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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쁘게 Oct 14. 2024

넌 지나치게 예민해

그들은 나의 섬세함을 예민함으로 치부하였다.

남들보다 직관이 빨라, 조금 더 상황을 빨리 파악했다. 그래서 남들은 3~4년 후에나 겪고, 그 사람은 왜 그런 것이냐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이미 알아서 친한 이들에게 얘기했지만 , 그들은 내가 예민한 것이라 치부하고, 이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통찰력이나 직관이 느린 것이데, 자신이 옳고 내가 틀리다고 얘기한 것일 뿐이었다.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들을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나는 가을이 오면 그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와, 그 서늘한 바람에 너무 행복함을 느끼는 동시에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인지. 너무 모순적으로 느껴졌었다. 누가 옆에 있어도 그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았고, 누구에게 얘기하지도 못했고, 누군가에게 말해도 이해받지 못했다. 나는 그냥 어렸을 적부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우울증이 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한 날이 없는 것 같다고. 좋은데 왜 외롭고 쓸쓸한 것인지. 이에 대하여 올해 처음으로 카운슬러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기대한 대답과 너무도 달랐다. " 왜 자신을 남의 평가에 맞춰 판단하죠? 직관이 빠르다고 얘기하는 것인데, 직관이 빠른 것은 사회에서나 경제적으로나 상황판단 등에 좋게 쓰일 수 있는 장점이며, 가을이 좋으면서 외로운 것은 계절이나 어떤 상황을 남들보다 조금 더 섬세히 느끼기에 그것을 글로 써보거나, 작사를 할 수 있는 당신의 장점입니다. 오히려 감정이 무뎌서 그런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 사람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요? 당신은 여러 가지 섬세한 감정들을 세밀하게 다 느끼니 그게 어떤 면에서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걸 장점으로 이용해 보세요.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도울 수도 있을 겁니다. 자꾸 자책하며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하지 말고요"라고 말이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어떤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다 보니 주체적인 내가 없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로 인해 맞는 선택도 바로 하지 못했다. 어떻게 결혼한다고 하더니 바로 파경이냐?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다는 말도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어보면 안다. 물론 내 중심이 단단했으면 그런 소리 따위 생각지 않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바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남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 나이가 많다. 노산이다. 왜 결혼을 못하냐. 그 외모로 되겠느냐. 성형을 해서라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들의 무례한 말들 말이다. 

그런 말들에 오히려 거울이나 한번 보시죠라고 말하면서 무례함을 끊어냈어야 한다. 후회뿐인 40여 년간의 삶이지만 후회만 하지 않고 오늘을 과거를 떠올리는 후회가 아닌 오늘을 내일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 나아가고 싶다. 아니 나아가야 한다. 분명히 내게 원하시는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는 알겠지. 물론 아직도 하루하루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픈 이들에게 그 아픔을 위로해 줄 사람들을 곁에 주실 것이라 하셨었다. 하지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 아픔에 발버둥 치다가 내가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기도를 해주시던 의사 선생님과 수간호사 선생님께, 그리고 기독교를 독실히 믿으시던 엄마 친구분께. 그리고 알고 있던 목사님께 말씀드렸었으나 위로를 주시진 않고, 연락이 잘 안 되었다. 게다가 너무 힘들어 중보기도를 해주시는 사이트와 한 교회에 연락을 드려 등록되지 않은 교인이나 몇 년째 계속 유튜브를 통해 그 교회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과 연락을 하고 싶다고 하였으나 다들 쌀쌀한 거절로 모른다로 넘어갔고, 그 교회에 계시던 외부교회를 다니며 아픔을 토로하고, 기도해 주시는 목사님이 계시다고 하여 그분 께 몇 번 이메일을 드리고, 그분의 답을 받으며 위로받고, 엉엉 울어댔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만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는 사랑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그는 내게 어떠한 위로도 주지 않고 오히려 고통만 주었다. 남은 나무둥지에 기름을 부어 태워버렸다는 것이 맞겠구나. 신이여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이 와닿지 않았는데 오늘은 쓸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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