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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08. 2023

김용 무협물만 봐도 평생 볼 수 있지 않을까?

무협물 중에는 단연 김용의 사조삼부곡이 가장 유명하다. 이야기의 순서대로 한다면 <사조영웅전>, <신조협려>가 1대와 2대의 이야기라 이어지고, 한참 뒤 후손들의 이야기가 <의천도룡기>이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는 송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며, <의천도룡기>는 원나라 말기로 이어진다. <의천도룡기>가 아무래도 시간 거리가 멀다 보니 시리즈가 아닌 것도 같지만 보다보면 가끔 연결 고리가 나온다. 하지만 연결관계를 모르고 봐도 재밌게 볼 수 있다. 나도 시리즈라는 걸 모르고  <의천도룡기>를 봤고 어쩌다 <신조협려>를 본 후 사조삼부곡의 존재를 알게 되어 마지막으로 <사조영웅전>을 보았으니 시간을 거꾸로 간 셈이다. 모르고 봐도 재밌고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게 사조삼부곡이다.


인기 시리즈이기 때문에 시대별로 많은 버전이 있는데 내가 순서없이 보다보니 <사조영웅전>은 2017년에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완성도가 높은 버전으로 만난 덕에 보는 내내 정통무협의 매력에 빠져들며 봤는데, 특히 곽정의 어수룩한 면과 황용의 똘똘한 면이 잘 표현된 점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왕가위 영화의 <동사서독>의 동사와 서독의 관계가 모두 <사조영웅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정통무협물은 각 문파마다 각기 다른 무공을 겨루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CG에 영향을 받기보단 배우들의 무공 연기에 완성도가 좌우되는데 2017년 버전의 <사조영웅전>은 무협 씬도 완성도가 높아 첫 사조영웅전이 2017년 판이었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배우의 유명세로는 2008년 판이 기대 되는데 대중들의 평가는 썩 좋지 않아 망설여진다. 그래도 배우들이 지닌 매력이 있으니 다음에 사조영웅전이 보고 싶을 때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신조협려>는 다른 두 작품보다 멜로적인 요소가 강하다. 유역비가 소용녀를 맡아 큰 인기를 얻었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소용녀가 그보다 더 아름답기는 어렵다. 2006년 작품인데도 유역비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절대적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오히려 2014년 작품이 더 촌스러운 느낌이다. 2006년판을 뛰어넘을 작품을 많은 무협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비교적 빨리 <신조협려2019> 소식이 있었다. 2019년부터 소식만 전해지다가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아직 시청하지는 못했다. 직접 경험하고 싶어 다른 이들의 평도 읽지 않고 있다. 다음에 볼 땐 2019년 작품과 1995년판 <신조협려>를 같이 보고 싶다. 1994년의 <사조영웅전>과 출연진들이 연결된다고 하니 두 작품을 연달아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건 만사가 그렇다.


<의천도룡기>는 내가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 1986년판이 매우 잘 만들어졌다. 사심이 작용한 것도 있지만 역대 장무기 중에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연기한 장무기의 존재감이 가장 크다는(내가 보기엔 사자같이 생긴 사손의 존재감도 1986년판이 독보적이지만)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기회가 된다면 쭉 훑어보고 싶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평가가 좋다. 2019년 판 <의천도룡기>의 진정한 승자는 양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2019년에는 장무기의 존재감은 많이 부족하다. 시대가 바뀌어 의도적으로 우유부단한 장무기의 태도를 수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캐릭터가 단순하게 느껴졌다. 같은 마음을 표현해도 조연이 지고지순한 것과, 주연이 지고지순한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쩡슌시(증순희)의 건강한 매력을 나 역시 좋아하지만, 아무튼 2019년의 <의천도룡기>는 양소의 완승이다!


다만 <의천도룡기 2019>에서 여자 주인공들 쪽으로 치우친 듯한 무게 중심은 좋게 느꼈다. 기존 무협물에서는 <육지금마>나 <백발마녀전>에서처럼 초고수가 아니고선 여성은 사건의 방해자이거나 밀고자 혹은 유혹자로서 존재했는데 <의천도룡기 2019>에서는 원래도 당돌한 캐릭터였던 조민은 물론 주지약과 은소소, 기효부, 소소도 매력있어 양소를 제외하고는 여성 캐릭터가 만든 잔상이 더 깊다. 1986년 버전을 볼 땐 조민이 너무 당돌하고 제멋대로라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당당하고 똘똘해 보여 맘에 들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그래서 분명 세상이 만들어놓은 생각대로 느꼈을 텐데 그때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 걸까? 조민 같은 여성이 무협물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행히 요즘엔 우리나라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여성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무협은 아니지만 <맹비가도>에서 맹비는 황제의 사랑을 받고 암투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황제와 무관한 궁생활을 도모한다. <췌서>의 소단아는 가업을 이어 성공하고픈 마음이 다른 어떤 일보다 소중하고 <몽화록>의 조반아는 남자의 배신에 아파하기 보단 자신이 잘 하는 일로 인정받기 위해 어떤 시련도 이겨낸다. <언어부>의 추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아직 무협에서는 그런 역할이 많지 않아 <월상중화>의 중설지는 분명 주연인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남성들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 해결하게 된다. <차시천하>의 백풍석과 흑풍식은 환상의 콤비이며 백풍석의 캐릭터가 기존 여협 보다는 독립적이고 능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그림은 흑풍식이 다 그린다. 그래도 <차시천하>에서 어떤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사조삼부작 외에도 김용의 무협물은 <서검은구록>, <벽헐검>, <설산비호>, <녹정기>, <소오강호>, <천룡팔부> 등 많은 드라마가 몇 번씩 제작되었다. 중국사를 드라마로 공부하면서도 왜 우리는 역사를 왕의 역사로만 이해할까 줄곧 의문이 들었는데 무협 드라마는 <서검은구록>과 <녹정기>와 같은 특별한 경우만 빼면 황궁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백성들과 강호인들이 많이 나와서 당시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김용의 작품은 실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아 공부를 할 때에도 흥미를 돋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소설 [천룡팔부] 세트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는데 그러다 보니 여덟 살 난 작은 아들 눈높이에 맞아 매일 보게 된 모양이다. 그렇게 한 1년을 보더니 어느 날 나를 꾸짖는다. “이효민씨, [천룡팔부]는 언제 읽을 건가요? 읽지도 않을 책을 왜 샀죠?” 아들 덕분에 소설도 완독하고 드라마도 2021년 판과 2003년 판을 볼 수 있었다. [설산비호]의 경우 소설이 1권으로 나와 좀더 손쉽게 2007년 <설산비호>와 2022년의 <비호외전>을 보기도 했다. 아직 국내엔 소설 [비호외전]이 번역되지 않아 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다시, 중국어를 공부해야 하나?

김용이 세상을 떠난지 5년이 지났고, 그가 [녹정기] 이후에는 무협 소설을 쓰지 않았으니 지금 우리가 보는 김용의 무협물은 오래 전의 소설을 원작으로 리메이크 되는 작품들이다.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리메이크가 될 김용의 무협물을 어찌 고전이라 부르지 못하겠는가. 식탁 위에 [의천도룡기]를 사서 놓아야 할까 보다. 나중에 아들이 자라 아들의 식탁 위에 내가 [천룡팔부]든 [의천도룡기]든 올려두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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