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에이전시의 할일은 정말 디자인을 전달해주는 일일까?
저번주에 있던 일이다. 클라이언트와 회의를 하고 나왔는데, 정작 요점이 뭔지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얘기는 한 것 같은데, 클라이언트가 정신이 없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짚기 힘들었고,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해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 나빴던 것은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하나의 에이전시 대표가 아니라, 단순히 디자인하는 어린애로 보고 이것 저것을 알려주려 했던 점이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고 무척 대단한 배움을 얻은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자기 회사에 대한 자랑과 한탄이었지만, 이 회의가 의미가 있길 바라면서 요점을 짚으려 했다.
처음에는 기분만 나빴는데, 사무실로 돌아와 생각을 해보니 이 사람의 전문성을 욕하기만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의뢰를 하러 와서 단순히 일처리만 딱딱 진행한 적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이스튜디오가 디자인을 해주는 주 클라이언트가 새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도 없지않아 있지만,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과연 디자인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디자인 에이전시는 뭘 할까? 당연히 모두가 디자인을 작업해서 전달해주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디자인 에이전시는 나와 함께 이 무거운 짐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하러 오는 공간인 것이다. 디자인 에이전시를 열고, 여러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은 나에게 작업이 아니라 하소연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업을 먼저 의뢰하러 와도, 지금 경기가 이래서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사람이 회사를 어떤 뜻으로 세웠고, 지금은 얼마의 적자가 남게 되었는지를 다 알아버린다.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알기 위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의중이 아니라 심정을 들여다보게 된다고나 할까.
본디 내가 이들에게 디자인 외주를 해주는 이유는 돈때문이 아니었다.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디자인은 늘 뒷전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뽑을 여력도, 에이전시에 맡길 예산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디자인으로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도 시작하는 처지이니, 같이 시작하는 사람들끼리 도우면서 커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그들이 디자인보다 더 원했던 건 안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사실 하나가, 그들에게는 회사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온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디자인을 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돈을 받고 가치를 만들어준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나의 클라이언트들은 그 이상의 안심을 가져가는 것 같다. 내가 일을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회사가 프로젝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생각하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래서 디자인 에이전시는 같이 있어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한한 시간 속에서 아주 잠시라도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수 있는 존재.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의미를 붙잡아내는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단순히 디자인을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에이전시가 아니라, 내 사업을 하고 싶어서 뛰어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프로젝트를 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동료가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웨이스튜디오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