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믿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평소처럼 유쾌하게 풀어내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꺼내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보고자 합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예전의 그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를 지키려던 내가 먼저 무너지고 있다” 는
저는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재혼도 했습니다.
아이 셋 중 하나는,
지금 가장 예민한 시기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자립과 자유를 꿈꾸며,
자기 확신은 넘치지만 아직 미완성인 시기.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의 연속, 감정노동, 회피, 무시, 시댁식구와 갈등, 그리고 바람.
그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는 명확했습니다.
“이대로는 아이까지 무너질 수 있다.”
아이에게 ‘안전한 환경’ 이란
부모가 반드시 한집에 살아야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온전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아이들은 압니다.
집이 두 개인 것도,
부모가 서로 다른 스타일이라는 것도.
이제는 감정의 레이더를
꽤 정확하게 읽어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도 전략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혼나면 도망치고,
도망치면 다른 부모에게 기대고,
두 사람의 틈을 자신을 위한 방어막으로 쓰게 됩니다.
그러니 더욱더 ‘믿음’과 ’ 기준‘ 은 혼동되어선
안 됩니다.
감정은 받아주되,
경계는 명확해야 합니다.
가둔다고 지켜지지 않습니다.
지켜본다고 막아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라인)을 긋고,
그 선 밖은 자율,
그 선 안은 믿음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 안에 담긴 감정은 진실입니다.
저는 그 감정을 믿습니다.
해결해 줄 순 없어도,
믿어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거 하나면 아이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단, 선을 넘지 않았을 때에만.
부모가 되면 ‘통제’보다 ’ 믿음‘이
더 오래간다는 걸 배웁니다.
그리고 믿음은 감시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진다는 것도요.
아이의 성장통은,
엄마의 갱년기와 맞부딪치며
매일 부딪히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저는 매일 결심합니다.
내가 어릴 적 부모에게 바랬던 그 이상이 되어주자.
그게 내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흔적이니깐요,
이상,
사춘기 소녀를 대하는 갱년기 엄마의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이 글이,
지금 어딘가에서 사춘기 아이와 눈물 섞인 하루를
견디고 있을 또 다른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숨 쉴 틈이 되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