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I'm on my way 05화

판단을 하면, 관찰의 기회를 잃는다.

충분히 관찰을 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시간을 들여서 관찰하길

by 장지혁

나의 방식이 틀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디자인 에이전시의 방식은 실패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이유를 대라면 몇십 가지는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은 결국 변명일 뿐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깊은 자기혐오에 빠졌다.


‘왜 나는 하는 것마다 실패할까?’
‘왜 이렇게 안 풀릴까?’
‘이걸 포기하면 또 도망치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만해야 할까?’


데이터로 ‘실패’라는 결과를 확인한 순간부터 이 생각은 계속되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ChatGPT를 켰다. 하소연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내 상황이 이렇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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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포인트
→ 지금은 ‘판단’보다 ‘관찰’이 먼저예요.
내가 왜 이렇게 느끼는지 단어로 적어두면, 그 감정이 객관화돼서 덜 무겁게 느껴집니다.
(예: “나는 결과보다 방향을 잃은 것이 더 무섭다” / “나는 실패보다 미련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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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가장 어려운 말이었다. 나는 상황을 ‘관찰’하기보다 서둘러 ‘판단’했다. 가장 큰 판단은 “실패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패 원인 분석과 자기혐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서둘러 결론을 내릴 이유가 있었을까?


판단해야 할 순간은 언젠가 온다. 그렇다면 왜 나는 굳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도망가려 했을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시간이 허락한다면 선택지를 먼저 관찰할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관찰하려 한다. 그리고 이 생각을 계속 붙들어두려 한다.


공간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얼마의 수익이 손에 잡히는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같은 질문을 매일 해도, 판단이 아니라 관찰의 태도로 보면 다르게 보인다. 지표가 나빠져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가온다. 예전처럼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면, 나는 아마 이 사업장을 던져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관찰을 이어가다 보니, 마치 국어 지문 속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듯,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보였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확 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실패를 미뤘으니 된 것 아닐까.


관찰은 생각보다 어렵다. 끝나지 않는 두려움을 마주하고, 정해지지 않은 불안 속에서 버텨야 한다. 그게 관찰하는 사람의 짐이다. 하지만 주관을 내려놓고, 편견을 뒤로 한 채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의외로 많은 것이 보이고, 약간의 여유도 찾아온다. 불안을 억누르지 않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천천히 뜯어보는 것. 불안의 실체를 알수록 그것은 줄어든다. 그래서 지금 불안한 감정 위에서 성급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강심장이 필요하다. 이런 강심장은 내가 뭘 원했는지에 대한 나의 오리진을 잊지 않는데서도 오는 것 같다.


나는 이제, 결론을 서두르기보다 먼저 관찰하는 연습을 하려 한다. 그 결과가 공간을 버리는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관찰의 결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음을 느꼈다. 형태가 달라져도, 느낌이 바뀌어도, 내가 뭘 원했는지 생각하며, 끝까지 밀고 가보려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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