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지는 법. 어릴 땐 어설프게 량차오웨이(양조위)나 장쉐여우(장학우)의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것에 그쳤지만 언제까지 가짜 중국어만 할 것인가? 드디어 중국어를 정식으로 배우기로 했다. 십년 전만 해도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망설이다 결국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뭔가 새롭게 하고파지는 일이 드물어 어쩌다 의욕이 하나 생기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지금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미안한 행동이라는 것도 알 나이이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만 가지고 20년 넘게 살았는데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마음을 먹자마자 내게 알맞은 학습루트를 알아봤다. 학원, 문화센터, 인강, 독학 등을 고려하다 비용면이나 시간 활용면에서 구몬 화상학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땐 아르바이트 선생님으로 3개월을 매달 바꿔가며 가르쳐서 의욕이 자꾸 꺾였다. 3개월이 지나자 정식 선생님을 붙여줬는데 아무래도 3개월 내에 그만 두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 관문을 통과하고 만난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다. 그 선생님과 공부하는 시간이 무척 좋았다. 중드 덕분에 발음이 나쁘지 않다고 독려도 많이 해주시고, 숙제도 잘 해온다고 칭찬해주셨다. 코로나 때문에 그분이 일을 그만 두시면서 2년을 넘게 배운 중국어는 고비를 맞았다. 1:1 수업이니 선생님의 역할이 너무 중요했다. 선생님이 바뀌고 나니 도무지 흥미가 예전같지 않아 차라리 독학을 하자 마음 먹고 그만 뒀다. 쉽지 않지만 지금도 간간히 중국어 그림책 독서 모임이나 학습지로 독학을 이어나간다. 최근엔 중드를 가지고 글을 써보는 데에 더 의욕이 생겨 잠시 소홀하다. 중드가 중국어를 배우고 싶게 하고 이렇게 글도 쓰게 하니 중드가 한낱 요깃거리만은 아닌 셈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에 비해 무식한 편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덕질 유전자가 있다보니 한 두가지에는 지식이 몰아져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학창시절에도 암기 과목을 유난히 못해서 고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기록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가 쓴 글도 너무 새로워서 필사인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래서 기록이 점점 세세해진다. 필사에는 반드시 페이지까지 남기고, 나의 의견을 덧붙여 기록할 때에는 말풍선이나 색을 활용한다. 모르는 사람은 가끔 똘똘하다고 칭찬도 하는데 그건 내 기억력을 시험해 보지 않아서 그렇다. 그래서 이동진 평론가처럼 책이든 영화든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해내는 사람을 보면 비인간적으로(신적으로) 느껴진다. 머리에 메모리칩이 나보다 10000개는 많은 사람 같다. 한 권의 책도 이럴진대 5-60편에 달하는 중드는 오죽할까? 한 작품만 반복적으로 보면 모를까 다음 작품을 볼 때 쯤이면 앞에 본 드라마의 내용은 거의 다 잊어버린다고 보면 된다. 엄마가 바로 전날 종영한 드라마의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지경이니 누군가에게 중드를 소개하려고 해도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결국은 “일단 한 번 보시라.”에서 끝나고 만다. 그래서 책도 중드도 재독 재시청을 하는 게 좋은데 세상에 책이 많듯 최근엔 중드도 너무 많이 나와서 쉽지 않다.
그래서 명색이 중드 매니아인데도 나는 ‘중드에 무식한 편’이다. 중드 관련 카페에 가면 중국 사람들인가 싶게 중드에 전문적인 회원들도 많아 그들의 앎 앞에서 나는 벙어리가 된다. 처음엔 말이라도 섞을까 싶어 댓글도 달고 리뷰도 몇 개 달았지만 그 수많은 고수의 판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중국어도 못 하고, 중국 문화도 잘 알지 못하고, 중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알려고 중국어도 공부하고, 중국 문화와 역사도 공부하고, 중드는 꾸준히 즐긴다. 결과적으로는 보잘 것 없지만 이런 나의 경험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중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