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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07. 2023

무협, 액션이면서 무용인 장르

고장극(古裝劇)이란, 글자 뜻 그대로 ‘고전 복장을 입은 시대극’을 일컫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극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시대극이라고도 부르며 바이두백과百度百科에 따르면 고장극은 장르별로 크게 무협극, 사극, 신화극, 판타지, 궁중암투극, 타임슬립물, 궁중극, 전기 장르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디테일한 분류는 분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라 나는 단순하게 이들을 중국 특유의 장르인 무협물, 중국 전통 판타지인 선협물, 근현대 이전의 중국인의 삶을 다룬 시대물로 나누어 생각한다.


그 첫 번째로 무협물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니, 전국에 있는 수많은 무협 매니아들의 눈초리가 느껴져 멈칫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책 덕후이자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무협물 이야기를 하니 다들 신기해 하면서도 흥미롭게 받아주어 고수처럼 떠들 수 있었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꺼내자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내 한참 윗대에서부터도 무협 소설은 인기가 많았고, 다른 책은 안 읽어도 무협 소설은 찾아서 읽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고수의 칼날에 난도질을 당할까 두렵다. 무협의 대가들이여, 부디 이 글이 무협물을 좋아하는 것 뿐인 한 동료의 사담으로 듣고 너그럽게 웃어 넘겨주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김용의 소설들은 정식 번역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책으로 나와 팔렸고, 지금까지도 무협 소설의 선두주자로 뽑힌다. 그의 비교적 짧은 소설인 [설산비호]는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고 하니, 중국에서 김용이나 무협 장르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단편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다. 나는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나 소설보다는 이 글의 초반에 밝혔듯이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본 비디오테이프로 무협물을 보는 것으로 무협물을 시작하였으니 원작 소설에 대해서는 까막눈에 다름 없다. 몇 년 전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소설에 입문한 터라 현재 읽은 김용의 소설이 [천룡팔부], [설산비호] 뿐이다. <의천도룡기>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소설을 읽을 생각을 못 했다니, 그렇게 책을 좋아하면서도 이 재밌다는 책을 아직도 읽지 못한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긴 하다.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무협을 장르 중에서도 B급 장르로 여기는 문화와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무협소설이 메이저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동향을 보이고, 젊은 층에서 중국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무협 소설에 대한 위상도 조금 올라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통 무협물 보다는 로맨스 무협이나 선협물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유행에 거부반응이 무조건반사로 장착된 나는 인간의 신체 능력을 십분 이용한 정통 무협에 더 끌린다. 그래서 '정통 무협'이라는 수식이 붙으면 찾아 보게 된다. 로맨스 무협물이나 선협물의 경우 영상미나 CG의 완성도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지만, 정통 무협물의 경우는 배우의 액션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무협물을 보면 인간의 몸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곤 한다. 정녕 나랑 같은 호모사피엔스의 몸이 맞는가? 현대 액션 연기와 달리 무용처럼 느껴진다. <와호장룡>을 떠올려보라. 그래서 액션이면서 동시에 무용을 잘 펼치는 배우들을 보면 역할의 경중을 벗어나 절세 미남, 절세 미녀로 보인다. 특히 <풍기낙양>에서처럼 춤을 전공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무협씬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연 같다. 앞서 말한 쉬정시(서정계)를 위한 드라마 <구주천공성2>에서 유일하게 여주인공이 눈을 사로잡은 장면 역시 몸이 활처럼 휘어지고 다리가 주욱 늘어나는 대련 장면이다. 그 순간만큼은 쉬정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풍여철이라는 인물만 보였다.


 볼거리는 많지만 주제는 매우 단순한 게 무협물이다. 복수와 당파 싸움이 전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아침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 출생의 비밀인 것과 비슷하다. “내 부모님의 원수!”라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장면은 너무나 익숙해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 그대로 외나무 다리에서 두 사람이 대치하는 장면을 본 적도 적지 않다.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면 당파 간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이는 무림문파끼리의 다툼일 수도 있고, 정파와 사파의 대립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개인 간이건, 파 간이건, 선악의 다툼이건  복수가 기본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무공을 익혀 복수에 성공하는데, 이때 이룬 무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무협물에는 하늘을 걷는 사람(경공법), 칼을 타고 나는 사람(어검술), 악기가 무기가 되는 사람(천룡음) 등 현실 속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선협물이 되면 어벤저스도 저리가라이다. 이런  과도한 능력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다만(판타지로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나는 무협에서의 능력을 판타지로 여기지 않는다. 신체 능력이라고 믿는다),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끔 만들어 인기를 끄는 게 무협물의 능력이다. 그리고 한 번 빠지면 손모가지를 자르는 심정은 되어야 빠져나올 수 있는 게 무협물의 마력이다.  아무래도 머리보단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 때문인 듯 하다. 주인공의 마음을 느끼고 주인공이 곧 나이겠거니 여기며 ‘복수’나 ‘정의’를 위해 적을 무찌르면 된다. 물론 사이사이에 사랑도 하니 말랑말랑한 마음도 준비해둬야 한다. 인생의 무상함과 선과 악의 의미 역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낀다. 그래서 내용이 거기서 거기이고 사연만 조금씩 다를 뿐이라는 받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장르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니 사연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 원작이 인정을 받아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흔한 패턴이다. 원작이 좋으면 시대별로 작품을 몇 번이고 리메이크 한다는 점도 무협물의 큰 특징이다. <의천도룡기>만 해도 9번이나 리메이크 되었다. 정통 무협물의 대표적인 작가가 김용, 고룡, 양우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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