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요리사
질투하는 지질한 나를 되돌아보며
요즘 넷플릭스에서 유행하는 요리사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요리사들은 대박을 치고 있다고 한다. 예약이 내년까지 꽉 차서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데, 내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고 나를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아닌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 그 이모와, 나의 엄마에게 되바라진 행동으로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아픔을 준 그녀의 자식은 엄청난 인기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신을 믿는다며 신을 믿는 이 처럼 행동하지 않았고, 그들의 인성은 쓰레기 보다 못하며, 그곳에서 갓 졸업한 20대가 수셰프를 했을까? 그 나라 대통령이 바뀌며 비자연장을 해주지 않아 쫓겨나니 할 수 없이 다른 나라에 가서 아주 잠시 있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어차피 우리나라 방송은 셰프들이 학력위조나 경력을 위조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곳이므로. 잠시 문제가 생겨 TV에 나오지 않았다가 금방 또 나오지 않나?
신을 믿는 자는 원수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그들을 용서치 못하겠고, 오히려 TV까지 나오고 전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악인들을 보며, 신은 항상 언제나 불공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불공평하시구나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나의 사촌들은 또 올해 말에 모여, 넷플릭스까지 나왔다며 자신의 사촌을 자랑하겠지. 왜냐면 그들은 자신이 그런 수치와 모멸을 겪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이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사촌동생이 그렇게 잘 나가고, 블로거와 인플루언서들이 극찬하며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과거에 대해 외국에서 수셰프를 했네 등으로 다뤄놓은 것을 보았다. 한국에 있는 대학 요리과에 입학해서,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대학에 가서 2년을 다니면 그 외국대학교 졸업장을 준다고 하여 친척들과 할머니의 기부로 엄청난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며 졸업한 곳이었다. 처음에 그곳에 있던 이모와 사촌언니는 그까짓 대학교를 입학한 것도 아니고 자매결연으로 와서, 요리대학교 졸업장을 받겠다고 그렇게 많은 돈과 생활비를 우리가 지출해야겠냐며, 그 사촌동생이 사치스러운 것에 대해 그렇게 욕을 해대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촌동생은 자신의 친구는 자기보다 공부를 못하는데도 친척이 대학등록금 및 생활비 그리고 석사과정등록금도 대주어서 석사졸업을 하고 좋은 곳에 취직했다며, 자신도 석사까지 하고 싶다며, 더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다며 화를 내었고, 그녀의 엄마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항상 그 얘기를 했었다. 왜 자꾸 저 얘기를 하나 했었는데, 돈을 더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모와 삼촌들은 그 이모의 자녀들에게 3년 치와 4년 치 학비를 대주었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더 이상은 너무 힘들다며, 자신의 자식들도 학비대출을 하여 갚고 있다며 그만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그들의 부모는 빚을 지도고 아직도 갚지 않고 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도 착했던 나의 둘째 이모는 그 부부 때문에 자신의 남편 눈치를 보고 신경 쓰다가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이모부는 그들이 아직도 20년 전부터 빚을 탕감해 줬는데도 안 갚은 게 3800만 원가량이라며 그것도 이자를 하나도 계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냥 떼어 먹혔다고 생각하고 사신다고 얼마 전 내게 얘기하셨다. 돌아가신 삼촌의 생명보험까지 몰래 가져다 쓴 가족이다. 난 아직도 그 외삼촌이 돌아가시기 전날 나와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가 유언이 될 줄 몰랐기에, 내가 성의 있게 전화통화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며, 울고 있다.
남이 어떻게 잘 되던 자기의 노력이겠지. 그들이 방송에 나온다고, 잘된다고 배 아파하지 말자.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겠지. 대략 1시간가량 인터넷을 서칭 하다 배 아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을 난 그냥 열심히, 힘들게 꿋꿋이 잘 살면 되는 것이다. 왜냐면 내겐 나의 인생이 있고, 인생의 마무리를 할 땐 내가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산 것이 내게도 보람일 테니까 말이다. 잠시 남의 인생을 시기한 나를 반성하며, 상관하지 말자. 내 인생만으로도 나를 사랑하기만도 부족한 인생이니 말이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이런 일들에 신경 쓰는 것이다.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나를 사랑해 보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이라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닌 남을 신경 쓴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지질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지질하게 살지 말자. 남들이 보기에 비참하고, 비루한 삶이라도 내게는 열심히 산 증거이자 보람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