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책가방과 선생님

그 아이의 가방을 놀이터 앞 땅바닥에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by Hyean de TJ

우리는 인생이란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고 말하곤 한다.


삶을 살아내다 보면 우연한 기회에 인생에서 깨달음을 주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그 순간에 만나는 모두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여정은 늘 반복되는 규칙 속에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 같은 것이며, 그 행운은 작고 반짝이는 별처럼 가슴속에 파고든다.


어제는 파란 하늘이 티 없이 맑았더라도 오늘은 얄궂은 비가 내릴 수 있고, 세찬 바람에 눈을 못 뜰 정도로 힘겨웠다가 내일은 또 빛나는 아침 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게 인생인 것이다.




어릴 적을 회상해보면, 나는 1991년이 가장 행복했다. 그 해 우리 집은 할아버지 댁에서 분가를 했던 해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가 많았던 해이기도 하다.


그 행복했던 시간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해 서울로 시집을 간 큰 고모를 보기 위해 서울에 놀러 간 일이었다.


늘 똑같은 길로 늘 같은 시간에 학교를 오가던 평범한 일상에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을 처음 가본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설레어 잠을 설쳤다.


기차를 타는 일도, 서울을 가는 일도 나에겐 참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겐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6시간이 넘게 쉬지 않고 달린 기차에서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지루함을 견뎌야 닿을 수 있는 거리였기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독이란 것을 경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제일 빠른 기차는 새마을 호였고, 나는 무궁화호를 입석으로 탔었다.


자리가 비워지면 자리에 잠시 앉고, 사람이 타면 다시 서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가끔 기차를 탈 때면 그때 그 기억들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오른다.


여행은 늘 설레는 동시에 참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행복한 일이고 그것은 힘들어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잘 견뎠고, 등산을 좋아했던 고모부와 그 해 여름 북한산을 처음 올랐다.


그것이 내겐 제대로 된 첫 여행이자 도전이었다.


그리고 서울여행 이후로 나는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로 성장했다.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게 없었던 열한 살 촌뜨기에게 참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서울여행은 나이가 들어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과거의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분가를 하면서 우리 집은 할아버지 댁에서 차로 삼십 분이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히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하는 일은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에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친구들과 무난하게 지내며 그 무리 속에 잘 스며들어갔다.




뜨거운 햇살이 머리마저 뜨겁게 만들던 계절의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선 종례시간을 마치고, 넌지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왜 나를 부르셨지?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학을 온 뒤 몇 번 정도 선생님과 동네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인사를 제대로 안 해서 화가 나셨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선생님은 차분히 자리에 앉아서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계셨고, 전학을 오고 나서 힘든 것은 없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보셨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전학 와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칭찬도 해주셨다.


그러다 선생님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실 우리 집 옆집에 선생님이 살고 계시다는 것과 다른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했다.


왠지 몰라도 뭔가 엄청 기쁨이 차올랐다.


가슴이 간질간질한 게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선생님은 정말로 우리가 이사 간 바로 옆 집에 세를 얻어 살고 계셨는데 아마 전세방에 살고 있는 게 생각해보니 좀 많이 부끄러우셨던 것 같았다.


그리고 슬하에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아이와 나보단 어린 남자아이였다.


나도 오며 가며 본 아이들이라 사이좋게 지내리라 마음먹었다.


내 기억에 선생님은 큰 안경에 펌으로 한껏 머리 컬이 풍성해 보이는 사자머리를 하셨는데 꽤 덩치가 있고, 강단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라 무슨 말을 하여도 내가 그 말을 안들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쫄보에 가까운 나는 그저 선생님 말씀이라면 참 곧이곧대로 말을 잘 들었던 모범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난 그쯤이야!”하며,

그 정도 부탁은 얼마든지 비밀로 약속할 수 있어요!

라는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부탁 하나를 들어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그건 바로 자신의 아들이 어깨가 좋지 않으니 학교에서 하교할 때만 가방을 들어주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마을버스를 타고선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아이의 걸음으로 걸어서는 3~40분이 족히 걸리는 꽤나 먼 거리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그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러 그 아이의 반 앞에 가서 기다렸다.


“내가 니 가방 들어주러 왔어!”

“응! 여깄어!”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그 아이는 천방지축으로 뛰며 가방을 던지듯이 내게 맡기고 자기 친구들과 어울리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그 황당함이란!

적잖이 놀랬지만 내 입으로 뱉은 말이고 선생님과 한 약속이니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소위 책가방 셔틀을 했던 것 같다.


유독 햇빛이 강했던 날이었다.

그날 내 가방에는 온갖 책들이 다 넣어져 있었고,

그 아이의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돈만 있었어도 마을버스 타고 편하게 집에 갈 텐데!’라며 이를 악물고 몇 번을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집 근처 놀이터에 왔을 때,

그 아이가 신나게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정말 신경질이 났지만, 꾹 참고 물었다.

“너 언제 왔어?”

“어! 아까 전에 마을버스 타고 왔어!”


난 그 말을 듣는데 그냥 다리에 힘이 풀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따져 물었다.

“그럼 니 가방 들고 가도 됐는데 왜 안 가져갔어?”

“원래 형님이 내꺼 갖고 가잖아!”


앞뒤로 가방을 둘러맨 나는 그날 그 아이에게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욕을 다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가방을 놀이터 앞 땅바닥에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그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왜 가방을 던지냐고 대들었지만 까불면 죽여버릴 거라는 험한 말과 주먹을 불끈 쥐었더니 그걸 보고 무서웠던지 울면서 자기 집으로 갔다.


선생님의 얼굴이 잠시 아른거렸지만, 분하고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나쁜 말을 했다는 죄책감과 가방을 집어던졌다는 것 그리고 선생님을 실망시켰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응, 준이 학교 잘 갔다 왔어?”

“엄마 사실 말이야……”


나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나의 잘못을 이실직고했다.


이제 나는 오늘 크게 혼나겠구나! 싶은 두려움이 앞서던 그날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딱 한마디 외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넌 잘못한 것 없어!”


그리고 조용히 나를 찬물에 샤워를 시키고,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잘라 내놓으셨다.


그렇게 먹은 수박은 참 시원하고 달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옆집의 선생님을 찾아가셨다.

엄마는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셨고 나는 담벼락 너머로 선생님이 엄마랑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엿들었다.


엄마는 선생님께 사과를 받으셨고, 그 아이가 혼나는 소리가 우리 집에도 들렸다.


“역시 우리 엄마!!!”


선생님은 조금 더 늦은 밤 우리 집을 찾아오셨고, 과일이 든 검은 봉지 하나를 건네셨다.


다음 날, 선생님은 학교에서 다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이제 책가방 들어주는 건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굣길에 그 아이가 자기 책가방을 메고 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집에 빨리 가서 엄마한테 말해줘야지!


나는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엄마에게 하루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귀찮을 정도로 쏟아냈다.


엄마는 나를 보며 말없이 웃으며 지켜보셨다.




좋은 일 뒤엔 항상 나쁜 일이 따라오고, 나쁜 일 뒤에는 필연적으로 좋은 일이 생긴다.


인생사 새옹지마! 내가 꽤나 좋아하는 말이다.


궂은일이 있다고 좌절하지 말고, 기쁜 일이 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내가 긍정적 현실주의자가 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묵묵히 나를 지지해준 엄마는 늘 내가 좌절하지 않도록 큰 닻이 되어주셨다.


To. 엄마

엄마! 하도 오래된 일이라 생각도 안 나시겠죠?

하지만 엄마는 내게 그날 완벽한 히어로였어요!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해주셔서 그제야 알았어요.

우리 엄마! 진짜 내 엄마가 맞다는 걸요.

고맙습니다! 그때 내 편 되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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