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은 쉽고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나는 한때, 일이란 무척이나 특별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일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일’은 내 생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아름답게 완성되는 무엇이라 여겼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한 일은 그보다 훨씬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업무의 처리와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이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내가 상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단순하고 기계적인 작업들을 ‘잡무’라고 치부하며, 나는 다른, 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잡무가 아닌 진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잡무'를 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그것이 일의 본질이라는 걸 안다. 디자인도 똑같은 것 같다. 디자인이라해서 뭐 특별하고 값지고 무게감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일의 연속과 반복이라는 점이다. 처음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글이 아닌 비주얼로 소통한다는 점만 다를 뿐, 결국 핵심은 ‘전달’과 ‘이해’의 과정이었다. 정말 재미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그 과정이, 진짜 들어와보니 달랐다. 다른 사람과 협업하고, 심지어 기계와도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무언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맞춰가는 작업이 재미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뒤, 내 업무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의 나는 창의적인 작업만을 ‘일’로 여겼지만, 지금의 나는 작은 커뮤니케이션 하나하나가 전체 구조를 완성하는 벽돌이라는 걸 안다. 오히려 예전의 내가 그런 중요한 작업들을 ‘하찮은 것’이라 생각했다는 게 부끄럽다. 일을 대하는 관점이 바뀌고 나서, 나는 성과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치가 아니라 팀 간의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얼마나 서로의 생각이 통하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생각이 결과물에 반영되었는가.
일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교감’이었다.
한 번은 뷰티 브랜드 제품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사이에 마찰이 생겼고, 나는 총괄로서 그 사이를 중재해야 했다.
당시 나는 그 디자이너를 믿고 전적인 권한을 위임했고, ‘잘 하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로 프로젝트를 지켜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디자이너의 방향성과 클라이언트의 니즈는 충돌했고,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잃을 뻔했다. 나는 뒤늦게 수습에 나서야 했고, 결국 사후 대응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또 한번은 플로터로 작업을 하는 중에 기계가 말을 안들었다. 한시간동안 씨름 끝에 세로로 뽑아야 하는걸 가로로 뽑아서 사이즈가 넘어 못 뽑는다는 것을 알았다. 기계조차도 유연하게 일을 진행하려면, 내가 뭘 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얘가 뭘 이해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이 사건들을 통해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총괄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적절히 지시하고 알아서 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무사히 항해할 수 있도록 조율하고 소통하는 것이었다.
잘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진짜 리더십은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이탈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힘을 실어주고,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만큼의 권한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하다가는 숲을 보지 못할게 뻔하다.
일은 소통이다.
창의성은 그 소통을 통해 드러난다.
디자인도, 프로젝트도, 관계도 결국 얼마나 잘 말하고 듣는가의 문제다.
그렇기에 오늘도 일을 하며 귀를 기울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