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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Jul 30. 2023

다정한 초대장, <삼생삼세십리도화>

성장하는 세계관

환생이 이렇게 쉬운 건가? 하늘 나라의 신들은 몇 번이고 인간 세상에서 고난을 겪고 죽어서 다시 하늘 나라로 돌아오는 게 중드에서는 아무렇지 않다. 무협도 판타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기준에선 그래도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니 고도의 기술자라고 보고, 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부터가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중드의 판타지는 중국 신화에 근거한 경우가 많아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라. 그러한 신화가 중국에도 있고 그 신화를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드에 있다. 분명 우리나라도 다양한 신화가 있다는데 왜 우리는 단군신화만 아는가? 중드 선협물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 궁금해진다. 많은 역사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두 나라이니 분명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칠 듯 한데 말이다. 오랜 시간 신화를 무협과 엮어 만든 선협물은 무협물과 더불어 중드가 가진 가장 강점 영역이다.


<삼생삼세십리도화> 역시 선협물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다시피 세 번의 삶을 사는 이야기이니 주인공인 하늘나라의 태자 야화는 세 번 인간계에 내려가 겁을 겪는다. 야화는 세 번의 삶을 살면서 오직 한 여인을 사랑한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바로 구미호족의 막내딸인 백천이다. 천계의 태자와 구미호족의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 사랑을 지키려고 야화가 애쓰는 동안 백천은 기억을 잃기도 하고 눈이 멀기도 하니 이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 드라마는 야화와 백천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그 사랑을 방해하는 익족 이경과 현녀, 천족의  동화제군과 구미호족 봉구의 사랑이 있으며 천족과 익족의 대립 등 복잡한 관계망이 있다. 다른 중드처럼 이 드라마 역시 등장인물이 무척 많은데, 막상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복잡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구성이 좋은 드라마이다. 또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양미(양멱)의 자태와 연기, 외한내온(外寒內醞)의 캐릭터를 잘 소화한 자오요우팅(조우정)을 비롯하여 동화제군 역할의 가오웨이광(고위광)과 구미호족 소녀 봉구 역의 디리러바 등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 더 빠져들 수 있었다.


이 드라마를 포청천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이 드라마를 통해 중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중드에 컴백한 후 굶주린 듯 여러 드라마를 보았지만 과거를 답습하는 듯해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았다. 뻔한 스토리에 CG도 어색했지만 순전히 중드를 아끼는 마음으로 감수하고 봤는데, <삼생삼세십리도화>는 달랐다. 일단은 너무 아름다웠다. 스토리의 단단함도 중요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시각적 아름다움도 큰 역할을 차지한다. 아름답게 시작해서 아름답게 끝난다. 또한 천계(하늘 나라 신의 세계)이나, 마계(악마의 세계)니, 요계(괴물들의 세계)니 하는 세계관이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58부의 이야기 속에서 세세하게 풀어내어 중국 사람이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이제는 이러한 세계관에 무척 익숙해져 좋아하는 장르가 되었다. 중드는 소설이 기반이 된 경우가 많은데 <삼생삼세십리도화> 역시 마찬가지로 당칠공자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아무래도 소설로 검증이 된 작품이니 내용이 더 탄탄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등장인물도 많고 얽힌 관계도 복잡하니 순서만 지켜서 보기만 하면 드라마가 최선을 다해 시청자를 그 세계에 안내한다. 선계에 몰입이 된 이후에는 다정한 초대를 받은 듯 뿌듯하다. 다 이해해버렸어!


사람도 작품도 친절한 게 좋다. 내가 길을 헤매고 싶은 장르는 오직 시 뿐이다. 고작 드라마 흐름을 찾기 위해 길을 잃고 싶지는 않다. 차분히 길 안내를 받고 나니 전생도 환생도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가 어느새 삼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더 나아가 이후엔 구생(<유리미인살>)도 거뜬히 이해한다. 이후 이런 류의 중드를 자주 봐서 그런가 전생이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굳건했던 세계관마저 흔들리고 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은 그가 가진 경험치와 비례한다. 내가 굳건히 닫고 있던 세계들에 다른 세계들이 들어올 때 예전 같으면 그 문을 더 철저히 단속했겠지만 지금은 그 흔들림이 반갑기도 하다. 나는 중드 한 편으로도 무너질 세계관을 가졌던 걸까 아니면 지금도 나의 세계관은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뜻일까? 그도 아니면 완숙해져서 다른 세계에 손을 내밀 정도가 된 것일까? 그게 무엇이든 꽁꽁 닫고만 살았던 때에 비해 여유로워진 것 같다.    

  

<삼생삼세십리도화>를 보고난 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중드에 ‘진심인 편’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기에 품는 애정이 아니라 화면에서 넘실대는 선계의 신비로움과 인간계를 두고 벌이는 요마계와 천계의 힘겨루기에 빠져버렸다. 요즘 중드는 주인공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며 끝나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며, CG도 감수하며 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만 나이든 것이 아니라 중드도 성장과 성숙을 모두 이루었구나 싶어 괜히 뭉클해진다. 물론 이 정도 수준에 감탄하는 건 내 수준이 너무 낮은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이전의 중드를 안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모든 드라마가 그런 건 아니지만 <삼생삼세십리도화>는 믿어도 좋다. 잘 모르는 세계이지만 내가 마치 그 세계에 가 있는 듯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니 아.묻.따 한 번 꼭 보시길! 만약 평생 단 한 편의 중드를 본다면 이 작품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의 세계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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