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날 꽃다발을 건네주신 엄마와 나는 한 번도 밥을 같이 먹지 못했다.
인생을 살면서 학업을 마치는 순간만큼 설레면서 기쁜 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루틴을 잘 지켜내며 학업을 마친다는 것은 그 기간 동안의 성실함과 집념으로 끝까지 잘 버텨냈다는 결과인 동시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학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졸업!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아름다운 일인지 아는 까닭에 사람들은 늘 졸업식엔 꽃다발을 전해주는 것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그 꽃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꽃다발은 그런 마음을 담아 전해주는 선물이다.
어릴 땐 그저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누구나 졸업식에는 꽃다발을 받았고,
그간 고생했다는 의미로 당연하게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지금이야 너무나도 흔한 음식이고, 탕수육은 당연히 먹는 요리이지만, 어릴 적에만 해도 짜장면 한 그릇을 사 먹는 것은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기 힘든 특식 중의 특식이었다.
그만큼 졸업식날 온 가족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먹는 날은 한참이나 지나더라도 그날을 추억하게 되는 소중한 일상 중 하나였다.
요즘은 대부분 대학교까지는 학업을 마치다 보니 유치원에서부터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다니게 되면 5번의 졸업식을 하고, 가방끈을 조금 더 길게 하면 2번의 졸업식을 더 하게 된다.
사실 졸업식을 많이 한다는 것은 대부분 부모님의 희생이 그만큼 오랜 기간 지속된다는 말과 같다.
혼자 힘으로 학업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고학생이 아닌 이상 부모님의 땀과 노력, 시간과 돈을 자식 밑에 갈아 넣는 것이 보통의 평범한 삶일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졸업식을 많이 참여했었고, 늘 그렇듯이 졸업식 날에는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으며 축하를 받았다.
일터에 나가신 엄마는 다른 날은 몰라도 늘 졸업식은 꼭 참석해주셨는데 꽃다발을 잊지 않고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사실 무뚝뚝한 남자에게 꽃다발 선물은 그냥 사진 찍는 용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졸업식이 끝난 후 곧장 향했던 중국집이 더 반가웠고, 찐득한 테이블에 김이 피어나는 짜장면을 다 비비지도 않은 채 늘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어쩌다 탕수육을 주문한 날에는 새콤달콤한 소스가 뿌려진 탕수육을 더 많이 먹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폭식을 하며 먹고 난 후에는 배가 불러 낮잠을 자곤 했다.
그것은 그간 고생했던 나 자신을 위로하는 셀프 위로였고, 나는 그렇게 편안한 하루를 보낼 때가 좋았다.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국민학교라 불렀다.
옛날 사람인 걸 티 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왠지 몰라도 초등학교라는 어감이 내게는 좀 더 어려 보이는 말처럼 느껴져서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좀 더 있어 보였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유치하고 이상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졸업식을 찾아오시는 엄마는 늘 시간을 확인하며 내게 꽃다발을 주시며 나와 함께 사진만 찍고 가셨다.
나는 그렇게 졸업식장을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늘 서운해했었다.
아무리 바빠도 “밥도 좀 같이 먹고 가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한참 전 코로나가 심했을 때 아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공간을 빌려 전시회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빠는 내가 전시할 때 꽃다발 왜 안 사 왔어?"
불현듯 아차 싶었다.
"아.. 전시회에 가면서 잊었구나.. 늦더라도 꽃다발을 사 왔어야 했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야~~ 이 녀석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여길 오려고 얼마나 노력해서 시간을 내어 온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투정을 듣다 보니 나는 아이에게 괜히 원망 섞인 소리를 더 듣긴 싫었다.
"그래도 아빠가 네 작품 보러 여기 왔잖니?
아빠가 오니까 좋지 않아?"라고 말했는데
아이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래도 꽃다발은 사 가지고 와야지!"라는
핀잔을 듣고 말았다.
"아빠가 미안해! 다음엔 꼭 꽃다발 사갈게!"
결국 나는 그날 죄인 모드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하루를 보냈다.
어린아이의 투정을 들으며 나는 내 어릴 적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 나는 철이 없었다.
엄마는 점심도 건너뛴 채 자식의 졸업식에 오려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몸으로 쓰는 일을 하는 직장에선 시간이 곧 돈이기에 사장은 직원들이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한다.
엄마는 졸업식에 오기 위해 욕심 많은 사장의 듣기 싫은 잔 소리를 참았을 것이고, 직장에 돌아간 후에는 죄인처럼 하루의 일을 늦게라도 마무리해야 하셨다.
구두쇠 같은 사장! 이 놈의 직장!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셨을 것이다.
이제야 이런 이해를 하는 것은 내가 직접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냥 우리 엄마 참 대단하네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늘 남에게 듣는 싫은 소리를 안 들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주야장천 그저 일만 하는 바보 같은 소처럼 살아온 엄마! 나는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나는 늘 "엄마! 대충 해도 돼!"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사람 간의 신뢰 문제인데..."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내겐 삶의 교과서가 되었고,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잡아주는 흙이 되었다.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일처럼 보이지만, 남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비슷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급격히 좋을 일도 없지만, 급격히 나쁠 일도 없었다는 이야기니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평범하게 학교들을 졸업했고, 그때마다 가족들은 나의 졸업식에 와서 졸업장과 상장을 수여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주었고, 꽃다발을 든 채 어색해하는 내 모습을 사진첩에서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엄마는 한 번도 빠짐없이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러 오셨고, 그때마다 꽃다발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왜 그땐 몰랐을까!
꽃다발은 엄마가 받으셨어야 했다.
십수 년간 자식의 미래를 위해 뒷바라지하신 엄마가 받으셨어야 할 훈장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엄마는 늘 밥을 같이 먹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내가 시간이 없다." "너희끼리 먹고 집에 들어가라."
난 왜 몰랐을까?
국수를 좋아해 큰 양푼에 2인분이 넘는 양도 거뜬히 드시던 엄마도 짜장면을 드시고 싶었을 것이고, 탕수육도 드시고 싶었을 것이다.
다 같이 둘러 모여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고, 웃으며 잠시 쉬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점심도 쫄쫄 굶었지만, 엄마는 잠시 외출 나온 것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하루 종일 미싱을 돌렸을 것이다.
그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일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심장이 아프다.
같이 있고 싶은데 함께 있을 수 없는 그 마음을 난 왜 몰라줬을까?
어릴 적 서운해했던 모습을 떠올리니 나는 내가 너무 싫다.
To. 엄마
엄마! 엄마가 엄청 맛있는 걸 먹으면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거 알아요?
"이야~~~ 진~~ 짜 맛있더라. 호호호"
나는 왜 그렇게 이 말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엄마! 다음에도 엄마가 좋아하시던 그 브런치카페 갈까요?
엄마가 맛있다고 한 커피, 샐러드 또 먹어요!
그리고 엄마!
나 공부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줘서 고맙습니다.
평생 제가 갚아드릴 테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해요!
From.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