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쫓겨나 시간 보내기
부엌에서 ‘뎅그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의 길고 긴 잔소리가 또 시작되었다. 식구들은 눈빛으로 내게 나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내가 집안에 있는 것이 엄마를 자극한다고 믿었다. 눈총을 받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뒤로 잔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저한테 하는 잔소리 듣기 싫은 건 아는 애가 왜 다른 건 그와 같이 못하나 몰러~ 내가 지가 잘하는 대두 지어내서 잔소리할까~ 반성해서 고칠 생각은 안 하구 귓구멍은 있어서 듣기 싫은 건 어찌 안 다니~ 그런디 쟤는 저 좋구 허구 싶은 것만 알구 나머지는 모르니께, 그게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 냔말여~ 사람이 살면서 어디 저 좋은 것만 하구 살 수가 있남? 누구나 다 그렇게 허구 살구 싶지만 사는 건 그게 아니니께 다들 이러구 사는 거 아니냐구~ 사람은 한결같어야 하는겨~ 달믄 삼키구 쓰다구 뱉으믄 되것냐구~ ”
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이 없다. 집 앞 큰길 건너편에는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농업고등학교가 있었다. 나는 자주 그곳으로 갔다. 학교 정문은 집에서 멀었지만 후문은 가까웠고 항상 열려 있었다.
그곳에는 학교의 나이만큼 커다란 나무가 많았다. 나는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풀들을 잡아당겨 머리처럼 묶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주워 운동장 모래에 그림을 그리거나, 혼자 넓이 뛰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평행봉도 몇 개 있었다. 그곳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온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러면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며, 꼬여 올라간 등나무 아래 나무 벤치가 나와 같이 거꾸로 흔들렸다.
운동장과 평행봉이 있던 곳은 잘 가꾸어진 쥐똥나무가 경계였다. 쥐똥나무는 항상 자를 대고 자른 듯 윗부분이 나란히 잘려 있었다. 봄이면 작게 피는 하얀색의 꽃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내 몸이 동화 속 엄지공주만큼 작아져, 쥐똥나무 속에 새둥지처럼 포근한 집을 짓고 그곳에 들어가 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나무의 이름처럼, 가을이면 까맣고 작은 쥐의 똥 같은 열매가 겨울까지 붙어 있었다.
해 질 무렵이면 늙은 나무의 그루터기에 올라간다. 그곳에 앉거나 엎드려서 집 쪽을 가만히 바라본다. 동네 집들은 하나 둘 켜지는 창문의 불들로 환해진다. 따뜻해 보이는 집들을 보면서 지금쯤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 있을까 아닐까를 생각한다. 저녁 찬바람은 잔뜩 웅크린 작은 내 등짝을 훑으며 지나갔다. 집을 나온 날은 항상 추웠다.
날이 어두워지면 아버지는 나를 찾으러 나왔다. 멀리 어둠 속에서 아버지 손에 들린 작은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걸음걸이에 맞춰 흔들리는 손전등 불빛만 봐도 나를 찾으러 나오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가자!”
대부분 그런 날은 저녁밥도 굶은 채 잠들어야 했다. 배도 고팠지만 이불 속에 들어가도 한참 동안 몸은 한기에 떨어야 했다.
열 살 무렵부터, 사나흘에 한 번씩 그렇게 집 밖으로 쫓겨났다. 세 살 터울의 동생은 내가 집에서 자주 쫓겨났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랬었어? 그렇게나 자주?”
나의 어린 시절은 어디로 가 버려서 모두에게 잊힌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