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께 배우는 총각무김치 담는 방법
나는 총각무김치를 좋아한다.
다른 김치들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특히 나는 이 총각무가 좋다.
가을무가 달고 맛있지만,
요 작은 총각무는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이 들면 마성의 맛에 계속 찾을 수밖에 없다.
라면을 먹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잘 삭힌 총각무김치 서너 쪽이면,
그날 밥 한 끼는 뚝딱일 정도이니
나는 늘 엄마에게 총각무김치를 해달라고 보챈다.
그래서 늘 이맘때에는 총각무를
시장에서 사 온 뒤 해달라고 생떼를 쓴 적이 많았다.
참 귀찮게 입맛이 까다로운 아들이다.
그래서 엄마는 늘
"알타리 담가놨으니 가져가라"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먹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김치 국물만 남아 입맛을 다시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배워보기로 했다.
내게는 여러 명의 엄마가 있지만,
특히, 내가 결혼을 하면서 만난 어머니는
늘 나를 살뜰히 챙기고 아껴주신다.
사위라는 게 사실 귀하게 키워놓은 딸을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시커먼 도둑놈이 데려갔으니
새로 얻은 아들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마련이다.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고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편한
진정한 가족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말이다.
어머니와 나는 결혼하면서
둘이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둘이서 드라이브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다 보니
이제 어머니도 나를 사위 중에는
제일 편하게 생각하시는 듯하다.
나 : "어머니~, 총각무 담그는 것좀 알려주세요."
어머니 : "이거 배워가 뭐할라고?"
"그냥 내가 담아줄게"
나 : "그래도 맨날 해주시면 힘드시잖아요!"
어머니 : "뭐.. 그러면 한번 배워보든가 ^^"
나 : 오늘 비법 방출하시는 거네요"
어머니 : "비법이랄 게 있는가.. 그냥 대충 하는 거지..."
어머님은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 맛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다.
얼마의 양으로 양념을 만드는지 알 수 없어
늘 궁금했는데 주말을 틈타 오늘은 작정하고,
어머님을 괴롭히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총각무김치니까 총각무를 2단 샀다.
알타리가 너무 크면 맛이 없는데
시장에 나온 거는 큰 거밖에 없어
크기를 고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을무는 웬만하면
맛이 좋으니 믿고 사보았다.
손질은 무와 무청 부분을
먼저 다듬는 일이 우선이었다.
감자칼로 깎을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무청이 있는 부분만 깔끔히 도려내신다.
나 : "어머니~, 무는 감자칼로 안 깎아요?"
어머니 : "그래~, 무는 겉에는 흙만 떼고 깨끗이 씻으면 돼"
나 : "아~~~ 그렇구나!!"
어머니 : "무청은 억세니까 아까워말고 버려"
나 : "아깝지 않으세요?"
어머니 : "음식에 맛이 없는 게 섞이면 다른 게 더 맛이 안나"
그렇다... 참으로 맞는 말씀이다.
먹어도 맛있지 않은 부위를 쓰려다
다른 맛도 해칠 수 있으니
아깝지만 과감히 버린다.
역시 달인의 명인김치는 이런 게 차이였군.. 싶었다.
어머님의 맛 비결 첫 번째는 바로
"맛을 위해 과감히 재료를 손질한다는 것"이었다.
나 : "무는 제가 씻을게요."
어머니 : "아... 그럴래? 그럼 나는 다음 거 준비하고..."
나 : "네~ 후딱 씻을게요!"
그다음은 찹쌀가루를 물에 풀고
찹쌀풀을 쒀야 하는데 며칠 전
찹쌀풀을 해둔 게 있어서 냉동실에 넣어둔 게
있다고 하셔서 얼어버린 찹쌀풀에 새우젓을
두 국자 정도 뜨시고는 믹서기에 갈기로 했다.
그리고 말씀도 없이 간 마늘과 정체모를 가루가
조금 더 들어갔다.
나 : "어머니 근데 이거 갈색 가루는 뭔가요?
어머니 : "이거.. 이거 비법 가루!"
나 : "조미료 아니에요?"
어머니 : "이거 조금 넣어야 맛이 나"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 이거 다** 아닙니까?"
어머니 : "맞아.. 이거 멸치다**
조금 넣어야 맛이 좋아."
나 : "어머니 비법 오늘 다 방출하셨네요. ㅎㅎㅎ"
그렇다. 어머니의 비법은 "조미료"였다.
감칠맛을 위해서는 글루탐산이 필요하고,
구미를 당기는 그윽한 맛의 정체는 바로
소량의 멸치다**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비법이라며 한 줌 보여주시는데
어머니 : "이게 뭐게?"
나 : "미원인가요?"
어머니 : "아니.. 이거는 꼭 들어가야 해!"
나 : "와... 궁금하네요. 이게 뭐지?"
어머니 : "이거는 뉴슈가..."
나 : "이거 사카린이네요."
사카린나트륨이라고 부르는 뉴슈가는
극소량으로도 극강의 단맛을 부르기에
설탕을 쓰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마지막 비법은 "뉴슈가"를 꼭 써야 한다.
당뇨가 있으시기 때문에
설탕을 많이 쓸 수는 없고
단 맛은 포기할 수 없기에
극소량으로도 맛을 낼 수 있어
선택을 하신 것 같다.
여기에 매운 고춧가루와 보통 고춧가루를
4:6 정도 비율로 넣고,
주먹만 한 양파를 하나 갈아서
양념에 섞으면 양념은 끝~!!!
이제 손질해 둔 총각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나 : "이거도 제가 잘라도 돼요?"
어머니 : "자네 할 수 있겠는가?"
나 : "아이 그럼요~,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죠!"
어머니 : "그러면 한번 해봐 봐! 곧 잘하네!"
굵은소금을 무심하게 툭툭 뿌려 넣고
30분 정도 절여지도록 두었다.
나 : "어머니, 근데 이거는 얼마나 절여야 해요?"
어머니 : "(절여진 총각무 양쪽 끝을 잡고 흔드시며) 이거.. 흐물흐물~~"
나 : "어머니, ㅋㅋㅋ 너무 웃겨요 ㅋㅋㅋ"
어머니 : "(다시 무를 흔들며) 흐물흐물~~~ 허허허 허~~~"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귀여우시다.
아이같이 해맑은 웃음을 보이시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한 끼를 위해
저 손이 닳도록 음식을 만드셨을 것이다.
나 : "어머니, 근데 양념 간은 안 보세요?
어머니 : "나? 나는 간 안 봐..."
나 : "음식이 짜면 어떻게 하려고요?"
어머니 : "대충 이 정도 하면 맞아."
나 : "그럼 제가 간을 좀 볼까요?"
어머니 : "그럼 한 번 먹어봐. 간이 맞는가.."
나 : "(간을 보니)와... 어머니 그냥 맛이 좋네요! 어쩜 이리 딱 맞추신데요?"
어머니 : "뭐... 맨날 하는 건데 대충 하면 맞지 ㅎㅎㅎ"
나 : "어머니 진짜 금손!!"
나 : "여보~! 이제 와서 마지막 거들어봐!"
아내 : "왜! 꼭 내 손이 필요해?"
나 : "어머니, 시집보내기 전에도 귀한 딸이라고 안 시키셨죠?
어머니 : "그럼 아무것도 안 시켰지! 아버지도 뭐라 안 하고 나도 뭐라 안 했지!"
나 : "와... 당신 진짜 금지옥엽이네~"
아내 : "몰랐어? 나 엄청 귀하게 자랐어!"
처갓집이라 똥개도 자기 집에선 위풍당당인데
나는 상황 파악을 못했다.
사위는 결국 백년손님 ㅎㅎㅎ
새 아들이 아니었다.
어머니 : "(김치 버무리는 아내에게) 슬슬 묻혀봐 양념이 골고루 묻히게~"
아내 : "이렇게 슬슬 슬???"
어머니 : "그래 잘하네~"
그렇게 즐겁게 총각무 김치가 담가졌다.
결국은 내 입에 들어올 김치.
참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