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세계 1위도 하고, 그중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작품은 ‘코리안 좀비물’이다. 세상에 좀비라니! 대학 다닐 때 즐겨 부르던 노래 제목이 ‘Zombie’였지만 그건 비유적 표현으로서의 좀비이지 난 귀신 나오는 이야기나 공포물은 돈을 주고 보라고 해도 강력히 거부하는 겁보이다. 아주 오래전에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았대서 좀비 영화를 한 편 본 적이 있는데 감상은 오직 “다시는 좀비 영화를 보지 않겠다!”였다. 그래서 <부산행>이나 <킹덤> 등의 코리안좀비물이 인기를 끌 때에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난 그냥 좀비가 무섭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존재가 사람들을 깨물어 좀비로 만들다니 상상만 해도 닭살이 돋는다. 그런데 왜 ‘차이나 좀비물’인 <진정령>을 봤을까?
중드를 이만큼 봤으면 늘 보던 거 말고 새로운 것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도전 정신일 수도 있다. 아니면 샤오잔이라는 배우의 눈망울에 이끌린 지도. 어떤 이유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보기 전엔 좀비가 등장한다는 사전 정보 때문에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지금은 그 망설임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진정령>이 좋지만.
차이나 좀비는 ‘강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진정령> 속 좀비는 강시 복장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좀비의 형상 그대로이다. <진정령>은 ‘진정’이라는 피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운명을 지닌 주인공 위무선의 ‘악 극복담’이며, 좀비들은 그 극복 과정에서 등장한다. 귀신도 사람도 아닌 존재들이 상대를 좀비로 만든다는 것은 여타의 좀비물과 같지만 그들을 제압할 때 진을 펼친다던가 주문을 왼다거나 정화를 시키는 방식이 도교적이다. 그래서인지 모습은 흉측했지만 진정령 표 좀비들은 좀 귀여운 면이 있다. 총으로 쏘아서 죽이는 서양 좀비들에 비하면 얼마나 점잖게 제거되는지 그렇게 적응을 하다보니 외양도 그전에 본 서양 좀비들 보다 인간적이라 얼마 안 가 두 눈 다 뜨고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좀비에 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하는 정의의 용사 위무선과 남망기의 자태가 ‘안구를 정화’해 주니 좀비가 많이 나올수록 ‘Welcome Zombie’라고 플래카드라도 걸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그중 위무선 역의 샤오잔은 보는 이의 눈을 밝히는 맑음이 있는 배우이다. 흑화된 모습조차도 눈 속에 순수함과 맑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위무선을 오해하다니 내가 다 분하다. 보는 내내 과하게 몰입하며 위무선을 응원했다. 혹시라도 샤오잔을 응원한 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도 헷갈린다만 일단 캐릭터를 응원한 걸로 치자.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인 <마도조사>와 2차 저작물인 웹툰<마도조사>는 BL물로 분류되어 미성년자는 구입할 수도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위무선과 남망기의 관계가 우정에 더 가깝게 그려진다. 사랑이냐고 물으면 우정이라고 하고, 우정이냐고 물으면 사랑이라고 눈빛을 보내는 그런 관계라고 할까? 분명한 건 두 사람의 브로맨스를 보면 연인의 사랑보다 더 설렌다는 점이다. 마음이 있으면서 없는 척 하는 남망기의 연기를 왕이보가 찰떡같이 잘했고, 끊임없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위무선의 연기를 샤오잔이 꿀떡같이 잘했다. 두 사람의 케미는 우리나라 연말 시상식이라면 ‘베스트 커플상’에 올라 마땅하다. 그 둘의 사랑은 진정이었고(제목의 진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청자는 그 둘을 보고 진정(이 역시 마찬가지이다.)할 수 없었다.
이 드라마는 좀비도 나오고, 도사도 나오고, 남남커플도 나와서 다양한 장르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가장 적절한 분류는 ‘휴먼 드라마’이다. 위무선이 보여주는 선한 세계관을 50부작 동안 함께 하다 보면 악인들도 그의 선하고 넓은 마음을 알게 되듯이 시청자 또한 인간의 선함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이 드라마가 많은 사람을 ‘진정령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모습과 행동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위험한지 스스로 돌아보게 하니 이것이 어찌 자극적인 좀비물이고 BL물에 지나지 않을까? 무선을 한결같이 믿고 보호해주는 강염리와 남망기의 마음이 그를 옳은 길로 가도록 했을 것이다. 믿음이 선함을 만나 정의가 되니 너무 환상적이다. 부화뇌동하는 무리들 속에 빛나는 것은 무선과 망기의 브로맨스가 아니라 그런 인간적인 마음 때문이리라. 이런 가치관이 판타지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장면 장면을 떠올리니 혼자 뭉클해진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느끼며 뭉클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휴먼드라마가 확실하다.
두 주인공 외에도 위무선 만큼이나 맑은 강염리, 단순하기 짝이 없는 강징, 연극적인 표정이 일품인 금광요, 귀장군이라는 호가 무색하게 귀여운 캐릭터인 온녕의 캐스팅까지 모든 배우 모든 역할이 좋았다. 잘되는 작품은 어느 한 가지만 좋다고 잘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령>은 오랫동안 사랑받을 작품이고 적어도 십 년 후까지는 촌스럽지 않게 볼 수 있을 작품이다. 원작 소설을 보지 못해 그것과 비교하지는 못하겠지만 웹툰은 재밌게 봤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본 샤오잔과 왕이보의 모습이 웹툰을 보면서도 자꾸만 떠올라 몰입이 되지 않았던 걸 보면 내겐 드라마로 만들어진 <마도조사>가 가장 잘 맞는 듯 하다. 왜냐? 소설엔 샤오잔이 없잖아! 이쯤되면 샤오잔을 응원한 게 아니라는 내 말을 믿기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