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 육아, 단어를 찾아서
“엄마 듣기 평가에서 떨어졌습니다”
아현이와 주아는 한국말을 거의 못 한다.
듣는 것도 막내가 겨우 알아듣는 수준 정도?
아이들 아빠가 중국인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영어가 더 편한 아이들이다.
예전엔 그래도 나름 한국말도 곧잘 하던 아이들인데,
아이들 아빠와 이혼하고 난 후,
한국어는 자연스레 퇴출됐다.
나는 그게 꽤 아쉽다.
그래도 어쩌겠나.
셋이서 한집에 살려면 결국 공통 언어가 우선이니까.
그렇게 몇 년을 지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눌수록,
느껴진다.
언어의 벽이…
하루가 다르게…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사실 우리 집은 ‘재혼가정’이다.
나는 주말이나 방학 때 아현, 주아와 함께 살고
평소에는 남편, 그리고 막내 이렇게 셋이서 산다.
남편은 한국인이고,
우리의 대화는 100% 한국어.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일까지 그만두면서
영어를 쓸 일이 오로지…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뿐이라는 것!
그렇게 내 영어는,
입도 굳고 머리도 굳고…
급기야 한국어까지 버벅거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남편과 대화하다가
“아… 그거 뭐였더라… 그 단어 있잖아… 그… 그거…”
이게 내 입버릇이 됐다.
영어로는 떠오르는데, 한국어는 안 떠오르고.
아이들 앞에서는 한국어는 떠오르는데,
영어가 안 떠오르고.
결론은?
엄마는 늘 단어를 ‘깜빡깜빡’ 한다.
치매 1단계…?
아니 그냥 ‘이민 1단계’라고 해두자.
이쯤 되면 아이들과의 대화는
거의 ‘스무고개 게임’이다.
“아니 그거 있잖아. 그… 회색 말고, 약간 은은한 색? 작년에 입었던 거랑 비슷한데…”
(아이들: 엉??… 아!!!… 뭐라고??…)
눈치를 살피며 문제를 풀어가는,
실전형 듣기 평가가 시작된다.
물론… 집중력은 짧다.
피곤하단다.
엄마 듣기 평가는 정규 시험에도 없는데
왜 맨날 나오냐고.
그래서 벌어지는 대참사.
이벤트 있는 날엔,
요일 착각, 시간 착각
혼란 그 자체.
분명히 ‘회색’ 사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애들은 “엄마가 베이지 사라며?” 하고.
“아니야. 회색이었어!”
“엄마가 그렇게 말했잖아~”
“너희가 안 들은 거잖아!!”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그냥, 우리가 다 틀렸다.
그래서 생각해 낸 묘수!
이젠 문자로 보내준다.
이벤트 안내 공지문 발송!
하지만?
아이들은 자. 세. 히 읽지 않는다.
다시 리스닝 평가로 컴백.
하…
이쯤 되면
“이것들아… 엄마가 너희랑 대화 좀 하자…”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내 언어 능력도 감퇴하고,
아이들과의 소통도 자꾸 엇나가고,
결국 나는 결심했다.
기름칠을 하자.
이건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라,
내가 녹슬어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드 시작!
딸과 함께 보기로!
하지만…
딸이 고른 드라마는 내 취향 아님.
광속 탈락.
다시 방법을 강구 중이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풀타임으로 가게 되는 날이 오면,
나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공부를 계획 중이다.
엄마라는 직업을 포기할 순 없지만,
복수 직업 선택 가능한 직업군으로!
이번엔 Pathology다!
그러기 위해선… 단어부터 다시.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는 이 길,
조금 느리지만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오늘도 ‘엉?’, ‘아!’를 외치는 아이들,
그리고 머릿속에 과부하 걸린 엄마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집의 좌충우돌 이중언어 이야기!
완벽히 해결은 안 되었지만 원만한 타협선을
찾는 중!
세상의 모든 엄마들, 우리… 정말 잘하고 있어요.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