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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Nov 17. 2023

화담 숲으로의 초대

가을을 그냥 보내기 서운하여

금년을 시작하면서 아내의 희망사항 중의 하나가 여행이다. 한 달에 한 곳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였다.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고, 유명한 관광지도 좋으니 여행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고 했는데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달이 더 많다.


월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지나고 보니 분기 여행이 되었다. 봄에는 진해의 군항제에 다녀왔고, 년 초에는 여수를 그리고 여름에는 파주를 다녀왔다. (여수와 파주는 아들이 동행한 가족여행이었다.) 그래서 가을에 단풍 구경을 겸하여 계획한 곳이 화담 숲이다.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아껴두었던 휴가를 이용하였지만 수능 전 날 평일에 겨우 예매를 할 수 있었다.


평일에는 차도 덜 막히고, 화담 숲도 조용할 것으로 기대하였었다. 그런데 기대는 그냥 기대로 끝났다. 도로는 휴일과 다름없이 혼잡하여 막히지 않을 때에 비교하여 40분 정도가 더 소요되었다. 그래도 기분이 들떠 있는 아내가 옆에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 되었다.


서울 도심에서도 서행을 하였고, 동서울 요금소를 벗어나도 제 속도를 못 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역동적인 나라가 되었는가. 다녀온 곳이 수도권 주변이기는 하였지만, 평일임에도 이렇게 차가 많다는 것에 대하여 짜증보다는 안심이 먼저였다. 정체되지 않고 움직이는 나라의 한 단면으로 여기기로 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후기에 남긴 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매한 시간보다 적어도 30분은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주차장을 찾아 주차하고 입구에 도착하기까지 30분은 넘게 소요된 것 같다. 다행히 일찍 출발하였지만 예상보다는 늦을 수밖에 없었다.


입구를 들어서니 막상 단풍은 잘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으니 올해는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않았다고 한다. 단풍 대신 소나무를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라고 하였다. 뉴스에서 9월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전국 산들의 단풍이 예년만 못하다고 하더니 실감이 났다.


구경거리는 많았다. 오랜만에 나선 길이기 때문인지, 숲을 잘 가꾸어 놓아서인지 보이는 것이 모두 신기하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을 때면 서로 기다려주고, 양보해 주는 배려의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았다. 여기서도 성숙해 가는 시민의식을 볼 수 있었다.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서 가꾸어진 숲은 정말 좋았다. 특히 다른 날에 비하여 화창하고 온도까지 높아서 구경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 이런 뜻을 낸 분과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유지하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직원의 추천대로 소나무 숲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전국의 특이한 나무 중에서 100년 이상 된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고 한다. 수려한 모습의 나무도 있고, 줄기가 둥글게 자란 나무도 있고, 분재의 모양을 한 나무들도 있었다. 한 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구경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고 여행의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하였다.


걸어서 한 바퀴를 돌고, 번지 없는 주막에서 해물파전으로 점심을 대신한 후에 모노레일을 타고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단풍 말고도 볼 것은 많았다. 사계절이 모두 특색을 가지고 아름다울 것 같다. 다른 계절에도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벅찬 하루였다. 아내와의 약속을 조금 지켰다는 안도감도 있어서인지 피곤함도 느끼지 못하고 보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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