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남자답지 않은 게 아니라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다

by 레지널드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나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내 인생 첫 진한눈물은 솜사탕 때문이었다.

몇 살 인지도 기억 안 날 만큼 어렸을 때 일이다.

솜사탕이 무척 먹고 싶은데

엄마가 당최 사주질 않았다.

비가 개인 어느 날 오후.

난 엄마, 누나와 함께 밖에 나갔다.

평소엔 사주지 않던 솜사탕을 사줘서 너무 신났다.

그렇게 솜사탕을 들고 걷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내 솜사탕은 그 아저씨가 들고 있던

물기 묻은 우산에 철썩 달라붙었다.

앞만 보고 쭉쭉 가는 그 아저씨를 보고

난 당혹스러웠고 이내 눈물이 흘렀다.

사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솜사탕 값도 우리 집 사정에는

결코 저렴한 간식이 아니란 걸.

그래서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사준지 아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 솜사탕에 눈물을 흘렸다.

동요 가사처럼 날아가버린 것도 아니고

붙어서 사라진 그 솜사탕..


성인이 되어서도 내 눈물샘은

남들보다 더 많이 활동했다.


논산훈련소에서의 첫날밤.

그날도 눈물을 흘렸다.

군생활이 걱정돼서 울었다기보다는

입대하기 얼마 전부터 엄마가

노래 한곡만 다운 받아 달라고 했는데

그걸 안 하고 온 게 갑자기 생각나서 울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불효자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문세의 '사랑은 늘 도망가'.

이 노래는 아마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cover-your-face-with-your-hands-6599125_1920.jpg 출처: 픽사 베이

그 후로는 다행히 개인적인 불상사 때문에

울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주변사람들이 '이게 뭐라고 울었냐'라고

물어볼만한 것들에 눈물을 흘려서 문제였지.


2017년, 국민타자 이승엽선수가 은퇴식을 했다.

생방송으로 그의 은퇴식을 지켜보던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이승엽선수가 과거 베이징올림픽 때

울면서 인터뷰했던 장면을 시작으로

끝날 때까지 그가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야구팬으로서 그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가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그리고 심적으로

어떤 부담감을 갖고

경기에 뛰었을지 상상하니 참 슬펐다.

그래서 이승엽 선수는 개인적으로

은퇴 후에 더 팬이 됐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운건 부지기수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배우 황정민이

'나 이만 하면 잘 살았지에' 하고 말한 뒤

아역배우로 전환되어 '나 엄청 힘들었거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는 참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럴 겨를도 없이 눈물이 흘렀기 때문이다.


서른 살 때 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사람들은 그 작품을 배우 공효진과 강하늘의

러브스토리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그건 이 세상의 엄마들을 위한 드라마다.

극 중 모든 엄마들이 제각각의

모습과 방식으로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

동백이, 용식이는 물론 제시카의 엄마까지

이 세상 엄마들의 모습이 나오면서

배우의 내레이션이 깔릴 때는 숨죽여 울었다.


가장 최근에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울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배우 이순재의

추모 다큐였는데 다큐 말미,

배우 이서진이

"이번 여행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 대목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꽃할배' 애청자였던 나는 이서진이

진심으로 그를 존경한다는 걸 잘 알았기에

순간적으로 그에게 감정이 이입됐다.


기분이 좋아서, 감격해서 운 날도 많다.


예전 '놀이공원' 글에서도 썼지만

놀이공원의 레이저쇼와 불꽃을 바라보며

순수함을 되찾은 감정을 느껴 눈물을 흘렸다.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도쿄돔,

그곳 바로 앞에 위치한 호텔방에서

환하게 조명이 들어온 도쿄돔과 대관람차를 보고

'그래, 내 인생 이거 본 것만으로도 성공했지'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신체건강한 남자인 나는 이렇게 가끔(?)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울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입한다.


재밌는 건 신체가 건강할수록

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 아닌가?

건강하니까 더 감수성이 풍부하고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에

눈물이 많은 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눈물을 많이 흘린다는 건 심신이 건강한 것이며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고로 남자들에게도 눈물을 허락해야 한다.

기뻐서 화내고, 감동받아서 킥킥대는 사람은 없다.


기쁨, 슬픔, 감동, 분노, 좌절 등등 모든 감정을

담아내는 건 오직 눈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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