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신중년이 은퇴 후의 취미로써 캘리그라피를 연습하다.
컴퓨터 화면을 통한 강사들의 강의에 따라 붓펜을 이용하여 글씨 연습을 하다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써 놓은 글씨를 다시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간혹 한 글자는 마음에 들더라도 문장으로 보면 조화가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직 나만의 글씨체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도 은퇴 후 노년의 취미활동으로 삼기 위하여 연습하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면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시집 등에 있는 좋은 문장들을 써 보면서 이 글을 내 놓기 위하여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작가들의 노고도 생각해 본다.
어느 한의원을 방문하여 검진 차례를 기다리다가 문득 인서구노(人書俱老)라는 문구를 보았다. 뜻이 궁금하여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사람과 글씨가 같이 늙어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늙어간다.’라기 보다는 ‘익어간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학창시절에 동아리 활동으로 서예를 연습하였던 시간이 떠올랐다.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하여 결국 중도에 그만 두었지만, 제대로 된 작품하나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었나보다. 은퇴 이후에 반드시 필요한 것 중의 하나로 ‘취미’를 추천하는 강의를 들은 바 있어서 갑자기 다시 도전해 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지금을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그 나름대로의 명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학창시절의 글씨는 노트 필기가 주를 이루었고, 이는 잘 쓰기보다는 선생님의 말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빨리 쓰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나중에 알아 볼 수만 있으면 그만이지 글씨체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컴퓨터를 활용하는 시대로 접어드니 나이가 들어도 글씨체를 교정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TV에서 현충원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서명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필체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바가 있었다. 옛날에는 글씨체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身言書判). 디지털 기기도 좋지만, 잠시 펜글씨 교본을 사서 연습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나를 표현하는 기준인 글씨체를 좀 더 바로잡아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서예는 자신이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서예를 취미로 삼고 싶지만, 현재는 제대로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고, 독학으로는 더욱 힘들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대안으로 캘리그라피를 선택하고, 우선은 대면 강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아 인터넷으로 독학을 해 보기로 하였다. 인터넷에는 다양한 강의가 넘쳐나고 있다. 처음에는 여러 강사들의 강의를 무원칙으로 들었지만, 어느 정도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는 전문강사의 강의를 골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나의 강의를 모두 듣고 나서 다른 강사의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이론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밝음’ 길가다 들른 어느 카페에서 종이컵에 둘러준 띠에 적힌, 캘리그라피로 쓴 문구다. 배우기를 시작하고부터는 작은 문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길을 주게 된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내내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참 좋은 문구다. 이 작은 문구하나로도 잔잔한 미소를 줄 수 있다니 캘리그라피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길거리를 지나다가 마주치는 간판 중에 캘리그라피로 제작된 간판을 보면 반가운 생각이 들었고, 그 외에 영화 포스터나 책 표지, 그리고 현수막 등의 실생활에 쓰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예보다는 형식면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접근을 쉽게 하였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 4층 로비에는 50세 이상 되신 분들의 커뮤니티에서 만든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목판에 글씨를 쓰고 양각과 음각 등 다양하게 새겨서 만든 작품들이 작가마다의 개성을 나타내며,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보이지 않는 노고를 생각하면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곤 한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작품에 도전해 보아야지 하면서.
캘리그라피는 형식이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필기도구도 다양하고 쓸 재료도 무한정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필기구로는 우선 붓펜을 골랐다. 붓펜은 먹물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준비하기도 용이하고, 사용 후 뒤처리도 별도로 필요치 않다. 뿐만 아니라 휴대가 간편하여 언제라도 생각나면 꺼내서 몇 자라도 연습해 볼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많았다. 전통의 붓 보다는 표현하는 글씨의 크기영역이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내 글씨체를 찾는 연습용으로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어느 수준까지는 붓펜으로 연습하고 그 이후에 전통 붓과 다른 도구들의 사용에도 도전해 보아야겠다. 활용도 우선은 작은 책갈피나 엽서, 부채 혹은 미니 병풍이나 문구점 액자 등의 작은 완성품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무슨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캘리그라피도 독학으로 익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수준이 어느 정도이고 어느 부분을 다듬으면 더 나아질 것 같다는 지도를 받는다면 좀 더 빨리 수준이 높아질 것 같다. 물론, 캘리그라피 자체가 자기만의 독특한 손 글씨이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만 의존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부분은 있다고 여겨진다. 생활에 시간여유가 생기면 전문적인 강사에게 지도를 받고, 학우들과 교류하면서 성취도가 높아지는 기쁨을 배가하고 싶다.
그날그날은 도무지 진전이 없고 그대로인 것 같지만 문득 되돌아보면 그래도 선이 어제보다는 더 바르게 나온 것 같고, 문장의 일관성도 좋아진 것을 느낀다. 계속 발전한다는 것이 캘리그라피의 또 하나의 장점인 것 같다. 그 확장가능성도 무궁무진하여 도전할 분야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도 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앞으로 적용할 부분은 태블릿 PC를 이용하여 디지털 캘리그라피에 도전해 보려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에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져 흥미가 생긴다. 그리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 재능기부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대상은 같이 취미생활을 해 갈 수 있는 시니어들도 좋고, 원하는 곳만 있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방과 후 과정 등 취미활동을 지도해 보고 싶다.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고 도전의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붓펜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