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나는 항상 머리가 짧다. 6~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머리 모양이다. 앞머리는 눈썹 위로 반듯하게 자르고 옆머리는 귓불과 길이를 맞추고 뒷머리는 이발기로 짧게 밀어 올린 머리를 오랫동안 했다. 그 머리는 미장원이 아닌 이발소에서 잘랐다. 그 때문에 지금은 많이 사라진 이발소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게는 높고 크던 빨간색 등받이의 이발소 의자와 한쪽에 자리하고 있던 타일을 붙여 만든 머리 감는 세면대. 그 앞에 놓여있던 플라스틱 동그란 의자. 면도칼을 문지르던 긴 가죽 띠. 면도 거품을 내던 나무 손잡이가 앙증맞은 거품 솔과 그것이 담겨있던 작은 하얀색의 그릇. 머리를 감겨줄 때 쓰던 작은 파란색의 물 뿌리개도 기억난다. 미장원이 근처에 있었는데 왜 이발소에서 잘랐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들이 머리를 자르는 이발소의 의자는 나와 높이가 안 맞았다. 그래서 머리를 자를 때는 의자의 양쪽 팔걸이에 빨래판과 비슷한 나무판자를 가로질러 얹어 놓고 그 위로 이발소 아저씨가 나를 안아 올렸다. 그래야 아저씨가 내 머리를 편하게 자를 수 있는 높이가 되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커다란 거울 속에 비치는 내가 신기해서 고개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목에 하얀색의 가운을 둘러주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귀 옆을 스치는 가위의 사각거리는 소리는 자장가처럼 눈꺼풀을 스르르 내려오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엄마의 주의를 들으며 잠을 참고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곤 했다. 그러다 잠이 들만하면 머리 자르기는 끝나 있었다.
엄마는 동생과 나의 머리를 빗겨 줄 때마다 짜증을 냈다. 엉킨 머리 때문에 빗이 안 내려가면 엄마는 빗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훑어 내렸다. 내 작은 머리통은 엄마의 거친 빗질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아팠다. 그래도 울거나 투정 부리지 않았다. 난 언제나 엄마가 화내는 상황이 싫었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화날까 봐 항상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몰랐다.
엄마는 나와 동생의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내가 머리를 길게 기른 기억은 없다. 지금도 물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