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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쁘게 Sep 02. 2024

선생이 싫었던 이유
1) 아동학대와 촌지 교사 편

90년대의 참 교육을 보여준 선생이란 '것'들


엄마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아버지나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늘 하시던 말이 있었다. "절대 학교 선생은 하지 마라."라고 말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좋은(?) 세뇌로 "의사가 되거라."라는 말 때문에 선생이란 직업을 가지려고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굳이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시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서야 물었던 것 같다.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했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있었던 고등학교에 공립 고등학교 출신의 교장이 왔는데, 공립고등학교에서 만행했던 돈 상납을 각 선생님들에게 당연히 요구했고, 강직하고 정직했던 엄마는 끝까지 버텼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학교에서 유일하게 하나 남은 뇌물을 바치지 않은 선생으로 진급에서도 밀리고 온갖 잡무를 떠맡으며 불려 가서 욕을 먹고 괴롭힘을 당했고, 지켜보던 윗 선생님께서 교감선생님도 바쳤다며 가져다 바치라 하여 결국 엄마 월급을 그 교장의 집에 찾아가서 상납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 화나게도 그 사람은 그 상납금을 받고 2개월 뒤에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끝까지 버티지 못한 것을 한탄스러워하셨다. 나는 오히려 속 시원하지 않았냐 물었다. '한 달 치 월급을 주었더니 사라져 버린 악인!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인과응보가 살아있었어! , 노잣돈으로 두둑이 거둬가셨으니 뿌듯하시겠소.' 하고 말이다. 엄마의 이모, 즉, 내게는 이모할머니셨던 분이 강남 초등학교에 계셨었는데 오죽하면 그렇게 얘기하셨단다. 하는 행동이 너무 미워서 예뻐할 수가 없는 아이가 있었는데, 기가 막히게도 그 엄마들이 학교에 와서 보석반지 하나씩을 주고 가면 아이가 아무리 미운 행동을 해도 안 밉더란다.


 1. 초등학교 입학을 A에서 했다가 초2 올라가는 신학기에 바로 근처에 있던 B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때 선생님은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호구 조사표를 돌렸고, 회사아파트이자 그 동네의 유일하고 최초의 고층아파트였던 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엄마를 모시고 오라면서 교사용 문제집을 줬다. 답이 다 찍혀있는 그 문제집을 자기가 사주는 듯이 생색은 다 내가며 주면서 계속 남겼고, 그 문제집을 받은 아이들은 하나둘씩 엄마를 모셔왔고, 선생님과 면담 후 하얀 봉투를 하나씩 드리고 가고, 그 당시 보온 병인 일명 커다란 '마우병.'에 인스턴트커피를 타오셔서 선생님께 따라 드리고 가셨다. 왜 영화에서 보면 예전에 있던 다방이란 곳의 종업원들이 들고 다니던 커다란 병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몇 번이고 "엄마, 선생님이 엄마 오라는데."라고 얘기를 전달했으나 들은 척도 안 하시더니 저녁에 아버지와 두 분이서 따로 얘기를 하셨다. 난 머리가 온통 '꽃밭'인 초2였기에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 동생들과 뛰놀기에 바빴었다. 선생님이 집에 전화까지 하여 오시라 했으나 엄마는 가지 않으셨다. 결국은 수업시간에 내가 집중하지 않았단 이유로 내 등을 하얀 수도 파이프관 몽둥이로 세게 내리치셨다. 너무 아팠지만, 나는 떠들지도, 딴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이 딴짓을 했다는 말에 억울했지만 그냥 내가 맞을 짓을 정말 했었구나 생각하고 내가 한 행동이 너무 창피하고, 아이들 앞에서 맞은 것도 너무 수치스러워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 당시 20KG 저체중에 키가 작던 내게 수도관 파이프로 쓰던 하얀 파이프관은 정말 아팠다. 저녁 샤워시간에 엄마가 나를 씻겨 주시다 내 등판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 너 등에 왜 길게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어? 이거 왜 이런 거야?"라고 물으시기에 선생님에게 맞은걸 엄마한테 얘기하면 또 혼나겠지 해서 " 애들이랑 놀다가 부딪혔어."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 지르셨다. " 제대로 얘기해. 이거 부딪혀서 멍든 모양이 아닌데, 제대로 얘기 안 해?"라고 소리 지르시기에 나는 울면서 말했다. "사실은 선생님께 수업시간에 집중 안 한다고 맞았어." 그 소리를 들으시더니 조용히 나가셨다. 난 다 씻고 옷을 입고 나가니 엄마가 등에 약을 발라주시면서 다음부터는 거짓말하지 말고 제대로 얘기하라 신다. 그러더니 퇴근해 오신 아버지께 뭐라고 얘기하며 내 등을 보내시더니 두 분이 같이 화를 내신다. "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어린애를 파이프로 후려치는 거야 미친놈 아니야?"  뼈 부러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시며 결국 내일 학교 가서 그냥 줘버려야겠다신다. 다음날 하교시간쯤 엄마가 학교로 와서 선생님께 봉투를 내밀었더니 그렇게 징그럽게 활짝 웃던 선생님은 내가 너무 잘하고 있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남겨서 따로 공부를 시키겠단다. 그 이후로 당연히 선생은 내게 너무나 잘해주고, 촌지를 받은 아이들을 남겨서 나머지 공부를 시켰고, 당연히 성적이 잘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선생님이 그때 왜 나를 때린 거냐 했더니 엄마가 얘기하셨다. " 엄마 오라고 했던 말이 돈 내놓으란 소리야. 꼭 학기 초에 호구조사종이 나눠줘서 엄마 아버지가 대졸인지 아닌지, 무슨 회사에 다니시는지 다 적어가는 게 촌지 받아가려는 이유야. 좀 배우고 잘 사는 부모에게 돈 내놓으라는 거야. 초1 때 그쪽학교 선생님들은 호구조사는 해도 그런 요구를 안 하시기에 신경도 안 썼고, 끝까지 안 주려했는데, 그까짓 돈에 애까지 때릴 줄 몰랐지. 그 선생덕에 이젠 학기 초마다 선생들이 전화 걸면 그냥 준다. 또 내 자식이 그 돈 때문에 맞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서." 그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하나같이 여러 부모들에게 삥을 뜯어 가셨다. 참으로 사는 것이 기쁘셨을 것이다. 분기별 주기적으로 부모님들을 별의별 이유로 학교로 다 불렀으니 말이다. 나의 첫 번째 최악의 선생님 "조현ㅇ선생님." 퇴임하신 지 4~9년 정도 되셨을 텐데 공무원 연금 400~500 받으며 잘살고 계시겠네요. 내가 낸 세금으로도 잘 먹고 잘 사실 테니 참 별로다. 그런 사람들은 잘 추려서 제외하고 정말 도와야 할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90년대와 달라진 게 무엇이냔 말이다.

 2. 이전 편에 적은 적이 있었던 중2 때 "정영ㅇ선생님." 이분은 현재 50대쯤이시니 아직 교직에 계실 것이다. 양아치 천국이었던 국립 여중에서 중2 때 아이들은 그렇게 가출을 많이 했다. 신기하게도 중3이 되면 가출을 하지 않았다. '중2병'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 세계 만국에 도는 누구나 꼭 한번 거치고 지나가야 하는 '질병'인 것이 분명하다. 중1 때부터 같은 반이었고 예쁘장하게 생겼던 '윤미'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따돌렸던 그 일진들과 다녔고, 이전에 언급했던 아이 둘은 영악했기에 다른 아이들에게 가출을 해야만 진정한 자신들 팀이라며 가출을 유도하고도 자신들은 절대 가출하지 않았다. 윤미는 가끔씩 체육시간에 내 옆에 와서 " 남자 친구 소개해줄까? 나 공부 잘하는 옆학교 회장 오빠들부터, 잘 나가는 양아치 공고짱 오빠들도 있다." 라며 묻기에 그저 억지 미소로 답했다. 그땐 모두 날 괴롭히는 적들이었기에 그들과 말을 섞길 원하지 않았다. 그때 여러 아이가 가출을 했고 잡혀왔었는데, 담임은 유독 그 아이만 미워하며, 그때 반의 일진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얘기했단다. " 너 윤미랑 놀지 말라고. 걔가 집안도 별로고, 질도 나쁘다고. 네가 가출할 애가 아닌데, 그 아이 꼬임에 넘어가서 가출한 것 아니냐고." 불려 갔던 아이들에게 다 얘기했단다. 아이들이 담임과 상담하고 와서 큰소리로 외치며 윤미에게 의리랍시고 복사한 듯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윤미는 외모에 관심이 많고 이성친구에 관심이 있었던, 일진 아이들이 얼굴이 예뻐서 같이 데리고 다녔던 소녀였다. 그런데도 선생이란 사람이 그 아이가 없는 뒤에서 그런 욕을 하고 따돌리니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까? 윤미가 그 아이들과 같이 과제를 안 해오거나 같이 늦어도 꼭 윤미만 벌을 주고 복도로 내쫓았다. 결국 윤미는 또다시 가출을 했고, 출석일 수가 모자라 퇴학당했다. 퇴학당하기 전 담임이 종례시간에 들어와서 소리를 질러댔다. " 윤미에게 전해라. 이번주까지 안 오면 퇴학이라고."  그랬더니 그 악마들이 수군댔다. " 우리 어딨는지 아는데 담임년에게 얘기 안 한다. 우리 의리 있는 사람이야."라고 뻐겨대는데, '니들이 사람인가? 정말 의리란 게 뭔지 모르나?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면 초졸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희는 친구의 인생을 망치는 것도 의리라 얘기하는 금수보다 못한 것들이구나.'  결국 퇴학처분이 떨어져서 학교 여기저기에 대자보가 붙었고, 며칠 뒤 담임이 들어와서 얘기했다. "윤미 엄마가 술집 마담이고, 아버지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부모란 사람들이 자퇴당한 딸을 데려다 다방에 팔았단다. 그게 부모가 할 짓이냐? 그리고 걔는 다방레지로 팔려가서 지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다. 니들은 초졸에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남자들한테 커피나 따르고, 그런 인생 안 살려면 걔랑은 연락도 하지 마."  

저게 선생으로서 할 말인가? 적어도 담임을 맡았던 선생이라면 아이를 구할 방도를 찾아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심란한 마음에 저녁식사를 하며,  부모님께 얘기하니 식모로 팔고 다방레지나 술집에 딸을 팔기도 했던 얘기는 80년대에나 있었던 일이라고. 아직도 그런 일이 있냐고 하신다. 정영ㅇ선생의 만행은 양파와 같이 까도 까도 끝이 없다. 내가 태권도를 다니다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했어야 하는데, 깁스를 하면 한쪽 다리를 쓰지 않아서 근육문제가 생기니 스판으로 된 발목 보호밴드를 차고 다니며 인대가 가라앉을 때까지 3개월만 절대 많이 걷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2달 동안 매일 데려다주셨고, 침치료까지 매일 받아서 거의 다 나아갈 때가 초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담임과 체육선생에게 진단서를 가져다주고 미리 양해를 구했고, 나와 두 명의 아이들은 항상 체육시간에 구령대에 모여 앉아있었다. 나는 인대, 한 명은 다리 부러져서 깁스를 한 아이, 나머지 한 아이는 류머티즘으로 너무 아파서 많이 걸을 수 없고, 걷지 말리셨단다. 그 악마 같던 아이들은 자기들도 체육시간에 우리와 같이 쉬고 싶다며 생리기간이라 거짓말을 하며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체육활동을 못한다 하니 배불뚝이 핸드볼 코치 겸 변태체육선생이 외쳤다. "이년들 봐라 거짓말하면서 이딴 식으로 행동한단 이 말이지. 전부 다 20바퀴 뛰어." 라시기에 나와 두 아이들은 다쳐서 못 뛴다 말했다. 그러자  " 니들이 아픈 건 니들 사정이고 니들이 꽤 병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기어서라도 20바퀴 다 돌아."라고 소리 질렀고. 결국 우리 셋은 절뚝거리며, 다리를 질질 끌며 그 다리로 나름대로 뛰었고, 나의 발목은 걸을 수 조차 없이 부어올랐다. 하교 후 엄마는 담임에게 전화를 했다. " 분명히 진단서도 가져가서 보여 드렸고,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 체육선생님이 달리게 하여 다리가 처음 다친 것보다 더 심하게 다쳤다. "라고 얘기했더니, 담임 왈, " 체육 선생님이 절대 그러실 리 없다. 분명히 당신 아이가 체육선생님께 얘기를 안 했을 것이다."라고 하시길래 " 그럼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인가요? 체육선생님께 가서 여쭤보시거나 아이들에게라도 사정만 물어봐도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 아니냐. 나는 내 아이를 정직하고 바르게 키웠다. 그런데 알아보지도 않고서 대뜸 내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얘기하냐?"라고 물었더니 "체육 선생님이 절대 그럴 리가 없고,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이다."라고 끝까지 우기기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그만하셨단다. 다음날 아침조례시간에 내가 담임에게 공개적 야단을 맞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감히 그걸 부모에게 왜 이르냐고. 고자질은 나쁜 짓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체육시간에도 역시 체육선생은 우리 셋을 5바퀴라도 걷게 했고, 나의 다리는 나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중에 류머티즘 관절염에 걸렸던 아이는 병이 더 심해지고 고통스러워서 학교를 휴학했다. 내가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는 복학하지 않았다. (당시 휴학과 복학 및 정학, 퇴학등의 일들은 대자보로 학교 여기저기에 붙었다.) 담임은 종례시간에 또 말했다. "그까짓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뭐가 그리 아프다고 휴학까지 하는지, 류머티즘인가 뭔가가 그냥 관절염이라던데, 진통제 먹고 참아야지 요즘 것들은 부모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문제야."라고 말이다. 그 사람이 아이들에 대해 입을 열 때마다 어찌나 그 한마디 한마디가 " 주옥." 같은지.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지옥행 열차 프리패스권." 이 예약되어 있을 듯하다.

 보통 아이들이 지우개, 샤프심을 " 나 이것 좀 빌려." 달라고 표현한다. 아이들이 어느 날은 샤프심, 어느 날은 지우개, 어느 날은 생리대를 빌려달라고 얘기하니 또 단체 기합을 주며 외친다 " 이것들은 그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가시나들이 하나같이 못돼 처먹었어. 빌린다의 뜻을 중학생인데도 모르는 거야? 빌린다는 것은 잠시 사용하고 다시 그대로 되돌려 주거나 갚아준다는 거야. 그런데 너희 샤프심 빌려달라, 지우개 빌려달라면서 갚아줘? 안 갚아주잖아. 그럼 빌려달라는 말을 쓰면 안 되지? 내 수업 중에 빌려달라는 말을 쓰기만 또 써봐. 그리고 빌려갔으면 갚아, 왜 남이 돈 주고 사는 걸 빌리면서 안 갚냐고. 갚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야. 니들 사기꾼이야? 집에서 그따위로 배웠어?" 란다. 요즘 아이들이 들었으면 '패드립'으로 선생을 한대 쳤거나 교육청에 신고했을 것이다. '단어사용을 제대로 사용하게 하고 싶으면 그냥 국어 선생을 하지 그랬나, 국어 선생님도 저런 것으로 아이들을 야단치진 않던데.'라 생각했다. 저렇게 아이들을 못 잡아먹어서 미워하는데 왜 선생을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아이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악하니 사람이 제 아이가 생기면 제 아이를 위해 없던 악함도 생긴다는데, 중학교 때를 생각하면 음침한 지옥 구렁텅이를 겨우 기어 나온 기분이 든다. 나라에서 국민연금 부족하다 하지 말고 이런 공무원들은 연금을 다 끊고 연금개혁이나 하지, 왜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우리나라가 개도국이었던 90년대와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교권이 떨어진 문제를 보며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선생들 때문에 이런 사태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이런 선생들에겐 요즘 아이들이 강단이 필요했는데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결국 이 여자는 1년간 3명의 아이를 반에서 치워버리고, 1명은 저세상으로 날려버리려다 미수에 그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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