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나무의 잎사귀는 빤딱빤딱 하다. 이게 살아있는 나무가 맞나, 플라스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끈하다. 동네 마트에서 사 온 작은 모종 화분 안에 열 그루 정도의 커피 모종이 다닥다닥 심겨 있었다. 아무리 물을 주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자라지 않아서 정말 조화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쑥쑥 자라주지 않는 식물에는 내 관심도 금방 시들해지므로 몇 달 후 잎사귀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다른 화분들 분갈이를 하면서 커피 화분도 열어보았다. 정말 조화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자잘하게 뻗어있는 뿌리를 보고서야 삐딱한 의심의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그 후 4년 동안 간간이 분갈이를 하면서 모종마다 하나의 화분을 가지도록 독립 시켜줬고 지금 우리 집에는 그중 살아남은 7그루의 작은 커피나무가 있다.
아주 뒤늦게야 알아보니 커피는 화분의 크기만큼 자란단다. 나는 항상 식물이 빽빽이 자라서, 이 화분 너무 좁아요 하고 온몸으로 표현할 때쯤에야 분갈이를 해주었기 때문에, 커피는 자주 분갈이해 주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식물과 화분 크기의 적절한 비율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우리 집 커피는 매우 더디게 자랐나 보다. 커피는 자리가 있어야 자라는데, 나는 충분히 자라고 나면 자리를 만들어 주지라며 마냥 기다린 거다. 우리, 너무 소통이 없었다.
커피는 따뜻하고 습한 아열대 지방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우리 집의 실내 온도는 독일의 다른 집들과 다르지 않다. 여름에도 19~21도 이상 잘 올라가지 않고, 습도 또한 40 - 50 이상 올라가기가 힘들다. 이런 우리 집은 일곱 그루의 커피나무에겐 정붙이기 힘든 집구석이었을까. 원산지에서 이토록 멀리 와서 제대로 다리도 못 뻗고 기지개도 못 켜는 생활이었던 걸까. 매일 아침 커피 열매를 우려 마시는 나를 보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집 커피나무는 아직도 짙은 초록빛의 무표정이다. 차라리 색이 변하거나 시들거나 하는 증상이라도 있었다면 더 빨리 눈치챘을 텐데. 마치 누군가가 왁스 칠이라도 한 듯 반질반질한 커피의 잎사귀를 보고 있으면, 화장을 잘해서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미녀를 생각하게 된다. 커피와 차가운 도시의 미녀라니 꽤 잘 어울리긴 하지만. 그래도 4년을 키웠는데 아직도 모종 크기인 커피나무들이 안타깝다.
어쩌면 미미한 성장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었을까, 외침이었을까. 자라야 할 것이 자라지 않는 만큼 강렬한 주장이 어디 있을까. 우리 집 커피나무들은 4년간 한 뼘도 안 되는 크기를 키웠지만, 티브이나 사진에서 보던 늠름하고 울창한 커피나무의 잎사귀만큼은 똑 닮아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최대로 자랄 수 없어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가장 짙은 초록빛 잎사귀만 피워내겠다는 듯 도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