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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09. 2023

김용의 열정, 고룡의 냉정

김용이 워낙 무협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고 실제로 많은 작품을 써서 유명 무협물은 의례 김용이겠거니 생각했다가 알고 보면 고룡인 경우도 적지 않다. 더구나 나는 무협을 소설로 입문하지 않은 터라 김용과 고룡과 양우생의 스타일을 알지 못한 채 닥치는 대로 봤기에 ‘도대체 뭐가 다르지?’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세밀한 비교는 당연히 못 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고룡의 무협물은 신사적인 면이 있다. 김용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이런저런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반복된다면(역경1-해소-역경2-해소-역경3...) 고룡 원작의 주인공들은 크게 힘들지 않다(상황1-멋지게 등장 후 해결- 상황2 –멋지게 등장 후 해결- 상황3...).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김용 무협은 주인공의 성장 과정이 주요 내용인데 고룡 무협 주인공들은 이미 무공ㅈ이 경지에 이른 경우가 많다.


고룡의 소설 [다정검객무정검]은 내가 읽은 최초의 무협 소설인데, 그간 무협물을 드라마로만 보다가 이 작품을 읽고는 무협 소설에 대한 편견을 벗어 던졌다. 5권이나 반복되는 소이비도 이심환(이탐화)의 멋짐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협인데 하드보일드한 문체라고 해야 할까? 아침드라마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게 한달까? 내용의 긴박함과 달리 문체는 건조한 것이 묘하게 매력적이라 다섯 권을 후딱 읽어냈다. 얼마나 재밌었던지 소설을 끝내자마자 안달하듯 즉시 드라마 <다정검객무정검>을 찾아봤는데 흑백 영화만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무자막으로 시청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소설을 본 직후라 기억력에 의존해 겨우겨우 볼 수 있었다. 봤다는 데에만 의미를 뒀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김용 무협은 열 번씩 리메이크 되는데 <다정검객무정검>은 어째서 소개되지 않는 거죠? 부디 내가 아직 모르는 것뿐이길, 전국의 무협물 고수들이여 제보 바랍니다! 다행히 소이비도가 등장하는 근작인 <표향검우>를 발견했다. 이 역시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지만 번역은 안 되었다. 김용의 작품과 달리 고룡의 정식 번역본은 [다정검객무정검]이 유일하다. 그러니 고룡을 만나려면 소설은 어렵고 ‘소이비도를 찾아서’ 시청자가 드라마 순례를 떠나야 한다.


소이비도 이심환이 맘에 드는 것은 그가 지닌 완벽한 무공 때문이 아니라 친구에 대한 의리, 경쟁자에 대한 존중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불편한 점도 많았다. 그를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상대적으로 여성 폄하의 묘사가 적지 않다. 과거 무협물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기에 일어난 문제겠지만 많이 거슬리고 짜증이 났다. 그런 장르일수록 여성에 대한 묘사를 바르게 해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어 우리는 서로를 점점 더 혐오하게 되나 보다. 다행히 근래에 만들어진 드라마 <표향검우>를 보니 여주인공들이 남성 인물들과 대등하게 현명하고 용감하다. 앞으로 만들어지는 다른 드라마들도 시대를 반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소이비도 시리즈로는 <다정검객무정검(소이비도)>, <변성랑자>, <구월응비>, <천애명월도>, <비도우견비도>가 있다.  [다정검객무정검]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소이비도에 관심을 가졌기에 위 작품들 중 제대로 본 것은 거의 없다. <변성랑자>가 <소이비도> 다음 이야기라고 하며, 이심환이 죽은 후에 그의 소이비도를 이어받는 이야기가 <비도우견비도>이다. 그리고 이심환 노년에 만난 이풍의 이야기인 <표향검우>로 ‘소이비도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잠시 표류 중이다. 확실히 김용에 비해 리메이크가 잘 안 된다. 아쉬운대로 <표향검우>에서 이심환도 만나고, 숙적인 상관금홍도 만나고, 당대 고수인 서문취설도 만나며,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육소봉도 거론되므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 마중물로 삼아도 좋을 듯 하다.


소이비도 시리즈가 무협 팬들 사이에서 유명하긴 하지만 김용 작품에 유명세가 밀리는 건 사실이다. 그나마 대등하게 유명한 것을 찾아 보자면 <초류향>과 <절대쌍교>가 있다. <초류향>은 내가 제목을 기억하는 최초의 무협물로, ‘량차오웨이가 곧 장무기’이 듯 ‘정사오추(정소추)가 곧 초류향’(물론 정사오추(정소추)는 당대 무협물의 거의 모든 주인공을 맡았다. 심지어 장무기 역할까지도.)이라는 인식이 있다. 어릴 때 봤기 때문에 내용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지만 하얀 옷을 입고 반 머리를 묶은 단정한 사내가 부채 하나로 점잖게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아 있다. 도둑놈인데 전조처럼 정의롭다니! 그때의 사진첩을 꺼내 보는 심정으로 <신초류향>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크게 실망했다. 이 초류향은 내가 기억하는 그 초류향이 아니었다. 동심은 지키고 싶은 마음에 결국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간신히 되는 리메이크도 완성도가 떨어지다니!


<초류향> 만큼 유명한 작품이 <절대쌍교>인데 나는 이 드라마에 대한 허기가 늘 있었다. 1999년에 임지령과 소유붕 주연으로 나왔고, 2005년에 장위건과 사정봉 주연으로 드라마가 나왔는데 그때 나는 중드 공백기라 두 작품이 기억에 없다. 아마 그전에 영화로만 봤었을 거다. 그러니 작년에 <절대쌍교>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다른 중드들을 보느라 본방사수를 놓쳤고 후에 보려고 하니 넷플릭스를 가입하지 않은 나에게 <절대쌍교>의 벽은 높았다. 넷플릭스를 정녕 가입해야 하는가? 물론이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 돈이든 품이든 들이지 않고 얻는 즐거움은 없다. 또 하나의 여담이지만, 중드 매니아인 엄마 때문에 어쩌다 <절대쌍교>를 함께 정주행한 중2 큰아들은 밤잠도 포기하며 <절대쌍교>를 함께 보았는데 마지막 회를 보고 난 후 선언하듯 말했다. “나 다시는 중드 안 볼 거야! 내 생활이 다 망가져! 중독이 심하다, 엄마가 그래서 계속 보는구나?” 지난 번 작은 아들의 [천룡팔부] 질책에 이어진 큰 아들의 질책에 마음이 따끔하다. 그래도 언젠가 넌 날 이해는 하겠지? ‘소어아~ㄹ 소어아~ㄹ’ 소리가 귓바퀴와 입천장에 아직도 붙어있는 듯 생생하잖아 너도? <절대쌍교>는 김용 무협 주인공들처럼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물론 화무결은 고룡표 주인공답게 완성형 고수이지만.


임봉이 주연한 <육소봉 2015>도 근심 걱정 없이 보기에 좋다. 주인공 가는 길에 방해물이 없다. 설사 방해물이 있다 해도 그건 그저 주인공의 능력을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이 지점이 김용과 고룡 무협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쫄깃쫄깃한 마음은 김용 소설이 더 강하고, 담백한 맛은 고룡 소설이 더 좋은데 다만 <절대쌍교>만 강소어 역할만 김용의 주인공을 닮았다. 아무튼 초류향과 육소봉 모두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인데 초류향은 강호인이고 육소봉은 공무원이다. 무협 수사물이지만 뭐든 다 척척 해결해내는 육소봉이라 긴장감도 없다. 홍반장 같달까? 어차피 다 해결한다.


고룡 원작은 김용의 사조삼부작이 그러하듯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특히 고수들을 알고 있으면 보는 데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상관금홍(<소이비도>), 부홍설(<천애명월도>, <변성랑자>), 연남천과 요월궁주(<절대쌍교>), 소십일랑(<소십일랑>, <신소십일랑>), 서문취설과 육소봉(<육소봉>), 초류향 (<초류향>, <신초류향>), 이심환(<소이비도>, <표향검우>) 등이 고룡 무협 세계의 고수들로 적이면서 경쟁자이다. 페어플레이 무협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그렇다고 김용의 협객들이 더티 플레이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고룡의 협객들은 냉정한 느낌이 강하고 김용의 협객들은 열정이 강하다.


또한 김용의 협객들이 화려한 동작의 무공을 뽐내는 것과 달리 고룡이 협객들은 단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심환의 소이비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심환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고수요, 육소봉, 초류향, 서문취설은 절대 고수라고 한다. 몸을 쓴다는 면에선 김용 작품이 내 스타일에는 더 맞는데 이상하게 고룡 작품도 끌리니 책과 음식 뿐만 아니라 무협도 골고루 섭취하는 게 정답이다. 고룡의 원작은 대체로 시대를 알기 어려워 공부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김용의 소설이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 공부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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