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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May 11. 2022

이 소리는 날 그 때로 돌아가게 해

끝나지 않은 여진

#이 소리는 날 그 때로 돌아가게 해.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이이-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삐이이이이이-




삐이이이이이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소리는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진다. 긴급재난문자가 시간차를 두고 오는 바람에 소리는 돌림 노래처럼 울린다. 신경을 긁는 소리가 들려도 사무실에서는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제각기 할 일을 한다. 나만 불안해하고 있다. 인수인계를 받는 중이라 옆에 부장님이 계셨지만, 알람이 울린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부장님, 잠깐 핸드폰 좀 확인할게요. 제가 포항에 있을 때 지진이 났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불안해서요.”




[기상청] 12월14일17:19 제주 서귀포시 서남서쪽 32km 해역 규모5.3 지진발생/낙하물로부터 몸 보호,  진동 멈춘 후 야외 대피하며 여진 주의




역시. 지진 때문에 울리는 긴급재난문자 알림이었다. 진원지가 제주도였기 때문에 경기도에 있는 나는 위험할 가능성은 작았지만 계속 불안했다. 업무에 관해서 설명해주는 부장님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의미 없이 "네, 네" 할 뿐이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그때를 아직 잊을 수 없다고.



-




#2017년 11월 15일





비몽사몽 상태로 오피스에 앉아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잠을 깨려고 의미 없는 클릭 질을 하고 있을 때 일은 벌어졌다. 정전됨과 동시에 오피스에 있는 모든 책장과 책상들이 흔들렸다. 상황 파악이 빠르게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뒤에 앉아있던 선배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본능적으로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책상 아래에서 마주친 선배의 눈은 나와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책상 아래에 들어가 있는 몇 초 동안 오피스 밖 복도에서는 계단을 내려오는 많은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우리는 또다시 눈짓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건물 밖으로 나가자고 신호를 주고 받았다. 격한 흔들림으로 제자리를 이탈한 물건들을 헤치고 우리는 긴 오피스 복도를 내달려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고 나온 1층 복도는 혼비백산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계속해서 계단을 이용해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으며, 건물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수레가 나뒹굴고 있어 넘어질 뻔했다. 불이 꺼진 복도를 지나 겨우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건물을 나온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그사이에 아는 사람이 있나 눈으로 사람들을 훑었다. 할 일을 마친 눈동자가 멈추고 나서 그제야 현실감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본도 아니고 한국에서 지진때문에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삐져나왔다.




이후에 있을지 모르는 피해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학교 입구 쪽에 있는 공터로 향하였다. 공터에서 하릴없이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안내를 따라야 하는 건지, 안내해주기는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공터에 서 있는 와중에도 내가 딛고 있는 발아래에서 땅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때 깨달았다. 자연의 무서움을. 여태까지 겪어봤던 자연재해인 폭우나 폭설은 언제까지, 얼마 정도의 규모로 내릴 건지 예측이 가능했지만 지진은 그러지 않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 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대피 장소에 있었을까. 다들 건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그 당시 기숙사에 살았기에 실험실을 퇴근해서 기숙사로 돌아간다고 해도 여진의 피해에서 멀어질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접근금지 라인이 설치된 건물을 뒤로 하고 본가로 당분간 대피해있기로 마음먹었다. 코레일 앱을 켜 좌석을 예매한 후, 며칠 쉬겠다고 교수님께 메일 한 통을 보냈다. 계속 본가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냥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같이 올라갈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변에 연락을 돌려봤다. 친구들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밀려있는 과제와 실험들로 학교를 떠날 수 없었다. 뭔가 덧없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겪었는데 과제나 실험이 다 무슨 소용일까. 다음 날도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을 남기고 포항역으로 향했다. 밤늦게 도착한 포항역은 완전 난리였다. 일부분은 무너져서 천장이 휑했고, 물난리가 났는지 바닥도 엉망진창이었다. KTX를 타고 와중에도 혹시 지진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KTX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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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수업도 들어야 하고 실험도 해야 했기에 본가에 한 일주일쯤인가 머물다가 다시 포항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다시 실험실에 돌아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예전이라면 느껴지지 않았을 건물의 진동이 느껴지고 심장의 두근거림이 격하게 더 잘 느껴졌다. 일종의 노이로제라고 할까. 여기에 더불어 불행하게도 크고 작은 여진이 발생했다. 정전이 일어났던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을 진동은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왔다. 사실 일상생활을 할 시간에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진은 인간의 시계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잠자리에 든 시간에도 찾아왔다. 그러는 바람에 그 추운 날 잠옷 차림으로 기숙사 밖으로 나간 적이 여러 번이다. 잘 때는 답답한 게 싫어 반팔에 반바지를 입었지만, 지진으로 자던 와중에 정신없이 부랴부랴 나가야 하는 상황을 여러 번 거치면서 나의 잠옷 스타일은 긴팔에 긴바지로 바뀌었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어린 시절 유행이었던 ‘지진에서 살아남기’ 책을 시가로 판다는 유머성 글이 올라왔다. 나도 그걸 보면서 웃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이 숨겨져 있었다. 그때 당시 기숙사 고층에서 살고 있어서  대피를 하려면 많은 계단을 내려와야 해서 기숙사에 있을 때는 좀 더 불안했었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는 히어로물이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4층 방 창문을 몸을 던져 깨서 빠르게 1층으로 착지해 건물을 빠져나오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농담을 전하며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다. 하지만 자연 앞에서 나약한 한낱 인간이기에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지진은 나를 피 말리게 했다.




그렇게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지진도 점차 방문 횟수가 줄어들어 우리의 기억 속에도 지진은 잊혀갔다. 나의 불안 증세도 없어지고 지진이 일어났던 게 꿈만 같은 정도였다. 4년이나 지난 지금, 지진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어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진동이 아니라 경보 소리만 들려도 나는 이제 그때를 떠올리며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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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2017년 11월 15일





“...수치는 ... 정도로……상황에……이렇게 하면 돼”




불안한 마음에 부장님의 소리가 단어로 쪼개져서 들린다. 단어들 사이에 연관성을 알 수 없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공책에 들은 단어들만이라도 적으려고 노력한다. 심장은 이런 내 심정도 모르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내 몸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서워서 몸을 떨고 있는 걸까. 내 몸의 진동이 눈에 보인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스크 아래로 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옆자리 부장님께 들키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 호흡한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린다.




“삐이이이- 이거 누가 입으로 내는 소리 아니야?”




사무실 전체에 긴 시간 동안 울려 퍼지는 경보음이 현실감이 없었는지, 농담으로 던진 한마디였다.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은 하하하 웃는다. 사람들은 알까. 자신들은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는 그 소리로 나는 지금 떨고 있다는걸. 나도 사람들처럼 넘겨버리고만 싶었다. 누가 이 마음을 알까. 갑자기 불 꺼진 오피스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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