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후로는 <명탐정 코난>에 꽂혔었다. <명탐정 코난>도 꽤나 오래 중독되었던 걸 보면 나는 덕질의 기질을 갖고 태어났나 보다. 어릴 적에 엄마가 말씀하시길 시골서 살아서 이 정도지 서울서 살았으면 맨날 잡으러 다녔을 거란 말에 동의한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이 덕질하는 데에 매우 허용적인 어른이 되었다. 덕질 권장 어른이랄까? 임신을 했을 때는 인터넷 고스톱에 빠져서 손모가지를 자르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을 삭제했던 적도 있었고, <명탐정 코난>을 보며 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 수업에 활용할 구상을 하기도 했고, <아메리칸 아이돌>에 빠져서 클레이 에이킨의 모든 것을 연구하기도 했다. 배구 경기를 관람하러 가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조퇴를 했는데 스포츠 뉴스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온 적도 있다. 다행히 직원들 중 아무도 스포츠 뉴스를 보지 못해 무사히 지나갔다. 대전까지 가서 팬미팅에 참여하고 선수단 버스 앞에서 기다리는 열정을 20대 후반까지 보인 걸 보면 덕질 유전자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래저래 대상을 바꿔가며 덕질을 하다가는 결국 중드로 돌아왔다. 나희덕 시인의 시 ‘푸른 밤’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그래, 나의 이 덕질의 방황은 중드를 향한 것이었어!
남편이 등반 대회에 참가해서 추첨 상품으로 TV를 받아온 날이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결혼할 때 구입했던 뚱뚱한 TV를 없애고 우리 거실에는 한동안 TV가 없었는데 어느 날 부부싸움을 하고 나간 남편이 TV를 짊어지고 왔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등반 대회에서 추첨을 했는데 2등인 자전거를 원했건만 1등인 TV가 되었다고 했다. 보통은 교환권으로 주는데 직접 TV를 전해줘서 갖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코미디 같은 날이었다. 맨날 싸워야 하나보다고도 했고, TV 때문에 TV장도 사고 IPTV도 연결해야 하는 거니 이건 손해 아니냐고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웃었고 이후 하루 종일 TV가 나오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제일 신이 난 것은 우리 엄마였다. 우리가 출근한 사이, 아시아앤에서 나오는 <포청천>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쩜 포청천은 아직도 나오냐?’며 반색하는 엄마 곁에서 ‘그러게 어쩌면 아직도 나오냐?’고 핀잔을 줬지만 가는 눈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앉아서 ‘저걸 봤던가 안 봤던가’ 하면서 같이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TV가 나오니 가족들이 잘 때 나도 한번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려봤고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나 채널은 중화TV, 아시아앤, 채널 칭, 채널 차이나에 멈췄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했던가! 자연스레 중드 유전자가 발동된다. 그런데 틀 때마다 26회, 37회로 중간 부분이 방송 중이라 내 성격상 본방사수는 어려웠다. 처음부터 보던가 아예 보지를 말아야지 이건 용납이 안 된다.(물론 몇 번씩 본 포청천 시리즈같은 경우는 이게 가능하다.) 그래서 월정액을 활용했고,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중드들을 하나둘 보기 시작했다.
<촉산전기>, <모의천하>, <육지금마> 등 그때그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보았다. 그러다 <삼생삼세십리도화>도 보고 <화천골>, <특공화비초교전> 등을 거쳐 지금도 매일 중드 시청중이다. 방송국에 가면 보는 ‘On Air’ 시그널이 내겐 항상 켜져 있다고 할까? 어쩌다 굴러들어온 TV에 ‘중드 키즈’ 유전자는 활성화되었고 그때부턴 생활덕질인으로서 매일 중드를 몇 편씩 본다. <명탐정 코난>도 <배구>도 <예능>도 끊고 미디어라곤 오로지 중드 하나 열심히 챙겨본다. 그러니 얼마나 할 말이 많을 것인가? 동료들에게 신나서 얘기하면 “뭘 그런 걸 보냐?”는 사람도 있지만 입문 후 푹 빠져서 나보다 더 파는 이도 생긴다. 몇몇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난 후 함께 중드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 정기 모임을 하고 싶은데 아직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어 아쉽다. 2년간 동학년으로 근무했던 언니 선생님들과 그나마 중드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덕분에 그 당시엔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 지금도 우리는 일년에 두어 번씩 만나서 수다를 떠는데 그 중에 반드시 '중드 근황'이 들어간다. 이런 인연이 만났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지금이야 중드가 청소년들도 즐겨보는 장르가 되었지만 '나때는' 중드는 아저씨들만 좋아하는 장르였다. 그래서 내가 중드 이야기를 하며 하늘을 날아가는 흉내까지 내면서 신나하면 사람들은 좀 특이한 사람을 보듯 했다. 그런데 사춘기 때에도 그렇듯 그런 내가 나는 좋았다. 남들과 같은 것을 좋아하면 나눌 이야기가 많아서 좋겠지만 나눌 이야기가 너무 많은 건 언제나 후회를 낳는다. 남에게 뒤쳐질 세라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봤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내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드 이야기를 하면 듣는 대체로는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이내 시큰둥한 모드로 전환하기 때문에 말하는 태도가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중드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배웠다. 그리고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으므로 소중한 마음도 들었다. 한 대상을 좋아하는 마음도 사람이 성장하면 달라지는 법이다. 우연히 마련한 TV가 다시 불러온 중드에 대한 감정을 이후로 소중하게 대하며 향유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