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찾아오는 아파트 대출이자의 압박을 견디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자를 줄이기 위해 대출 원금을 일부 상환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현금을 만들지?
그때 토실토실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 녀석은 독일에서 태어난 나의 적토마. 대단한 하차감을 주는 차는 아니어도 잘 달리는 마초적인 녀석. 비즈니스 세단으로 타기에 적당하고 풀옵션에 승차감도 좋았다.
수입차를 처분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차를 팔고 국산 중고차를 타며 거품과 허세가 가득한 사회 분위기에 소심한 반기를 들고 싶었다. SNS상에서 남들이 찍은 핸들의 삼각별을 보고 "저 녀석도 벤츠타? 그렇다면 내가 못 탈 이유가 있냐?"라는 식의 소비 상향평준화가 싫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돈을 아껴야 한다"는 절약 전도사로 자처한 마당에 내가 모범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똥차 타면서 당당할 수 있을까?"라는 실험을 시작했다.(연재 글을 끝까지 구독하면 실험의 결과가 나온다)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드라이빙을 하고 잠시만 안녕하고 XX딜러에게 차를 고이 보내주었다. 차를 갖고 가자마자 변심은 금물이라는 뜻으로 순식간에 매각대금이 입금된다. (딜러가 판매결정에 흔들리는 내 눈빛을 읽었나?)
중고로 파란색 전기차를 샀다. 포카리음료 색상처럼 시퍼런 녀석의 별명은 파랑새. 파랑새는 기름값이 들지 않아서 처음 몇 달은 만족했다. 아끼는 기름값으로 대출이자를 충당했다. 다행히 빙하기에 산 집 값이 해빙기가 되어 가격이 오르긴 했다. 감가 되는 차 대신 감가가 없는 아파트를 택한 것은 현명했다. 물론 승차감과 하차감은 완전히 포기했다.
눈치게임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훈련
한국 사회는 창의성은 1도 없는 표준화된 눈치게임사회. 나만큼은 남눈치 안 보고 당당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파랑새를 타며 차로 인해 작아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주변의 눈치가 보인다.
특히 일을 하며 고객을 만날 때 차를 숨기고 싶어졌다. 유능해 보이려면 차가 좋아야 할 것 같은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퍼런 차를 보여주면 왠지 무시할 것 같았다. 새로 영입한 파랑새는 시퍼런 색만큼이나 나를 종종 창백하게 만들었다.
물론 비즈니스에서는 보이는 면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파랑새를 타고 다니고 다른 사람이 신경 쓰일 땐 10년 된 와이프 차를 끌고 나간다. (업무상 집에 차가 2대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니 내가 정상이겠지? 아니면 내가 자존감이 낮은 걸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한 것일까?
아직 정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당당하고 솔직해지고 싶다. 당당해지도록 훈련하자.
서양사람들은 자동차로 으스대지도 위축되지도 않는다. 그들은 차를 사면 15년 정도 거뜬히 탄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 유독 남들의 이목에 맞춰 과소비를 하고 좋은 차를 타려 할까?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타인이 중심이 되기 때문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자동차는 어떤 의미일까? 한 사람의 명함? 사치품? 이동수단? 계급?
옷과 차는 바뀌더라도 나는 바뀌지 않는다. 눈치게임하는 사회에서 나만의 궤도로 살고 싶다.
파랑새를 운전하며 더욱 성숙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당당해질 때까지 이 차를 타자.
파랑새는 나를 훈련시키는 멘토! 내 인생 타인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당당함을 훈련하자
+이 글을 이미 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이 글을 통해 '똥차 실험'을 연재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의미 있는 글이기도 하고 전체 구성상 필요해서 2회 차에 재탕(?)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13회 차 동안 더욱 재밌는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