것 같다. 흥행은 고사하고, 상영되는 것만으로도 이처럼 가시밭길이다.


  책 또한 비슷하고,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입봉 하는 드라마 작가의 원고료는 편당 천만 원이다. 16부작이면 일억육천만 원이니, 왜 다들 드라마에 목을 매는지 알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매년 작품을 선보이는 드라마 작가는 없다. 정말 다작하는 작가도 1~2년에 한 편을 내놓는다. 업계가 간격을 주는 게 아니라, 16화짜리 드라마를 쓰는 일이 그리 어렵다. 드라마 작가는 자기가 쓰고픈 걸 쓰면서도, 각계각층의 요구 또한 녹여내야 한다. 제작사 대표, 프로듀서, 연출가, 주조연 배우, 나중에는 시청자 게시판 댓글까지. 16개를 쓰는데 2년이고 휴지기를 몇 개월 둔다면, 드라마 작가의 연봉은 오천만 원가량일 것이다. 적진 않지만, 생각만큼 많지도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숫자들은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의 일이다. 소설이든, 영화나 드라마든, 데뷔 자체가 쉽지 않다. 글을 쓰고픈 사람은 많다. 잘 들여다보면, 재주는 비슷비슷하다. 산업화된 영역에서 특히 그러한데, 제작자들은 작가를 싼 값에 쓰고 버린다. 왜? 작가 지망생은 많고, 실력은 비슷비슷하니까.


  그나마 영화와 드라마는 산업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긴 하다. 연극은…… 안타깝지만, 보통의 원고료는 백만 원으로 묶여 있다. 1시간 30분가량의 공연시간을 지닌 극은, 그것도 초연일 경우에만 백만 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연극은 지원금 없이 공연할 수 없다. 극단이 돈이 없고, 지원금 없이는 대관이나 배우 등의 스태프 계약도 진행할 수 없다. 지원금 서류엔 작가 원고료가 10%로 책정되어 있지만, 누구도 그걸 지불하지 않는다. 오십만 원을 먼저 주고 후에 떼어먹는 경우도 겪었고, 써달라는 원고가 마음에 안 든다며 연락두절을 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두산아트센터나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출가나 극작가가 겪는 대우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겪은 연극판이 아니니까. 어떤 극작가가 한 해 몇 회의 공연을 올리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대여섯 편이나 될까 싶고, 그러면 원고료는……. 더 이상 말하지 말도록 하자.


  이제 생각해 보면, 다들 그래서 상명대학교 소설창작학과 석사 과정을 했구나 싶다. 소설가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직위이면서도 방학을 통해 집필 기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직업이 대학교수니 말이다. 고정수입이 생기고, 그럴듯한 대외활동이 보장되고, 제자들의 등단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나 이름값 또한 높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학교수가 되고 나서 좋은 작품을 낸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이젠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대학도 낭만을 잃은 지 오래고, 어느 곳이든 연봉을 지급하면 그에 상응하는 노동과 시간을 당연히 요구한다. 페이퍼 웍에, 잦은 회의에, 다면 평가에 이르기까지, 교단에 서는 작가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자기 글에 온전히 쏟아내기 어렵다.


  노동을 하면서 글을 쓰긴 어렵다. 너무나 격렬한 노동은 머리까지 마비시키니까. 내게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극작가 지망생 하나는 택배 상하차를 했는데, 자녀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다고 얘기했다. 글을 위해 우린 뭔가를 희생해야 한다. 구조가 그러니, 우리는 구조에 맞게 삶을 깎아내야 한다.


  가능한 충고는, 연관된 사이드잡을 찾으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도 좋고, 글과 연관된 부업을 갖는 것도 괜찮다. 젊다면 작가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드라마 보조작가를 경험하라. 취재업무를 익히고 업계의 돌아가는 판을 직접 겪을 수 있다. 내가 했던 대필작가를 해도 좋고, 카피라이팅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광고대행사 보명을 통해 써줬던 카피라이트가 꽤나 근사했는지, 암웨이 코리아의 대표가 감사 전화를 준 적도 있다. 광고의 문구를 쓰면서, 훔쳐야 할 건 소비자의 마음이 아니라 대표의 입맛임을 알게 되는 것도 큰 수확이다. 서점에서 반품할 책을 상자에 넣고 밴딩기로 포장했던 일을 하기도 했다. 점심시간과 사이사이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책 더미에 기대어 늦도록 책장을 넘겼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책이 유통되는 과정과 그 사이에 일어나는 부조리를 보기도 했다. 떠올려보면, 모든 경험은 득이 된다. 작가로서 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기회를 엿보길 권한다.


  가장 좋은 일은, 내가 계획했던 대로 9 to 6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윤평성대-아니, 김평성대인가-를 살아가는 공무원들도 야근에 휴일 출근까지 잦다고 하니, 이 방법도 쓰기가 어려워진 듯하다. 자영업은 하지 말길. 매장은 감옥이고, 사장은 거기 묶이는 존재이니까. 당신의 운수와 기회를 엿보는 방식이, 글을 쓸 당신의 입에 풀칠을 해줄 괜찮은 직장을 구해주리라 믿는다.


  대한민국의 작가는 왜 가난한가? 그들의 본업을 통해 그들의 삶을 중산층에 가깝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들이여, 실망하진 말지어다. 다른 나라 작가라고 부유한 건 아니니까. 돈과 명예는 글쓰기의 부산물일 뿐이다. 광석에서 금을 추출해 멋진 문양을 새긴 아름다운 메달을 만드는 과정에서, 잡스러운 금속 찌꺼기와 돌 부스러기들이 나오는 이치와 같다. 중요한 건 글쓰기이며, 독자를 격렬하게 설득할 짙디짙은 글이야말로, 완벽한 메달이다. 당신이 그걸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 완벽하게 몰입되기만 한다면, 부산물은 머릿속에 없을 것이다.


  당신이 그 완벽한 몰입감 속에서 굶주림과 갑갑함을 완전히 잊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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