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한 드라마들 외에도 재밌게 본 드라마가 한두 편이 아니지만 <포청천>, <삼생삼세십리도화>, <진정령>은 인생 중드로 꼽을 만하다. 요즘에는 중드가 폭발적으로 제공되어 다양한 채널에서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소문난 작품도 제대로 챙겨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짧아진 회차가 그나마 몇 작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해 주는데 어떤 작품을 볼지는 입소문에 기대는 것이 가장 시행착오가 적지만 그 외에도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원작 소설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이 세 작품을 포함하여 많은 중국드라마들은 웹소설을 포함하여 원작 소설이 있다. 과거엔 김용과 고룡의 무협 소설 정도가 해적판으로 돌고 돌았다면 이제는 정식 수입 과정을 거쳐 많은 중국 소설들이 국내 독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은 드라마로 인기를 끈 이후에 번역이 되지만 가끔은 <장안 십이시진>처럼 드라마가 국내 방영되기 전에 소설이 먼저 국내에 출간되는 경우도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잠중록]처럼 중국에서도 방영 전인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 출간되기도 한다. 그만큼 국내에서 중국드라마 못지 않게 중국 소설의 인기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 중국 소설 바람을 다시 일으킨 건, <랑야방> 덕분이다. 그날이 그날 같던 중드 일상 중, <랑야방>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드라마는 가상의 고대 국가를 배경으로 한 궁중암투극인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에서도 이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제작사가 만든 <위장자>라는 드라마에 이어 히트를 쳤다는 걸 보면 만듦새가 좋은 제작사 같아 일단 믿음이 가서 나도 한 번 볼까 하던 참에 도서관에서 소설 [랑야방]을 먼저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소설은 [삼국지]와 [아큐정전] 정도만 읽은 터라 중국 소설의 맛은 깊지만 특별하지는 않다는 입장이었는데 [랑야방]은 그간 내가 읽은 중국 소설의 맛과 달랐다. 낯설지만 흥미진진했다. 오, 이것이 요즘 중국 소설이구나! 그래, 내가 너무 고전 작품만 읽었구나! [랑야방]은 역사 소설이긴 하지만 가상의 시대를 배경을 해서인지 공부하는 뇌가 아니라 재미를 느끼는 뇌가 반응했다. 신분을 숨기는 것을 기본으로 다양한 관계 설정이 현대적이고 탄탄한 글솜씨에 버무려져 독자를 이리저리 내동댕이쳤다. 원래 중국 소설이 이렇게 재밌었나 싶을 정도로 빠져 읽었다. 엄마도 같이 읽었는데 마치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드라마로 나온 건 없냐며 찾으셨다. 그렇게 엄마는 소설 읽고 드라마도 보며 한동안 ‘매장소 앓이’를 하셨다. 몇 년 전에 [산사나무 아래서]를 읽고 ‘쑨첸신 앓이’를 했듯이 말이다. 내가 무언가에 빠지는 건 엄마를 닮은 모양이다. 보고도 기억을 잘 못하는 점도.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 작품을 드라마로는 보고 싶지가 않았다.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도 알고, 주연 배우도 호감이 가서 안 볼 이유가 없었는데 여러 번 시도해봤지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앞서 소개한 <삼생삼세십리도화>나 <진정령> 못지 않게 인생 중드로 꼽는 사람이 많다는 <랑야방>인데도 아직까지 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다. 모두가 좋다고 하고, 모두가 봤다고 해서 꼭 봐야 하는 건 아니니까. 베스트셀러라면 무조건 걸러대는 버릇이 발현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소설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것을 굳이 시도하는 것보다 궁금해진 다른 것을 보는 편이 낫다. 남들에게 나를 맞추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게 후회가 없다. 보고 싶은 때가 온다면, 그때 보기로 하고 소설만으로 [랑야방]을 마무리 지었다.
소설 [랑야방]은 드라마 <랑야방>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드라마와 소설을 모두 섭렵한 작품도 있다. 나의 ‘화꺼 앓이’가 시작된 <화천골>이다. 작품을 본 것은 순전히 <특공황비초교전>에서 반한 자오리잉(조려영)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백도자기 같이 뽀얀 얼굴의 훠젠화(곽건화)에게 빠져있었다. <화천골>은 다소 극단적인 부분들이 있다. 가령 제자의 피를 마셔서 회복되는 스승의 모습처럼 엽기적인데 너무 진지한 장면같은. 다행히 배우들의 열연으로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역으로 그들의 열정을 이상하게 본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서 더더욱 몰입하게 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궁금했다. 이런 장면들이 과연 원작에도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드라마를 보던 중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선계의 이야기는 <삼생삼세십리도화>로 이미 열심히 공부해 둔 터라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또한 [화천골]은 선악 구도가 매우 선명한 이야기라 착한 팀과 나쁜 팀의 멤버를 머릿속에서 나눠가며 읽으니 몰입이 쉽게 되었다. 내용 확인만 하려는 목적으로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의외로 문장력이 뛰어나 감탄하며 읽었다. 소설의 내용이 탄탄해서 드라마도 각색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소설보다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 점(특히 두 사람이었던 묵빙선과 백자화를 동일 인물로 설정한 점)과 소설의 번외편을 잘 녹인 점이 좋았다.
드라마가 50부에, 소설로는 4권 분량이므로 둘중 하나만 보겠다는 사람에겐 드라마를 볼 것을 추천한다. 소설의 강점인 문장력이 드라마에도 잘 녹아 있고 읽는 재미보다는 보는 재미가 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이 조급한 사람은 고구마를 먹는 느낌이 보는 내내 지속되므로 이 작품 자체가 안 맞을 수도 있다. 배우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고구마 구간에서 포기한 사람이 속출하는 드라마이다. 여건이 된다면 나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동시에 소설을 읽으면 두 가지 모두를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랑야방>은 소설 3권에 드라마가 54부작, <화천골>은 소설 4권에 드라마가 50부작이다. 소설과 드라마를 모두 보려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랑야방]은 드라마를 포기했고, [화천골]은 동시 진행했다. 후자의 방식이어야 두 가지 모두 섭렵이 가능한데, 소설과 드라마 어느 하나 분량 면에서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삼생삼세십리도화]가 소설 한 권 분량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삼생삼세십리도화>는 58부작으로 이들보다 좀더 길지만(그러나 중드의 세계에서 58편 쯤이야!) 소설은 한 권이기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후속작 <삼생삼세침상서>는 두 권으로 나눠져 있지만 두껍지 않아서 역시 부담이 없다. 이런 소설들은 드라마와 동시에 읽어나가지 않아도 원작과 드라마를 모두 보는 게 가능하다.
소설로 읽었을 때 초반 진입이 어려워서 포기했다가 드라마를 통해 재진입에 성공한 예도 있다. [장안 24시]는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수사물인데 묘사된 장면이 소설을 읽으면서 잘 그려지지 않아 초반에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장안 십이시진>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드라마가 있다기에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 판단은 옳았다. 앞의 몇 회에 펼쳐지는 당나라 국제 도시인 장안의 구조와 문화를 보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소설을 잡았을 땐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낯선 배경의 소설은 내가 가진 경험이 적을 때 상상하기가 어렵다. 40여년을 살았다고 해도 내가 살아온 환경은 지극히 좁고, 내가 미디어를 통해 본 세계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장안 24시]를 읽으며 당나라 장안을 상상해내지 못하는 경험을 하며, 그간 내가 모르는 세계도 얼마나 아는 척을 하고 살았던가 하는 겸손한 마음도 들었다. 소설을 즐겨 읽어 나름대로 상상력이 쓸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가서 말하고 다니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나의 상상력은 협소했다. <장안십이지신> 덕분에 소설 [장안 24시]를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때의 경험이 같은 시기가 배경인 [당나라 퇴마사]를 읽을 때에도 도움이 되었다. 머릿속에 장안의 모습이 촤악 펼쳐질 때의 희열이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나의 이 상상이 조만간 드라마 <당나라 퇴마사>로 보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중드를 더 재밌게 풍성하게 보기 위해 읽기 시작한 중국 소설이지만 지금은 그 자체의 매력을 느껴 즐기고 있다. 아직은 중드에 기반한 독서 수준이지만 중국 소설가의 이름도 하나둘 더 알아가고 있고 그중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쓰는 소설가는 챙겨 읽고 있다. 과거 나의 독서 목록 중 ‘중국 소설’ 카테고리엔 위화, 옌렌커, 루쉰 정도만 있었는데 지금은 류츠신, 마보융, 마옌난 등의 목록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당칠공자, 동화 등 고장극 원작 소설가들에 대한 애정이 더 크고 김용의 소설은 항상 계획 1순위이다. 중국의 세익스피어라지 않는가! 중드를 고르는 하나의 기준을 넘어 이젠 또다른 소설 취향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