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먼저 도착하는 부모의 밤
큰딸과 작은딸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쭉 함께한 아시안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엔 지금까지도 이름이 기억나는 친구가 딱 한 명 있다.
시드니 시티에서 국립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건
꽤 독특한 일이다.
대부분은 사립으로 보내니까.
그래서 그런지 전학도 잦고, 친구들도 자주 바뀐다.
처음엔 어색하던 아이들도 어느샌가 짐을 싸고,
인사도 없이 떠난다.
그 와중에 살아남는(?) 친구는 진짜 친구랄까.
우리 큰딸 아현이도 워낙 소극적인 아이라
친구가 많진 않았지만,
그중에 유독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간
한국 친구 한 명이 있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신다고 들었고,
아이는 어디서든 중심에 서는 타입.
한 번은 내가 시티에 볼일이 있어서
아현이 학교 근처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와 처음 마주쳤다.
그리고… 첫마디에 충격.
“아줌마, 아현이는 집이 왜 두 개예요?”
응?? 왓???
마음속으로는 “지금 뭐라고 했니…?” 외쳤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게,
“응, 두 개야. 알고 있었잖아?”
알면서 물어본다는
그 능청스러움에 제대로 한 방 맞았다.
차라리 “왜 헤어졌어요?”라고 물어보지 그러니?.
그 아이는 그렇게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시간이 흘러 고학년이 되었을 땐,
세상 당당하고 튀는 걸 즐기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마침 아현이 아파트 같은 건물로
이사를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 조금 복잡해지겠구나…”
하는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둘이 친하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 밤, 아현이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아현이가 밤새 안 좋았어.
자는 줄 알았는데 새벽에 들어왔고,
그 친구랑 어딘가 다녀온 것 같아.
근데 나한테는 화를 내며 대들더라고.”
이런 문자가 날아오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평소엔 쿨하고 판단력 좋은 아현이인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일단 아현이에게 조심스레 연락해 봤다.
“아현아, 괜찮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괜찮아. 그 친구랑은 이제 안 볼 거야.”
“왜 나갔던 거야?”
“그 친구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는데
무섭다고 같이 가달라고 해서…
근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 그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그저 아이의 안전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삼촌 번호라도 줄까?” 하게 됐다.
다음엔 제발 연락만이라도 하라고.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늘 누군가를 붙잡는 아이였다.
“몇 분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애원했고,
아현이는 그걸 뿌리치지 못하고 휘말리는 일이 많았다.
결국,
우리 집에도 영향이 오기 시작했다.
약속을 자주 어기고, 연락도 끊기고,
기다리다 폭발한 나는
그 화를 둘째한테 돌렸다.
괜한 잔소리를 해댔다.
어느 날, 더는 못 참겠어서 룰을 정했다.
“주말엔 이제 친구 못 만나. 우리 집 근처도 금지야.”
전철 타고 오는 길도 멀고,
어디서 뭘 하는지 확인도 안 되고,
심지어 그 남자친구란 애는 나이도 불분명하다더라…
이건 좀 아니지 않겠냐고.
그리고 마침내, 아현이 입에서 들려온 말.
“이제 걔랑은 진짜 안 만날 거야.”
그 말에 내가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른다.
근데 또… 이게 끝은 아니었다.
하아…
이쯤 되면 알지.
청소년기라는 건 매일매일 서프라이즈 쇼!
판도라의 상자 같은 시기라는 걸.
시드니는 밤 9시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골목,
누가 뭐 하는지 알 수 없는 구석으로 모여든다.
부모 마음은 그게 제일 무섭다.
나는 결국 이렇게 부탁했다.
“엄마가 바라는 거 딱 하나야.
나라에서 정한 그 룰만 지켜줘.
그 나이에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고,
제발, 제~발, 연락만 잘되자!.”
내 말이 얼마나 효과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오늘도 나는 다시 다짐한다.
“제발 제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 다오!!! “
시드니가 포함된 뉴사우스웨일스(NSW)에서
매일 약 28명이 실종 신고되고,
그중 절반 가까이가 10대 청소년이라고 한다.
대부분 무사히 돌아오지만,
부모 마음은 그 ‘하루’도 평생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